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꼼쥐님의 서재
  • 나의 프랑스식 서재
  • 김남주
  • 13,050원 (10%720)
  • 2013-06-07
  • : 657

번역가의 에세이가 독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지 못하는 까닭은 지식의 편차 때문이 아닐까 싶다. 원작자의 작품을 번역하는 번역가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번역했던 어떤 작품에 대해서는 원작자 다음으로 많은 지식을 소유했을 것이라고 짐작이 되는 바, 그 책에 대해서 한 번쯤 읽어보았거나 전혀 읽어보지도 못한 채 다른 경로를 통해 그 책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일반 독자를 고려할 때, 번역가와 일반 독자 사이의 지식 편차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번역가는 자신의 본업인 번역 이외의 다른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다는 데 있다. 그러다 보니 책에 대한 일반 독자의 지적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채(또는 고려하지 못한 채) 자신이 하고픈 말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나온 에세이는 대개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너무너무 어렵다. 물론 소수이겠지만 번역가와 지적 수준이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은 일반 독자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학술서가 아닌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에세이의 수준이 지나치게 높다는 건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


"장 그르니에에 의하면 카뮈의 작품은 "그 작품에 대한 모든 주석을 쓸데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어떤 것이다. 그런 만큼 역자는 이 글에서 또다시 그런 '쓸데없음'을 범하지 않으련다. "그런 작품은 하나의 호소와도 같아서 우리는 그것에 대답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독자로 하여금 결정을 강요하고 당혹시키며 자기변명을 하게까지 만든다. 그런 작품은 우리에게 어떠한 회피도 용납하지 않음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P.76)


그럼에도 내가 자주는 아닐지라도 기회가 될 때마다 번역가의 에세이를 읽는 까닭은 그동안 내가 읽었던 책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한편 도움이 될 만한 다른 책이 뭐가 있을까?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함이다. 때로는 한동안 책과 멀어졌던 까닭에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거나 시큰둥한 마음이 들 때, 혹여라도 나의 관심을 끌 만한 좋은 책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번역가의 에세이를 읽게 된다. 일종의 추천 도서 목록을 구하고자 함이다. 김남주의 에세이 <나의 프랑스식 서재>를 읽었던 것도 그런 까닭이다. 프랑스 문학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김남주 번역가의 저서가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없지 않았다.


"어린왕자는 과연 무사히 자기 별로 돌아갔을까? 가죽 끈이 없는 부리망 때문에 화자의 걱정대로, 우주 어딘가에서 양 한 마리가 장미꽃 한 송이를 먹어치우진 않았을까? 그리하여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 어린왕자의 방울 같은 웃음소리 대신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슬픔이 가라앉고 나면 어린왕자는 다시 이동하는 철새 떼를 타고 장미꽃 없는 자기 별을 떠나 자기가 길들인 여우도 있고, 화자도 있는 이 지구별로 돌아오지 않을까? 아아, 이 책의 내용을 적은 엽서를 교환하던 그 시절, 금빛 대신 푸른 머플러를 어린왕자처럼 꼭 그렇게 한 번만 목뒤로 넘겨 둘렀던 그 친구를 이 지구에서 바오밥나무가 있는 곳, 마다가스카르에 가면 만날 수 있을까?"  (P.169~P.170)


자신을 일러 '느린 번역가'라 칭하는 김남주 번역가는 <오후 네시>를 통해 아멜리 노통브를 <나를 보내지 마>를 통해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를 처음 국내에 소개한 번역가이자 내가 좋아하는 작가 장 그르니에, 알베르 카뮈, 로맹 가리, 생텍쥐페리 등 프랑스의 현대고전 작품 역시 번역해 왔다. 지금도 나의 기억에 남아 있는 추억 하나는 내가 군에 복무하던 당시, 모 여대 불어불문학과에 다녔던 아내가 졸업논문을 쓰지 못해 노심초사하는 것을 보고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여러 권을 부대로 가져와서 읽은 후 논문(이라고 할 수도 없는) 초고를 타자기로 쳐서 아내에게 주었었다. 아내는 내가 쓴 그 어설픈 논문 초고를 바탕으로 어찌어찌 살을 붙여 논문을 완성하였고, 무사히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김남주의 에세이를 읽는 내내 그때의 추억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20대 후반부터 30대, 40대를 살아오는 동안 번역은 내 밥벌이였다. 그러나 나는 줄곧 이 일을 내 삶의 징검다리 같은 것이라고 여겼다. 강 저편으로 가기 위해 딛고 가는. 오랫동안 내 시선은 내가 딛고 있는 그 징검다리가 아니라 내가 당도해야 할 강 저편 기슭에 고정되어 있었다고 고백한다. 문화와 정신을 전달한다는 감동과 자부는 대개는 무능과 게으름과 악조건 속에서 사그라들고, 표현과 내용의 좌충우돌 속에서 많은 밤들을 새웠다. 저울의 한쪽에 착실히 말들을 올려 놓으며 한 권의 번역을 마치고 나면 머릿속 말들이 모두 빠져나간 듯 일상적인 대화조차 더듬고 버벅대고 순서를 바꾸기 일쑤였다."  (P.9 '첫 책을 내면서' 중에서)


사실 이 책은 번역가가 쓴 리뷰에 가깝지만 작가의 삶이 책 속에 녹아있다는 점에서 에세이가 아닐 수 없다. 서두에 말했던 것처럼 전문 번역가가 지닌 지식과 일반 독자인 내가 소유한 지식 사이의 가늠할 수 없는 차이 때문에 이따금 어려운 문장에 갇혀 같은 문장을 여러 번 반복하여 읽기도 했지만, 번역가의 수고에 비하면 그와 같은 수고를 수고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 아닌가. 오늘은 금요일, 나는 책에서 빼곡히 옮겨 적은 도서 목록을 뿌듯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내일이면 나는 그 목록을 들고 가까운 도서관에 들러 가능한 범위에서 많은 책을 대출하여 기쁜 마음으로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기한 내에 다 읽지도 못하면서 잔뜩 욕심을 부릴지도 모를 일이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