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어둠은 짙고 무거웠습니다. 밤을 밝히는 도심의 꺼지지 않는 조명들도, 내 손안에 들린 작은 손전등도 새벽 어둠을 몰아내기에는 역부족인 듯 보였습니다. 어제 아침 거칠게 불던 바람은 잦아들었습니다. 어제의 바람이 등산로에 남겨 놓은 나뭇가지며 색이 바랜 잎사귀들이 패잔병이 남기고 간 유품처럼 내내 덧없었습니다. 바람은 잦아들었지만 뚝 떨어진 기온 탓인지 밖으로 드러난 손끝으로부터 새벽 냉기가 올라왔습니다. 인근에 펼쳐진 아파트 공사장에서는 신새벽부터 철근을 자르는지 절단기 소리가 요란합니다. 바람결에 실려오는 매캐한 쇠비린내가 속을 뒤흔들고, 경사진 길을 내려가면서 하마터면 넘어질 듯 비틀거렸습니다. 새벽의 고요가 공사장의 소음으로 인해 조금씩 깨어지고 있었습니다.
출근하는 사람들의 외투가 조금 두터워졌습니다. 여전히 녹색이 우세한 가로수의 계절감과는 다르게 사람들은 잠깐의 추위도 견디기 어렵다는 듯 어느 한 곳 빈틈이 보이지 않게 꽁꽁 싸맨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견디기 힘들었던 추위도, 숨이 콱콱 막히던 여름도 막상 지나고 나면 때론 그리워지게 마련입니다. 돌아보면 우리가 살아온 점점의 시간들이 폐허처럼 보일지라도 마음에 쩍쩍 금이 가는 날이면 그 시절 그 사람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안리타의 에세이 <리타의 정원>을 읽고 있습니다. 안리타 작가의 작품 중 두 번째 읽는 책입니다. 안리타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들 대부분이 그러하겠지만 작가가 쓴 어떤 책이라도 한 권쯤 손이 갔던 사람이라면 작가의 글맛에 취해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특히 오늘처럼 날씨가 춥고 가슴이 몽글몽글 초겨울의 허무로 뒤덮이는 날에는 안리타 작가의 글 한 대목쯤 나즉나즉 읊조리고 싶어집니다.
"어여쁜 풀꽃 하나 만나게 될 때면, 하늘을 바라보고 숨을 쉴 때면, 시계가 닿지 않는 산 너머 능선을 바라보고 있을 때면, 멈춰버린 마음의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영원의 시간은 이 순간 내 마음에 원래 그렇게 잇는 듯하다. 자유와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고 숨 쉬는 지금에도 있는 듯하다." (p.106)
한낮 기온은 조금 오른 듯합니다. 사람들의 얼굴 근육도 풀렸는지 알듯 모를 듯 미소가 번집니다. 겨울로 가기에는 조금 이르다 싶었는지 하늘빛은 여전히 가을을 닮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