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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쥐님의 서재

가뜩이나 혼란한 시국에 미세먼지까지 덮쳐서 대한민국은 온통 잿빛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야를 가리는 것은 비단 미세먼지의 탓만은 아닙니다. 내란 수괴에 대한 헌법제판소의 선고가 늦어지면서 극우 유튜버가 생산하는 온갖 억측과 음모로 인해 대한민국의 미래는 그야말로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암흑 천지로 변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때일수록 무너지는 공권력을 확실히 되살려야만 자칫 허물어질 수 있는 민주주의 체제를 공고히 할 수 있는데, 검찰과 법원은 물론 일선에 있는 경찰마저 극우 난동자의 편에 서서 방관하고 방치하는 탓에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울하다 못해 처참한 지경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직장 동료들과 함께 사무실 근처의 식당에 들렀을 때도 작은 충돌이 있었습니다. 주문한 식사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잠시 한담을 나누고 있는데, 누군가의 입에서 최근 전국 곳곳에서 발생한 산불 때문에 걱정이라는 말이 흘러나왔고, 다들 이 말에 수긍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대뜸 이를 듣고 있던 한 직원이 이 모든 게 중국 유학생의 소행이라는 둥 윤석열을 지지하는 곳에서만 이렇듯 큰 불이 발생한 데에는 어떤 음모가 있을 것이라는 둥 하면서 말도 되지 않는 억측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야당에서 고용한 누군가에 의해 윤석열 지지세가 높은 지역에 산불을 일으킴으로써 그들이 천벌을 받았다는 소문을 퍼뜨리려고 계획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야당에 의한 자작극이란 셈이지요. 하도 어이가 없고 기가 차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법원 폭동을 일으킨 것도, 심지어 12.3 내란을 일으킨 것도 모두 야당의 음모라고 주장하면 되겠네? 야당을 지지하는 법원 직원들이 극우 유튜버인 체 가장하여 법원에 난입했고, 윤석열을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하기 위해 윤석열과 비슷하게 생긴 인물을 텔레비전 화면에 등장시켜 계엄령을 선포하게 했다고 하면 되지 않겠어? 왜 그런 음모론은 주장하지 않는 거야?" 했더니 그제야 입을 다물었습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행태는 사실 극우 유튜버와 국힘 의원들에 의해 비롯되었지만, 그 시발점이 되었던 야당 국회의원들을 향해 던진 극우 난동 세력의 날계란 투척 행위나 야당 여성 의원을 향한 폭력 행위 모두 자작극이라고 했던 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망언이었습니다.


극단적인 분열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지금보다 헌재 선고 이후를 더 걱정하고 있습니다. 만일 탄핵이 기각된다면 자신의 무죄와 영구 집권을 꾀하는 윤석열 세력과 이를 저지하려는 대다수 국민들 간의 내전은 피할 수 없을 것이며, 인용이 되더라도 이에 불복하려는 극우 세력의 난동은 한동안 이어질 것입니다. 이래저래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합니다. 이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헌재의 만장일치 탄핵 인용과 일선에 있는 경찰의 엄정한 법집행 밖에 없습니다. 이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을 듯합니다. 단지 감정적으로 수용하지 못할 뿐입니다.


오늘도 414명의 작가들이 헌법재판소를 향해 윤석열의 파면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한강 작가는 "훼손되지 말아야 할 생명, 자유, 평화의 가치를 믿는다. 파면은 보편적 가치를 지키는 일"이라고 했으며, 아들이 좋아하는 김초엽 작가는 "제발 빠른 파면을 촉구합니다. 진심 스트레스받아서 이 한 줄도 못 쓰겠어요. 빨리 파면 좀!"라고 했으며, 장류진 작가는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을 촉구합니다."라고 담담히 말했습니다. "내란 수괴 처단하고 평등사회 건설하자"고 했던 정보라 작가, "친구들 중에서 당신을 견뎌낼 수 있는 자들 앞에서나 날뛰세요(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중 한 구절)"라고 했던 신형철 문학평론가. 성명을 발표했던 작가들도, 그리고 어쩌면 우리도 억측이나 망언이 아닌 상식의 편에 서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상식이 무너진 사회에서는 나도 당신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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