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도 다 지난 시점에 이 책을 읽는다는 게 조금 쑥스럽고 생뚱맞은 느낌도 든다. 이맘때의 나라면 <가을밤의 모든 것>이나 <가을밤의 어떤 것>쯤은 읽어야 할 터인데 아쉽게도 그런 제목의 소설은 없는 듯하다. 사실 나는 백수린 작가가 쓴 <봄밤의 모든 것>이 출간되었던 올해 초부터 읽어야지, 읽어야지, 노래를 부르다가 끝내 읽지 못한 채 지금에 이르고 말았다. 물론 소설 한 권 읽는 데 무슨 기한이 정해진 것도 아니요, 다 읽은 후 시험을 치를 것도 아니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왠지 모르게 찝찝함이 남아 있었다. 말하자면 나는 올해가 다 가기 전에 이런 찝찝한 기분을 털어버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손에 잡았다.
어떻게 보면 약간의 의무감으로 시작한 일인데 책은 의외로 빠르게 읽혔다. '아주 환한 날들', 빛이 다가올 때', '봄밤의 우리', '흰 눈과 개', '호우豪雨', '눈이 내리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등 7편의 단편이 실렸다고는 하지만 작가가 의도했던 어떤 순간을 스냅사진에 담듯 포착하여 독자들에게 그 정점의 시간만을 제시하는 까닭에 책을 읽는 독자는 마치 그 상황을 영상으로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오히려 하나하나의 단편이 결말을 향해 치달릴 때면 '벌써?' 하는 물음이 절로 나왔고, 하나의 단편이 끝날 때면 언제나 못내 아쉬운 마음을 달래느라 들여마셨던 숨을 길게 내뱉어야만 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작지만 분명한 놀라움이 그녀의 늙고 지친 몸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번져나갔다. 수없이 많은 것을 잃어온 그녀에게 그런 일이 또 일어났다니. 사람들은 기어코 사랑에 빠졌다. 상실한 이후의 고통을 조금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되고 마는 데 나이를 먹는 일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p.36 '아주 환한 날들' 중에서)
작가는 이 책에서 시간으로도 되메울 수 없는 상실의 무력감에 대해 담담한 필체로 묘사하고 있다. 어떤 이유로든 우리는 가까웠던 사람이나 존재들과 이별을 할 수밖에 없고, 그와 같은 상실의 아픔은 다른 어떤 관계로도 대체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 각자가 겪었던 상실의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다. 다만 우리는 삶에서 겪는 여러 상실의 상처를 안은 채 시간의 경과를 통하여 혹은 다른 존재와의 새로운 관계를 통하여 과거의 아픔을 조금씩 치유할 뿐이다. 작가는 각각의 단편에 등장하는 주인공 모두가 그와 같은 아픔을 공유하지만 그들이 치유하고 위로받는 순간은 각각 달라서 그 하나하나의 모습을 세밀한 필체로 그려내고 있다. 들뜨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냄으로써 책을 읽는 독자는 가슴이 아릿해지기도 한다.
"거듭될수록 소희의 상상은 익숙한 서사를 게으르게 변주한 형태를 띠었는데, 그건 악의 때문이 아니라 소희에게는 죽음이 아직 너무나 추상적인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단 한 번도 말을 나눠본 적 없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해야 할 이유는 없지, 소희는 생각했다.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범죄자일 수도 있었고 자식들에게 버림받을 만한 일을 한 부도덕한 아버지였거나 사기꾼, 자발적인 고독을 택한 은둔자일 수도 있었다. 만약 한 번이라도 대화를 나눴다면 소희가 싫어하게 되었을 만한 인간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어떤 사람이었든 한때 존재했던 생生이 이제 더 이상 여기에 없었다. 그런데 여기에 없다니. 그건 대체 무슨 말이지?" (P.172 '호우豪雨' 중에서)
오세영 시인의 시 <10월>에는 다음과 같은 시구가 등장한다. '우리는/아름다운 이별을 갖기 위해서/오늘도/잃어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단 한 번의 영원한 이별을 위해 수많은 이별을 경험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또 내면서 눈물도 메말라 더 이상 누군가를 위해 흘릴 눈물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영원한 작별을 고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구가 탄생한 이래 단 한 번도 같은 날씨가 반복되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는 탄생과 더불어 똑같은 상실의 상처를 단 한 번도 반복하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의 마음에 굳은살이 생길 때까지 여러 이유로 이별하고, 떠난 사람을 때로 미워하기도 하면서 또 다른 만남을 이어간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이별과 동시에 또 다른 이별을 준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나서 주미는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최악을 상상하며 얼마나 쓸데없이 인생을 낭비하며 살고 있는지 마침내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어떤 얼굴로 다가올지 짐작할 수조차 없는 미래와 끝에 대해서 대비할 능력이 마치 우리에게 있는 것처럼 헛되게 믿으면서. 그렇게 말한 후 우리는 주미의 이제 일곱 살이 된 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한없이 잔혹한 인생이 얼마나 변덕스러운 방식으로 우리에게 또다시 기쁨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조금 더 말했다. 이미 다 환해졌다고 생각한 연노란색 하늘과 부드러운 윤곽을 지닌 산등성이가 맞닿은 부분을 따라 아주 가느다란 선이 생기고 그것을 우리가 발견할 때까지." (P.245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중에서)
문학평론가 박혜진은 백수린 작가가 쓴 이 소설집에 대해 <잘 적응된 허무>라는 제목으로 비교적 긴 글을 썼다. 그의 글은 '사라지지 않는 빛을 만드는 백수린은 한국문학의 새로운 경지다. 암흑 같은 마음을 살리는 소중한 백야다.'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고 있다. 백수린 작가는 어쩌면 우리 삶에서 결코 깨뜨릴 수 없는 상실의 아픔과 허무의 장벽을 넘어서기 위해 자신의 소설집 이름을 <봄밤의 모든 것>으로 정했는지도 모른다. 눈밭의 상처에 희망을 불어넣기 위해서 말이다.
별로 한 것도 없는 듯한데 다시 또 주말. 10월도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부스스한 가을 햇살에도 모과가 익어가고 있다. 그렇게 어수선한 가을이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