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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쥐님의 서재
  • 두려움이란 말 따위
  • 아잠 아흐메드
  • 18,000원 (10%1,000)
  • 2025-11-12
  • : 2,175

규칙적인 삶을 살아간다고 해서 남은 삶도 규칙적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삶이란 언제나 우리의 예상을 깨고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운전을 시작하면서 자주 듣게 되는 말 중 하나가 '나만 조심한다고 해서 사고가 안 나는 것은 아니야.'인 것처럼 자신의 삶을 열심히, 앞만 보고 성실하게 살아간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가 주어진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삶이란 나뿐만 아니라 나를 둘러싼 수많은 관계와 이어짐에 의해 이루어지는 공동작업이기도 하고, 그와 같은 관계를 나 역시 나 몰라라 하고 외면할 수만은 없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냉정한 사람일지라도 가족에게 발생한 끔찍한 사고를 어찌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그로 인하여 나의 삶이 180도 달라질 수 있음을 어찌 계산할 수 있단 말인가.


얼마 전 뉴욕타임스의 국제 탐사보도 특파원인 아잠 아흐메드가 쓴 르포르타주 <두려움이란 말 따위>가 출간되었다. 무너진 공권력과 이 틈을 비집고 성장한 마약 카르텔이 멕시코 지역사회를 어떻게 붕괴시키는지 그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한 범죄 르포르타주 <두려움이란 말 따위>는 마약 카르텔 조직에 의해 납치된 딸을 찾기 위해 범인을 직접 추적해야 했던 미리암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멕시코 타마울리파스주(州) 산페르난도 지역에 살고 있던 미리암 로드리게스와 루이스 살리나스 부부에게는 큰딸 아잘리아와 아들 루이스 엑토르, 막내딸 카렌을 둔 평범한 가정이었다. 그러나 남편의 고질적인 외도와 그 반작용으로 대학생이었던 카렌이 엇나가기 시작하면서 가족들의 걱정이 시작되었다.


"2년 전이었던 2014년 1월, 플로리스트를 비롯한 세타스 일당이 카렌을 납치했다. 미리암은 애걸복걸하며 세타스의 모든 지시에 따랐고,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몸값까지 지불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전혀 없었다. 그들은 카렌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정부 당국에서는 탄원을 무시하고, 무관심하고 형식적인 대응으로 일관하는 등 미리암을 외면했다."  (p.12)


평범한 주부에 지나지 않았던 미리암은 현실을 직시한 후 딸을 납치한 자들에게 복수를 다짐했다. 추적에 나선 지 2년 만에 추적 명단 속 6명은 교도소에 수감됐고, 4명은 세타스의 거점을 습격한 해병대에 사살됐다. 이 모든 과정에 미리암이 관여했다. '아마추어 수사관'으로 활약했던 것은 물론 딸의 유골을 수습하기 위한 DNA 검사 역시 그녀의 몫으로 남았다. 딸의 복수를 위한 집요한 추적 과정에서 가족들의 도움이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카렌의 유골을 수습하고 납치범을 잡아 법정에 세우면 그 위험한 범죄 조직에 맞서는 행위를 그만두겠다던 미리암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공권력의 부패와 범죄조직과의 유착으로 인해 자신과 같은 납치 피해자 가족은 수를 파악할 수 없을 만큼 증가하였고, 그들의 고통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종 피해자 가족들은 굴하지 않았다. 피해자 가족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살았다고도 죽었다고도 할 수 없는 경계에서 살아간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 못지않게 불확실함에 시달린다. 상실감이라는 유령과 살며 가족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고문당한다. 희망은 자식이나 남편, 동생, 사촌의 유해라도 찾겠다는 열정이 되기도 하고, 피해자 가족들을 소진시키기도 한다."  (p.208)


4년간 관련 인물을 수백 시간에 걸쳐 인터뷰하고 2만 쪽이 넘는 사건 파일과 재판 기록을 입수해 사건을 재구성했던 저자의 노력 때문인지 범죄 현장을 취재한 논픽션이라는 느낌보다는 범죄 스릴러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멕시코 혁명 이후 탄생한 '걸프 카르텔'이라는 마약 범죄조직의 역사·지역적 배경을 다루면서 걸프 카르텔 조직이 약화되는 과정에서 성장한 신흥 범죄조직 '세타스 카르텔'을 다루고 있다. 세타스는 미국과 멕시코의 접경지역에 있는 작은 마을인 산페르난도를 중심으로 말할 수 없이 잔인한 범죄를 수시로 저질렀고, 이들을 두려워한 마을 주민들 역시 그들을 신고하거나 증언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오직 딸의 복수를 위해 나섰던 미리암은 실종 피해자 가족 모임을 이끌면서 범죄조직에 맞서 싸웠다. 자신의 안위를 등한시한 채 말이다.


"죽음과 시신 훼손이 일상이 된 곳에서는 당국의 무능함과 냉담함과 무관심도 일상이 된다. 너무 지친 피해자 가족들은 더 이상 당국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고, 그 사실이 폭력으로 엉망이 된 상황을 수습할 책임이 있는 자들을 더욱 둔감하게 만들었다. 죽음의 악순환이었다."  (p.318)


한 국가의 치안은 오직 그 나라의 공권력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민주주의의 성숙과 국민 전체의 의식 수준이 그 나라의 치안과 질서 수준을 결정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가의 공권력은 시민의 감시나 재촉이 없다면 너무나 쉽게 무너지기 때문이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처럼 범죄조직에 대한 시민의 두려움이 크면 클수록 범죄는 활개를 치고 이에 맞서야 할 공권력은 더욱 움츠려들게 마련인 것이다.


길었던 겨울도 끝이 보이고 있다. 친위 쿠데타라는 가장 무시무시한 악의 카르텔을 맨몸으로 막아냈던 우리 국민의 용기는 세계인의 귀감이 되고 있다. 군부독재 치하에서 자행되었던 내란과 이를 극복했던 경험이 우리에게 맨몸으로 저항할 용기를 심어주었는지도 모른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로 대접받을 수 있는 까닭도 불의에 굴하지 않는 국민의 용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와 같은 용기는 우리 국민 전체의 높은 시민의식에서 비롯된다. 보이는 것은 언젠가 닳아 없어질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 국민 각자의 시민의식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다시 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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