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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쥐님의 서재
  • 급류
  • 정대건
  • 12,600원 (10%700)
  • 2022-12-22
  • : 95,110

순수한 아름다움에는 3할의 기쁨과 6할의 슬픔, 그리고 잡다한 불순물이 1할쯤 섞여 있다는 것을 나는 최근에야 알았다. 순도 100%의 기쁨이나 100% 슬픔을 지닌 아름다움은 이 세상에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비로소 알았다. 뿐만 아니라 각자가 속한 연령대에 따라 아름다움이 발산하는 구성 성분을 각각 다르게 인식한다는 것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창작자 역시 그가 발견한 아름다움의 질료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고, 우리가 아름다운 풍경이나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누군가는 웃고, 또 다른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문학작품은 현실 세계의 이면을 드러내기 위해 끝없이 노력한다. 피상적 관찰에 불과한 현실에서의 삶에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는 일, 어쩌면 그것이 문학이 추구하는 시대적 소명일지도 모른다. 최근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정대건의 소설 <급류> 역시 사랑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려 애쓰지만, 우리가 현실의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사랑의 소용돌이와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채로운 인간의 감정을 심도 있게 추적하기도 한다. 사랑이 아름답다는 건 상상에서나 존재하는 피상적인 개념일 뿐 우리가 삶에서 경험하는 사랑은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선에 따라 충만한 기쁨일 수도 있고, 지저분한 슬픔의 잔해일 수도 있음을 작가 정대건은 자신의 소설을 통해 증명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도담에게 사랑은 급류와 같은 위험한 이름이었다. 휩쓸려버리는 것이고,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 발가벗은 시체로 떠오르는 것, 다슬기가 온몸을 뒤덮는 것이다. 더는 사랑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왜 사랑에 '빠진다'고 하는 걸까. 물에 빠지다. 늪에 빠지다. 함정에 빠지다. 절망에 빠지다. 빠진다는 건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p.100)


소설은 계곡과 저수지로 유명한 '진평'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열일곱 살의 도담은 도시에서 전학을 온 해솔에게 한없이 끌린다. 게다가 물에 빠진 해솔을 구하기 위해 겁 없이 뛰어들었던 도담은 결국 베테랑 소방대원인 도담의 아버지 창석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살아나게 되었고, 그 일을 계기로 도담과 해솔은 급격히 가까워진다. 창석으로부터 수영을 배우게 된 해솔과 그 모습이 그저 반가웠던 해솔의 엄마 미영. 남편을 잃고 아들과 함께 외지로 이사를 온 미영 역시 창석의 다정한 모습에 반해 부쩍 가까워진다. 창석의 아내 정미는 잦은 병치레로 병원에 입원 중이었고, 도담과 해솔은 풋사랑의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도담의 친구 희진으로부터 창석과 미영에 대한 소문을 듣고 아빠 창석에 대한 의심과 미움이 쌓여가던 도담은 어느 날 밤 창석과 미영이 폭포 호수에서 만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도담과 해솔은 랜턴을 들고 폭포로 향했고 그곳에서 두 사람을 발견하자 랜턴을 켜게 된다. 그리고 물로 뛰어든 미영을 구하기 위해 창석마저 급류에 휩쓸리고 두 사람은 결국 사망한 채 발견된다. 엄마를 잃고 진평을 떠난 해솔은 할머니와 함께 자란다. 아빠를 잃은 도담은 진평을 떠나지 않은 채 건강을 되찾은 정미와 함께 지낸다. 해솔의 소식만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도담과 도담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해솔. 그렇게 끝날 것 같은 인연은 두 사람이 대학을 간 후 극적으로 재회한다. 약학과에 진학하여 약사가 되고자 하는 해솔과 물리치료사를 꿈꾸는 도담. 그들은 그동안의 결별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상대방에 대해 집착하고 탐닉한다. 그렇게 두 사람의 불안한 사랑이 이어지는데...


"해솔과 얽힌 사연 때문에 연상되는 슬픔. 같은 상처를 가진 동질감. 연민이다. 우리가 보통 지독한 인연은 아니지. 해솔과의 재회에 운명 같은 단어가 연상되는 건 우연에도 인과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의 습성 때문이다. 추억 때문이다. 좋았던 날들에 대한 반가움과 지나가 버린 한때에 대한 슬픔일 수도. 이성에 대한 열정? 호르몬 작용은 진작 끝났다. 소식이 궁금하고 그리워하는 마음. 그런 때도 분명히 있었다. 마음의 불씨는 전부 사그라져 버렸다. 완전한 전소. 남은 거라고는 그을린 자국과 탄내 가득한 폐허."  (p.226)


해솔과 도담의 불안한 사랑은 결국 도담의 엄마인 정미의 개입으로 인해 끝이 나고, 서로에 대한 소식도 모른 채 한동안 세월만 흐른다. 소방서에서 의무 소방대원으로 군생활을 한 해솔은 한강에 투신한 학생을 구조하는 등 자신의 목숨을 아랑곳하지 않고 위험을 향해 뛰어든다. 그리고 해솔은 결국 약사가 아닌 소방서의 구조대원이 된다. 물리치료사가 된 도담 역시 틀에 박힌 일상에서 떠돈다. 그들이 서른 살이 된 2018년의 어느 날 불길을 뚫고 빌라 안으로 들어갔던 해솔이 자신의 동료가 보이지 않자 다시 불길 속으로 뛰어들고...


"도담은 여유롭게 헤엄치며 웃었다. 자유롭다. 내가 얼마나 수영을 잘했던가. 지나간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있을지 모를 미래에도 목매지도 않으면서 진정으로 살고 싶어졌다.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거센 물살을 헤엄치듯이."  (p.295)


정대건의 소설 <급류>가 갖는 유일한 단점은 책을 읽는 독자들의 감정 소모가 극심하다는 것일 테다. 물론 소설의 흡입력이 워낙 커서 자신도 모르게 소설 속으로 빨려들게 되고, 그렇게 공감하며 읽다 보면 나른한 피로가 몰려오는 것이니 그것을 꼭 단점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 것은 왜 이 소설의 결말이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느냐 하는 점이다. 나만 이렇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어쩌면 나는 비극에 너무 익숙해져 있고, 이와 같은 부류의 소설 결말은 당연히 비극으로 끝나야 한다고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너무나 통속적인 독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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