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에 충격을 주는 어떤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the wisdom of crowds)'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미국의 곤충학자인 윌리엄 모턴 휠러(William Morton Wheeler)가 1910년에 출간한 그의 저서 <개미 : 그들의 구조·발달·행동(Ants : Their Structure, Develpement, and Behavior)>에서 처음 제시하였다는 이 개념은 '다수의 개체들의 협력 또는 협업을 통하여 얻게 된 집단적 능력'이라는 뜻이며, 집단지능, 협업지성, 공생적 지능이라고도 말하여집니다. 물론 이것이 요즘처럼 사회학적 용어로 쓰이게 된 것은 그로부터 70여 년이나 지난 1983년 피터 러셀에 의한 정의였고, 사이버 공간에서의 집단지성 개념을 정리한 것은 그보다 늦게 사회학자인 피에르 레비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집단지성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어서 때로는 '집단적 광기'나 '집단오류'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뜬금없이 왜 갑자기 '집단지성'?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실 분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나는 최근에 뉴욕에 거주하는 여동생과 전화 통화를 한 후 '집단지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차기 뉴욕시장으로 30대의 인도계 무슬림인 맘다니가 당선되었기 때문입니다. 선거가 있기 전부터 조란 맘다니에 대한 소식은 동생으로부터 종종 들었던 나였지만 '설마 되겠어?' 하는 회의감이 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민주적 사회주의자'임을 공공연하게 밝혔을 뿐만 아니라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체포영장이 발부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뉴욕을 방문할 경우 뉴욕 경찰에게 체포를 지시하겠다는 공약도 내세운 상태였습니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지켜질지 아닐지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기독교가 주류인 미국 사회에서 네타냐후가 아무리 나쁜 짓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도 정의를 지향하는 맘다니를 과연 몇 퍼센트나 지지할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뉴욕 시민은 나의 예상을 깨고 차기 시장으로 보란 듯이 맘다니를 선택했습니다.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이와 같은 결과가 나온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동생은 가장 큰 이유로 뉴욕의 고물가와 생활고를 들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트럼프의 독재와 일부 마가(MAGA) 세력의 비이성적 행동, 극단적 혐오와 차별이 뉴욕 시민을 움직인 결과라고 분석했습니다. 어쩌면 경제 붕괴와 민주주의의 파괴라는 위험이 맘다니의 당선을 부채질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평화보다는 위기의 시기에 '집단지성'은 더 쉽게 발휘됩니다. 평화의 시기에 윤석열과 같은 미치광이를 국가 지도자로 뽑았던 '집단적 광기' 또는 '집단오류'가 발생되었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지금 우리가 평화의 시기를 누리고 있다면 우리는 '집단지성'의 발현을 기대하기보다 '집단적 광기'가 다시 요동치지 않을지 걱정하고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국가 조찬 기도회에서 보였던 그들만의 리그, 기독교라는 폐쇄적인 집단과 기성 정치인들의 야합, 그리고 그들의 일치된 욕심과 광란의 몸짓을 다시 보지 않으려면 우리는 항상 귀를 열고 두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