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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쥐님의 서재

선뜻 나서기 어려운 자리가 있습니다. 아무리 넉살이 좋고 유들유들한 성격의 사람도 내키지 않는 자리는 언제든 있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자리에는 대개 얼굴을 마주하기 힘든, 관계가 불편한 사람이 한두 명쯤은 참석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아무리 불편한 자리일지라도 업무상 필요한 경우에는 그 시간만 견디면 된다는 생각으로 참석하게 되지만, 지속적으로 만남을 이어가야 할 사이라면 참석이 마냥 쉽지만은 않은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나와 사이가 껄끄러운 사람의 참석 여부를 모임이 있을 때마다 묻는다는 것도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닙니다. 가장 좋은 것은 나빴던 관계를 복원하는 일인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쉬워야 말이죠. 나도 이따금 이런저런 모임에 참석해 주십사 초청을 받게 되면 그와 같은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개인의 사적인 모임도 이럴진대 대통령이나 외교관처럼 국가를 대신하여 어떤 모임에 참석해야 하는 사람의 부담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겠구나, 하는 생각이 요 며칠 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국빈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입니다. 지난 정권의 대통령이었던 윤석열의 행보에 비하면 괄목상대의 변화이겠습니다만 그게 어디 매 순간이 즐거워서 임했던 것이겠습니까. 물론 대통령이라는 큰 권한을 주었을 때는 그에 맞는 의무가 함께 주어지는 게 당연하겠지요. 그러나 윤석열이나 김건희가 했던 외교 행보를 되돌아볼 때 그들은 정말 무책임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오직 국가의 명예나 이익보다는 그들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데 전력을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하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이재명이 당선된 게 얼마나 다행인지요.


날씨가 쌀쌀해지고 있습니다. 소한 무렵의 이맘때면 일 년 중 가장 추울 때이기는 하지만 갑작스러운 추위는 때론 당혹스럽기만 합니다. '독서법의 고전'으로 불리는 에밀 파게의 저서 <단단한 독서>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옵니다.


"자기애, 잡다한 정열, 소심함, 불만족한 정신. 이런 것들은 독서의 주적으로, 언제나 우리 안에서 비롯된다. 그 수가 많음을, 상당히 흉물스러운 것임을 우리는 보았다. 서글픈 노년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독서의 주적에 맞서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한다. 책은 우리에게 남을 마지막 친구이며, 우리를 속이지도, 우리의 늙음을 나무라지도 않기 때문에."  (p.202)


책에서 작가는 느리게 읽기와 거듭하여 읽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 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허다한 현실과 마주하며 살고 있는 까닭에 느리게 읽기는 강조하되 거듭하여 읽기는 말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2026년의 1월도 벌써 7일이 지나고 있습니다. 나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누군가에게도 안녕을 전하고픈 저녁입니다. 바깥은 벌써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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