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으로 순서를 밟아 등단한 작가와 그렇지 않은 작가의 글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잘 쓰고 못 쓰고의 차이가 아니다. 재기 발랄함이랄까 아니면 자유분방함이랄까. 아무튼 신춘문예와 같은 정식 관문을 통과하지 않고 어쩌다 누군가의 눈에 띄어 등 떠밀려 책을 내게 된 사람의 글에는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거칢이나 틀에 얽매이지 않은 웃음 코드가 존재한다. 물론 적절한 유머와 타고난 글솜씨를 발휘하여 독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는 작가들이 왜 없을까마는 정식으로 등단한 작가의 유머에는 왠지 모르게 정형화되고 순서에 얽매인 듯한 느낌이 들뿐만 아니라 어디선가 읽었음 직한 기시감이 드는 게 사실이다. 어쩌면 그들 나름의 정제되고 틀에 잡힌 일정한 웃음 코드가 따로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식 절차를 밟지 않은 작가의 글에는 독자가 미리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전혀 짐작할 수 없는 내용의 웃음 코드가 반드시(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존재한다. 방심하며 읽다가 허를 찔렸다고 할까, 암튼 어느 정도의 의외성은 아마추어 작가의 글을 읽는 또 다른 재미가 아닐 수 없다.
"마침 언제 읽었는지 생각도 안 나지만 내가 이런 메모를 해둔 걸 발견했다. (나는 평소에 책을 읽을 때 메모도 잘 안 하고 그 시간에 또다른 책을 읽는 스따일이다. 그만큼 이 문제에 골몰했다는 뜻 되시겠다, 흠.) 독일 작가 홀거 라이너스 (『남자 나이 50』의 저자)는 "대단한 재능이 곧 성공적인 삶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뛰어난 재능을 갖게 됨으로써 편협하고 무절제한 생활을 하기 쉽다. 이런 현상은 거의 모든 직업에서 나타난다. 예술가든 사업가든 운동선수든 상관없이 말이다"라는 말을 남겨서 아니 고뢔! 싶은 마음이 들게 했으며, ..." (p.47~p.48)
평소에 내가 많은 책을 읽는 건 아니지만 이옥선 작가와 같은 '어작'(내가 재미 삼아 붙인 호칭. '어쩌다 작가'라는 뜻)의 작품이 우연히 얻어걸릴 때면 괜스레 웃음이 나곤 한다. 예컨대 김미옥 작가가 쓴 <미오기傳>이라든가 전시륜 작가의 유고집 <어느 무명 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 등은 이따금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배시시 웃음 짓게 된다. 잡식성의 독서를 하는 나와 같은 이들이 누릴 수 있는 또다른 즐거움이라고 하겠다. 특별한 계획도 없고, 이렇다 할 목적도 없는 이의 손에 우연히 들어온 한 권의 책, 선물과도 같은 그 시간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이옥선의 산문집 <즐거운 어른>도 그런 책이었다.
"나는 이제 어느 정도 자유롭다. 관습과 도덕으로부터, 또 종교와 신념으로부터, 이런저런 인간관계로부터 거의 자유롭다. 다만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는 아직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으며 지금까지 먼 길을 온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한다." (p.214)
1부 '인생살이, 어디 그럴 리가?', 2부 '나에게 관심 가지는 사람은 나밖에 없음에 안도하며'의 단출한 구성의 이 책에서 작가는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 자유로움을 마음껏 펼쳐 보인다. 성형수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나 공공장소에서 보게 되는 낯 뜨거운 애정행각에 대한 견해 등은 1948년 그것도 경상도 태생인 작가에게는 눈꼴 시려서 그냥 넘길 수 없는 사회 풍조임을 여실히 드러내는, 꼰대스러움(?)을 맘껏 풍기는 한 단면이었지만 그런 사소한 것들을 제외한다면 70대 중반의 할머니가 쓴 글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유려한 산문집이었다. 건강을 위해 틈틈이 요가를 하고, 동네 목욕탕에 출근 도장을 찍는 등 그 나이대의 사람들이 누리는 일상을 유쾌하게 풀어내는가 하면 어려서부터 즐겨 들었던 음악과 오랫동안 친목을 다져왔던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도 눈길을 끈다.
"달목욕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제 가사에서 좀 놓여나서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긴 50, 60대가 많다. 40대는 얼마 안 되고 70대도 많지는 않다. 매일 대략 비슷한 시간대에 다니기 때문에 학교 다니는 것 같고, 새벽반(일찍 깨는 노인이나 자영업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전반 오후반(오전에 운동 프로그램이 있어 나는 주로 오후반에 나간다) 저녁반(작장인들이 퇴근 후 많이 온다)끼리는 같은 반 친구처럼 얼굴도 다 안다. "어제는 왜 안 왔느냐" "이 동네는 어째 사생활 보장이 안 된다니까" "오늘은 좀 늦었네" 등등의 말을 나누고, 몇 년을 그렇게 다니다보니 서로의 사정을 알게 되고 친밀하게 지낸다." (p.140)
아이들을 키울 때 쓴 육아일기 <빅토리 노트>를 출간한 후 새 글을 다시 쓸 일은 없다고 생각했던 작가가 '글을 쓰다보니 내 안에 이렇게 할말이 많았나 싶게' 빠른 속도로 진도가 나갔다는 이 산문집은 그래서 더 공감하며 읽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작가라는 타이틀을 떼고,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을 살아가는 일반인으로서, 어깨에 힘을 빼고 가볍게 써내려간 글이기에 책을 읽는 나도 작가와 조금 더 거리를 좁힐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여유가 없는 게 아니라 마음이 동해야 겨우 책을 읽는 게으른 독서가로서 이옥선 작가와 같은 '어작'(어쩌다 작가)의 작품을 읽게 되는 건 그야말로 귀한 선물이라고 하겠다. 나는 여전히 감나무 아래 입 벌리고 누워, 감이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심정으로 다음에 만날 '어작'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