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상황에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신의 허점을 찾아 숨바꼭질을 하듯 찾아 헤매야 할까. 아니면 모든 것을 포기한 채 그저 시간이 흘러가기를 바라야 할까.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모든 게 바뀐 상황에서 그 결과를 어쩔 수 없는 처분처럼 달게 받아야 하는 것일까.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반짝반짝 빛나는>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그런 생각에 부딪히고 말 것이다. 작가는 이따금 너무나 낯선 설정으로 독자를 당황하게 한다. 물론 소설가라는 직업의 특성상 현실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상황이 작가가 설정한 상상력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변주되는 것이지만 <반짝반짝 빛나는>의 설정은 유교주의 지배를 받는 아시아권 사람들에게는 마치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천형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 녀석과 결혼을 하다니, 물을 안는 것이나 진배없지 않으냐." 그때 등에 으슬으슬 서늘한 기척이 느껴졌다.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나는 나무도 들을 수 있을 만큼 또렷하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요. 전, 섹스를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순간 시아버지는 움찔하는 표정이 되었다가, 그러고는 슬며시 웃었다. 나는 분위기를 전환하고 싶어, 서둘러 일어났다. (p.20)
그렇다. 일주일 전에 결혼한 쇼코와 무츠키는 정상적인 부부가 아니다. 아르바이트 삼아 이탈리아어를 번역하는 쇼코는 알코올 중독자인 동시에 조울증을 앓고 있다. 의사인 무츠키는 지나친 결병증을 지닌 사람인 반면 동성애자로서 동성 애인인 곤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거짓말이라고는 도무지 할 줄 모르는 무츠키는 쇼코가 곤에 대해 물을 때마다 사실대로 말해준다. 잠들기 전 침대 시트를 다림질하는 일을 제외하고 음식이면 음식, 청소면 청소 집안의 모든 일은 무츠키가 도맡아 한다. 너무나 순박하고 착한 무츠키에게 쇼코는 그 어떤 불만도 없다. 무츠키를 위해 곤과의 관계를 허락하기도 하고, 곤을 집으로 초대하기도 한다. 형식적인 아내이기는 하지만 무츠키는 이와 같은 쇼코의 배려에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차는 한밤중을 똑바로 달린다. 오늘 밤 곤을 만나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쇼코의 기분을, 나는 잘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끔찍하도록 긴 하루였다. 어머니의 가시 돋친 목소리와 장인의 험악한 표정, 눈물짓는 장모의 손수건 모양과 고개 숙인 아버지의 옆얼굴. 후회하지 않아. 마음속으로 쇼코에게 말한다. 일찌감치 등받이를 뒤로 넘기고 기댄 곤은 코를 골고 있다. 입은 반쯤 열려 있다." (p.200)
무츠키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쇼코의 마음은 점점 무츠키에게 기운다. 육체적인 사랑은 아닐지라도 같은 공간에서 그와 함께 지내는 삶에 익숙해지고 편안해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무츠키는 쇼코의 절친인 미즈호를 통하여 쇼코의 옛 애인인 하네기와의 만남을 주선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쇼코는 미즈호와 그녀의 아들 유타, 그리고 하네기 씨와 함께 놀이공원에 가게 된다. 이 모든 게 무츠키의 계획이었다는 걸 알게 된 쇼코는 크게 화를 내고 미즈호와는 절교를 선언한다. 그렇게 흘러가던 어느 날 무츠키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장인 장모와 시어머니는 결국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무츠키와 쇼코는 남들과 다른 자신들의 관계에 심한 압박을 느낀다.
"집으로 돌아오자, 왠지 맥이 축 빠지고 피로가 몰려왔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고, 핌즈를 전자에일에 섞어 마신다. 가능하면 무츠키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된 이상 협력해 달라고 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 봐야 하룻밤만 넘기면 되는 일이다. 나는 반짝반짝 닦인 바닥에 엎드리고 누워, 베란다 너머로 저녁 하늘을 바라보았다. 뺨이 싸늘해서 상쾌한 기분이다. 눈을 감고 온몸으로 귀 기울인다. 정겹고 청결하고 편안한 방의 기척. 이러고 있으면 무츠키에게 안겨 있는 것 같다." (p.211)
사회적 인식과 관습에 얽매인 관계 속에서 아무런 해결책도 찾을 수 없는 두 사람과 그들의 주변을 맴도는 곤. 책을 읽는 독자는 무겁고 착잡한 기분으로 그들을 지켜볼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물론 소설은 에쿠니 가오리 특유의 동화적 결말로 끝이 나고는 있지만 소설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답답한 마음에 속이 터질 듯하고, 절망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읽어나가는 과정이 그저 힘에 겨울 뿐이다. 그리고 힘들어하는 쇼코를 보면서 '우리가 육체적 관계를 떠나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 사랑할 방법은 과연 없단 말인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작가 역시 비슷한 문제를 거론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개인의 성적인 취향이나 기호를 떠나 서로의 영혼을 깊이 관찰하고 상대방의 매력에 이끌릴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인가. 법정 스님과 이해인 수녀님처럼 서로의 순수한 영혼에 이끌려 플라토닉한 사랑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날씨가 조금 풀린다는 기상청 예보가 무색하게 바람에 섞인 한기는 여전히 냉랭하기만 하다. 간밤에 내린 눈이 녹지 않은 채 시린 느낌을 더하고 있다. 겨울 추위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고 있다. 추위 때문에 마냥 움츠러들 게 아니라 겨울을 온전히 사랑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듯하다. 쇼코와 무츠키가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들만의 사랑법을 찾아가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