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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쥐님의 서재
  • [전자책] 그저 하루치의 낙담
  • 박선영
  • 13,100원 (650)
  • 2026-01-15
  • : 1,940

자신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권의 에세이를 쓴다고 가정해 보자. 자신의 경험이나 살아온 이야기만으로 책을 꾸린다면 자칫 자서전으로 흐를 위험성이 존재하는 것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흥미를 이끄는 데에도 실패할 개연성이 높다. 자서전을 써도 될 만큼 유명세를 타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경험에 더불어 독자의 흥미를 끌 만한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섞을 수밖에 없다. 필연적으로 말이다. 이렇게 다양한 주제의 글을 모아 한 권의 에세이를 엮을 때, 그 성패는 무엇보다도 구성의 밸런스에 있지 싶다. 예컨대 유년시절의 경험담과 직장 생활, 읽었던 책과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을 나누어 4개의 장으로 구성할 경우 유년 시절의 고생담을 너무 장황하게 쓰면 책을 읽는 독자는 글 전체의 느낌이 어둡다고 느낄 확률이 높다. 반면에 자신이 읽었던 책이나 감명 깊게 본 영화를 위주로 글을 쓰면 흔하디흔한 독서 리뷰나 영화 감상문쯤으로 오해할 소지가 높다. 지루함을 느끼는 독자가 몸을 배배 꼬기 전에 주제를 바꿔주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제별 분량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작가에게도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편집자도 없는 1인 출판사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긴 하지만 말이다.


"나처럼 뒤늦은 나이에 신문기자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공부하러 갔던 좋아하는 선배가 했던 얘기다. 잠시 귀국했을 때, 네 명의 건장한 공사장 노동자들이 커다란 철판의 네 귀퉁이를 하나씩 잡고 옮기는 장면을 버스 안에서 보는데 왈칵 울음이 쏟아지더라는 것이다. 대번에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었다. 당신들은 함께 일하고 있군요. 나는 혼자인데. 서로 합을 맞추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당신들의 일치된 발걸음이 나는 사무치게 부럽습니다. 서로의 안위를 서로에게 맡긴 채, 외롭지 않게, 당신들은 함께 나아가고 있네요."  (p.87)


박선영의 에세이 <그저 하루치의 낙담>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곁에 지루함을 놓아 두거나 권태를 벗어나게 할 다른 놀잇감을 찾아 자리를 뜨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작가가 책에서 쓴 이야기는 제법 무겁고 논쟁이 될 만한 것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독자들이 이렇듯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 까닭은 글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총 4개의 장에서 다루고 있는 글의 분량이나 주제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1부 '기자라서 좋았고, 기자여서 슬펐다'에서 작가는 기자로서 살았던 17년의 세월을 돌이켜본다. 2부 '내 슬픔의 레퍼런스'에서는 슬픔에 이끌렸던 자신의 감정을 응시하면서 자신이 경험했던 가난과 무력감 등 슬픔으로 이어지는 감정의 결들을 바라본다. 3부 '타인에 대한 예의'에서 작가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우리들 각자가 어떤 사회적 책임과 윤리감각을 지녀야 하는지에 대해 묻는다. 4부 '숭고를 향하는 인간들'에서는 그럼에도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에 대해 앞서 간 사람들의 사례를 보며 되새긴다. 비슷비슷한 주제인 듯 보이지만 작가는 각각의 주제에 선명한 새깔을 입히는 것은 물론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각을 유지하고 있다.


"무엇이 사라지지 않고 축적되는 것일까. 잃게 될까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는 것, 누구도 내게서 빼앗을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덕성과 지성이다. 우는 이도 웃게 하는 유머와 함께 울어주는 눈물이다. 타인의 환난을 외면하지 않는 착한 마음과 부당함에 함께 맞서는 용기다. 자신의 오류를 끊임없이 발견하고 수정하는 성찰과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겸손, 지성을 흠모하고 진리를 수행하는 지혜다. 한마디로 좋은 사람의 덕성이다."  (p.290)


독서와 글쓰기에 취미가 있는 사람들 중 다수가 자신이 쓴 책 한 권을 갖는 게 소망이라고 말하는 것을 종종 본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이 그저 마음속의 꿈으로만 간직한 채 생을 마감한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나만의 책을 쓰는 것에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다. 나는 그저 남들에 비해 기억력이 나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까닭에 나의 단점을 메꾸기 위해 이따금 글을 쓰기도 하고, 남는 시간에 더러 책을 읽기도 할 뿐이다. 나이가 더 들어 글을 쓰는 일조차 힘에 겨운 날이 온다면 나는 이제껏 썼던 글을 모두 없애고 조용히 책이나 읽으며 남은 생을 보낼 생각이다. 남에게 큰 죄도 짓지 않고 지금처럼 조용히 삶을 이어가는 게 꿈이라면 꿈인 것이다.


"양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특유의 한기가 있다. 그 한기를 감지할 때마다 그렇게 슬퍼질 수가 없었다. 나는 지금 너의 견적서를 읽었다. 네겐 나의 값이 이렇게 싸구나. 순식간에 장맛비가 차오르는 한여름의 반지하방처럼 마음은 슬픔으로 출렁거린다. 값싼 내가 슬퍼서가 아니라, 값싼 네가 슬퍼서."  (p.215)


새벽에 산을 오를 때만 하더라도 쌀쌀하던 날씨는 낮이 되자 금세 풀려 따뜻하다. 지난 비에 듬성듬성 꽃이 떨어진 벚나무는 마치 오랫동안 원형탈모를 앓아 왔던 사람처럼 우듬지가 휑하다. 사는 게 그저 하얗게 쌓이 꽃길만 밟는 것은 아니어서 우리는 때로 허방을 딛고 비틀거리기도 하고, 숨을 헐떡이며 가파른 고개를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매 순간 명심해야 할 것은 어떤 처지에 처한다 할지라도 나와 내 주변의 이웃을 돌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나의 삶이 중요한 것처럼 이웃의 삶 역시 같은 크기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이란과 미국의 휴전 소식이 들려왔다. 늦었지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자신의 삶을 하루라도 더 연장하기 위해 이란 국민들은 그동안 얼마나 큰 두려움과 맞서야 했을까. 그리고 이웃의 죽음을 보며 얼마나 안타까워 했을까. 이 모든 게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는 걸 전쟁 당사자인 미국과 이스라엘의 통치권자는 과연 알기나 할까. 자신들이 얼마나 잔인한 인간이었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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