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날처럼 새벽에 집을 나서는데 바깥은 온통 젖어 있었습니다. 비는 그쳤지만 간밤에 내린 비의 양이 간단치 않았는지 낮은 곳에는 제법 물웅덩이가 고였습니다. 하늘은 우중충하니 잔뜩 흐린 채였고 이따금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어지간한 추위는 아닐지라도 으스스한 한기가 품속으로 파고들었습니다. 경칩도 지났는데... 산의 초입에 있는 계단을 다 오르자 가볍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에는 새벽잠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나온 노력이 아까워서 차마 그리 할 수 없었습니다. 후둑후둑 떨어지는 빗소리의 리듬에 맞춰 걸음은 평소보다 절반은 늦춰진 듯했고, 인적이 끊긴 등산로에는 적막이 감돌았습니다.
나는 며칠 전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숨진 이란의 초등학생들을 애도하며 걸었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전쟁은 미친 짓입니다. 그 많은 민간인들이 아무런 잘못도 없이 처참하게 생명을 잃는다는 건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스라엘 정부는 이제 더 이상 히틀러의 만행을 비난할 권리가 그들에게는 없는 듯 보입니다. 그들 역시 히틀러의 만행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 학살과 온갖 잔인한 전쟁 범죄를 저질러 왔고, 지금도 역시 그와 같은 만행을 저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신이 존재한다면 이처럼 참혹한 살상을 허락한 이스라엘과 미국의 권력자들에게 가장 먼저 지옥행 열차를 타도록 할 것입니다. 정말로 신이 존재한다면 말입니다.
희끄무레한 어둠에 싸인 등산로는 빗물에 질척거리고 미끄러웠습니다. 등산로 주변의 낙엽 위에는 비에 섞여 내린 진눈깨비가 녹지 않은 채 하얀 잔설로 덮여 있었습니다. 검게 드러나는 등산로와 잔설이 쌓인 숲의 대비는 마치 한 폭의 수묵담채화인 양 그려졌습니다. 비는 여전히 그치지 않고 입고 나갔던 운동복 상의도 비에 젖었습니다. 손전등 불빛이 한 뼘의 어둠을 쫓아낼 때마다 땅 위에 번지는 타원형의 불빛 속으로 작은 빗방울들이 다투어 모여드는 듯했습니다.
어제 했던 친구의 말이 떠오릅니다. "완벽하게 인간을 닮은 로봇이 출현하기 전에 우리 인간이 완벽하게 로봇을 닮는 게 순서적으로 더 먼저이지 않을까?"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정치인들을 보면 그들은 마치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어떤 연민이나 안타까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감각한 인간들처럼 보입니다. '나는 심장이 없어. 나는 심장이 없어. 그래서 아픈 걸 느낄 리 없어.'라고 노래했던 어느 가수의 노랫말이 생각납니다. 오늘은 금요일이고 내게는 이틀간의 휴가가 주어졌습니다. 회사원이라면 대부분 그렇겠지만 말입니다. 가슴 아픈 소식은 이제 더 이상 들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하기에는 지금 나의 몸 컨디션이 너무나 안 좋기 때문입니다. 경칩도 지났는데 날씨는 제법 쌀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