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오히려 수채화에 가깝다. 단풍이 드는 풍경은 제각각 물든다기보다 푸르름 속으로 번지거나 스며들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물에 섞인 물감이 여백을 향해 번져가는 모습, 붓을 따라 번져가는 모습이 흡사 수채화를 빼다 박은 듯 단풍은 그렇게 물들어가는 것이다. 물에 젖어 울룩불룩 주름이 진 가을 뒷면을 곱게 다림질하여 주름을 펴면 반듯반듯한 겨울산이 흰 눈을 뒤집어쓴 채 나타날지도 모른다. 콕콕 점을 찍듯 온 천지에 연녹색 점묘화를 그리던 계절이 왕성하던 푸르름을 지나 빨갛고 노란 색깔을 푸르름 속으로 번지듯 풀어내는 때가 오면 나는 옛날 다리미에 숯불을 담아 한 해의 주름을 곱게 펼 준비를 한다.
시인이자 동화구연가인 조은숙 작가의 작품 <시가 있는 이야기가게>를 읽었다. 17편의 시와 그림이 실린 이 책은 시집이 아니라 시화집이라고 해야 옳겠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시인의 지나온 삶이 아스라 펼쳐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시인에게 생명은 '많은 오염과 고난을 거쳐야 비로소 피어나는' 어떤 것인 까닭에 시인 역시 삶의 고비를 돌고 돌아 지금의 모습으로 피어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책을 펼쳐 들면 한눈에 들어오는 그림과 시인의 마음결 같은 시가 독자의 마음을 따라 흐른다. 삶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여정이지만 시인은 다음 생에도 반드시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 달라고 소망한다. 이웃으로부터 도움만 받고, 사랑만 받으며 살았으니 다음 생에는 '미인도 말고/공주도 말고/튼튼한 억척네로/태어나게 하소서//'('환생' 중에서) 기도한다.

사무실 창밖에는 가을 햇살을 닮은 은행잎이 마치 한 폭의 수채화처럼 번지고 있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과거의 이맘때쯤이면 시화전이 열리곤 했다. 그림을 그리는 데는 영 소질이 없었던 나는 친구에게 그림을 부탁하곤 했었다. 그러면 친구는 내게 시 한 수를 써달라고 말했었다. 일종의 품앗이였던 셈인데 그렇게 반강제적으로 제출했던 시화는 액자에 걸려 전시가 되곤 했었다. 내게 그림을 그려주던 친구는 지금도 여전히 그림을 그려 먹고사는데 나는 결국 시인이 되지는 못했다. 마음에 드는 시화의 액자 밑에 줄줄이 매달리던 장미꽃처럼 나는 조은숙 시인의 시화마다 장미꽃 한 송이를 선물하고 싶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