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꼼쥐님의 서재
  • 어서 와 송사리 하우스
  • 기타하라 리에
  • 15,120원 (10%840)
  • 2025-03-28
  • : 200

'성장했다'는 말은 타인에 의해 내려지는 칭찬 성격의 판단인 동시에 이따금 나 스스로의 자기 검열에 의해 내려지는 뿌듯한 자부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개인의 성장은 타인과의 관계에 의하거나 자신의 결단이나 의지에 의해 그 결실이 맺어지곤 한다. 자신의 인생에 반드시 넘어야 할 성장의 계단이 숫자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우리들 각자는 '성장했다'는 말과 함께 한 고비를 넘기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개인의 성장이나 깨달음이 일정한 조건이나 환경에 부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의 삶에서 우연처럼 주어지는 삶의 선물과 같은 게 아닐까 싶은 것이다.


"인간이란 망각의 동물이다. 즐거웠던 기억도,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던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잊히기 마련이다. 물론 모든 것을 잊는 건 아니지만 완벽하게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잊고 싶지 않은 소중한 순간도 잊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그 덕분에 살아갈 수 있는 거다. 제아무리 깊은 슬픔에 휩싸여도 인간이 다시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건 '잊는다'는 기능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p.68)


기타하라 리에의 소설 <어서 와 송사리 하우스>는 외모도 성격도 직업도 제각각인 네 명의 여성이 한 집에 모여 살게 되면서 겪는 여러 에피소드를 가벼운 터치로 묘사한 청춘 드라마라고 하겠다. 말하자면 일명 '송사리 하우스'로 불리는 여성 전용 셰어 하우스에 세 들어 사는 네 명의 입주민이 주인공인 짧지만 강렬했던 셰어 라이프라고 하겠다. 막연히 도쿄를 동경하여 대학을 졸업한 후 도쿄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규슈 출신의 평범한 여성 엔도 하루카, 삼류 배우에서 일류 배우로의 도약을 꿈꾸지만 노출을 고민하는 배우 미야타 나치, 여성 직장인으로서 원대한 꿈이 있지만 결혼 앞에서 갈등하게 되는 오야이즈 가에데, 대기업 사장의 딸이자 송사리 하우스의 주인이지만 가정사로 인해 불운한 성장기를 겪었던 이쿠시마 유즈, 이 네 사람이 살고 있는 '송사리 하우스'는 역에서 걸어서 2분 거리에 있는 입지 좋은 곳이지만 재개발 구역으로 선정되는 바람에 그들에게 남겨진 시간은 고작 1년. 소설은 그 1년여의 여정을 아이돌 출신의 작가 기타하라 리에의 섬세한 필체로 담아내고 있다.


"나치 말대로 인간이라는 나약한 생물은 혼자 살아가기보다 누군가와 함께 살아갈 때 더 강해질 수 있는지도 모른다. 지킬 것이 있어야 더 강해질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중요한 것을 나는 성인이 된 후 잊고 있었다. 팀원들을 위해 이를 악물었기에 그 여름의 일본 제일이 될 수 있었는데, 사회의 거친 풍파에 시달리다 보니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단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힘을 낸다는 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일이다."  (p.166)


소설은 '송사리 하우스'의 입주민인 네 여성이 겪는 꿈과 사랑, 현실적인 고민과 그들 나름의 적절한 해결책 등을 제시하며 억지나 왜곡이 없이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이어 나간다. 인기 아이돌 그룹의 리더이자 멤버였던 키타하라 리에에게 이와 같은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는 건 소설을 읽는 독자로서도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하루카가 미팅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남자 친구 마사야를 어느 날 몸이 아파 일찍 귀가하게 된 날 나치의 방에서 보게 된다는 설정은 현실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동방예의지국인 대한민국에서 성장한 나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그런 일이...'라고 의문부호를 달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소설은 마지막 순서인  이쿠시마 유즈에게로 옮겨진다. 부동산 회사의 사장인 유즈의 아버지는 그녀가 어렸을 때 이혼한 후 새로운 가정을 꾸렸고, 이로 인해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원망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결국 이복동생인 쇼다이가 '송사리 하우스'에 찾아와 서로 인사를 하게 되는데...


"앞으로 송사리 하우스에서 보낼 시간이 그리 길진 않다. 하지만 이 집에서 보낸 시간이 확실히 존재했던 것은 흔들림 없는 사실이다. 그 사실이 있다는 것만으로 인생은 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언젠가 끝나 버리기 때문에 다들 소중히 여기는 게 아닐까. 아무것도 없는 나라서 더욱 남아도는 공간에 흘러들어 와 준 사랑스러운 시간들. 나는 이 집에서 보낸 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내게는 가족이 있다. 혈연관계는 아니고 말로 확인한 적도 없지만 확실히 이곳에 있다."  (p.246)


국내에서의 취업이 어려워 국내 구직 활동을 접고 일본에 가서 1년 남짓 셰어 하우스 생활을 하며 고생을 하다 돌아온 청년을 알고 있다. 한국에서 일본어를 공부하고 자격증도 있었던 그는 일본인과의 간단한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셰어 하우스에서 사는 동안 입주민들과의 대화는 거의 없었다고 했다. 사는 게 빡빡하고 힘들었던 탓인지 함께 어울리는 일도, 서로의 고민을 이야기하는 시간도 일절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감옥과도 같았던 셰어 하우스에서의 1년을 매우 끔찍하게 여기는 듯했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의 셰어 하우스 입주민들은 마치 한 가족처럼 서로를 돌보고, 고민을 나누고, 즐거운 일을 함께 하고자 한다. 어쩌면 행운은 우리가 만나는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 속에서 겪는 고통이나 즐거움을 통해 깨닫고 성장하는 것도 전혀 다를 테지만 말이다. 유난히 바빴던 한 주. 벌써 주말이다. 한낮 기온이 초여름처럼 덥게 느껴지는 걸 보니 여름이 멀지 않은 듯하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