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이 입적하신 지 벌써 16년이 흘렀다. 2010년 3월 11일의 느낌을 나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내가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나는 스님의 말씀이 담긴 여러 저서를 읽으며 청소년기를 보냈었고, 언론을 통해 접하는 스님의 소식을 가까운 이의 근황인 양 귀를 쫑긋 세운 채 듣곤 했었던 나로서는 텔레비전을 통해 접했던 그날의 소식을 믿을 수가 없었다. 충격이 컸던 탓인지 나는 한동안 가슴이 텅 빈 듯한 허전함으로 인해 매사에 의욕이 떨어졌었다. 그때 우연히 읽었던 책이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이었다. 덕분에 나는 스님이 추천한 책 50권 대부분을 읽을 수 있었다. 허전함을 달래기 위한 목적이 더 컸었지만 책의 권수가 더해질수록 스님의 뜻이 새록새록 전해지는 듯했다. 스님이 아니었더라면 결코 알지 못했을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이나 쓰지 신이치의 <슬로 라이프>, 아베 피에르의 <단순한 기쁨>, 존 프란시스의 <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 등 뻐근한 감동과 교훈으로 남았던 여러 책들이 스님의 말씀처럼 가슴을 채웠다. 물론 나의 지식이 부족하여 이해가 어려웠던 책들도 더러 있었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가 쓴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나 에크하르트 톨레의 <NOW-행성의 미래를 상상하는 사람들에게>와 같은 책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스님의 추천 도서 대부분이 나의 인생책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지금도 나는 스님의 추천 도서를 기회가 될 때마다 꺼내 읽곤 한다.
역사 콘텐츠 전문 작가 권민수가 엮은 <고요하고 단단하게, 법정의 말>을 읽었던 것도 어쩌면 그 연장선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PART 1 '나는 어떻게 가벼워질 수 있을까? - 비움과 자유', PART 2 '불안은 왜 자꾸 올라올까? -두려움과 신뢰', PART 3 '일은 삶을 어떻게 바꿀까? - 일.돈.시간', PART 4 '관계는 왜 어려울까? - 가족.사랑.갈등', PART 5 '슬픔은 어떻게 치유될까? - 상실.병.죽음', PART 6 '자연은 왜 스승일까? - 숲.바람.침묵', PART 7 '어떻게 계속 걸을까? - 단련과 실천' 등 총 7부로 구성된 이 책은 우리에게 도움이 될 만한 스님의 말씀을 단순히 옮겨 적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를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떻게 녹여내고 실천할 것인가를 묻게 하는 잠언집의 성격을 띠고 있다.
"법정의 말은 읽을 때는 아름답지만 삶으로 옮기지 않으면 금세 잊히기 쉽습니다. 우리는 멋진 문장을 읽는 데 익숙하지만, 그 문장대로 살아내는 데는 서툽니다. 그래서 이 책은 법정 스님의 단순 저서 문장에만 기대지 않고, 대표 저서들뿐 아니라 강연집과 법문 기록, 정기 법회에서 실제로 건넨 말씀, 여러 자리에서 회자되어 온 핵심 문장들까지 폭넓게 엮어, '법정의 말'을 하나의 총체적인 흐름으로 만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p.8 '프롤로그' 중에서)
내가 스님의 추천 도서를 읽으면서 느꼈던 스님의 중심 생각은 생명 존중과 공생이었다. 스님은 우리들 각자가 그 생각을 중심에 두고 어떻게 하면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가꾸어 갈 수 있을까를 궁리하셨던 듯하다. 수도자로서 생명을 귀히 여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지만 모든 생명체가 더불어 잘 살 수 있도록 궁리하고 연구하는 학자와 사상가와 사회운동가마저 떠받들고 우리와 같은 장삼이사에게 그들의 사상을 이해시키려 노력했다는 점에서 스님의 특별한 면모를 살필 수 있었다. 권민수 작가 역시 스님의 말씀을 우리들 삶에서 녹여내려 했다는 점에서 스님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는 듯하다.
081 오늘을 선택하는 연습
"나누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 내일은 기약할 수 없습니다. 내가 그곳에 있지 않을 수도 있고, 내 마음이 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지금 이 순간에 해야 합니다." (P.108)
세상이 갈수록 험악해지는 까닭은 가진 자의 욕심이 끝도 없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대인과 작금의 정치 세력은 그들의 욕심을 펼칠 자유를 무한대로 허용하는 게 미덕인 양 포장하고 있다. 스님을 비롯한 옛 지성인들이 주장하던 '공생'은 이제 잊힌 단어가 되고 말았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함께 잘살자는 생각이 우리 인간끼리라도 함께 잘살자는 생각으로 쪼그라들더니 이제는 숫제 그마저도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는 현실 속에서 개인의 불안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듯하다. 그러나 파편화된 개인이 서로 손을 내밀면 또 다른 어느 누가 내게 손을 내밀지 않을까? 인간 내면의 순수 감정을 건드리면 누군가의 목소리가 내 목소리에 응답하지 않을까? 인간은 본디 그렇게 태어나고 그렇게 자라왔으니까 말이다.
241 관심이라는 이름의 간섭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는 그 자신의 방식으로 그 자신의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만의 편의나 이익을 위해 남을 간섭하고 통제하고 지배해서는 안 된다." (P.274)
생명이 되살아나는 이 계절에 지구 한편에서는 생명을 죽이는 일이 날마다 자행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악행에 대한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함께 잘 사는 방법을 모색하기보다는 타인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아 나만 잘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까닭에 그들 역시 제 수명을 다하면 지구상에서 사라지겠지만, 그들이 치러야 할 죄업은 사후에도 계속하여 청구되지 않을까?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이웃을 사랑으로 돌보아야 하는 이유는 역사의 단죄가 더욱 가혹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남쪽으로부터 봄을 알리는 꽃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어느덧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