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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쥐님의 서재

멈칫하며 한 발짝 뒷걸음질 치던 봄이 제자리를 찾은 듯합니다. 내렸던 눈도 모두 녹아 며칠 전의 폭설은 마치 변덕스러운 봄날에 있었던 작은 해프닝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3월 중순에 대설주의보라니... 갑작스러운 눈 소식에 놀랐던 것은 비단 인간만은 아니었던 듯 어제 그제 파랗게 질린 냉기가 새벽 등산로에 가득했었습니다. 사람도, 나무도, 동물도, 땅도, 심지어 대기를 떠도는 공기마저 놀랐었나 봅니다.


기온이 오르자 미세먼지가 가득합니다. 아파트 화단에도 산수유꽃이 피었습니다. 지워질 듯 위태로운 노란 산수유꽃은 자신의 존재감을 내세우지 않아 좋습니다. 알아주는 이 하나 없어도 조용히 피었다가 그 끝도 알려주지 않은 채 지워집니다. 누군가의 부지런한 시선이 주어지지 않는 한 우리는 산수유꽃의 종말을 결코 알지 못합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게 요란하지 않은 모습으로 스러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따금 생각합니다. 죽음이 불러오는 누군가의 슬픔이나 그리움도 없이 그저 조용히, 마치 어제의 일상인 양 가볍게 사라질 수만 있다면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조금 더 겸손해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한덕수 총리의 탄핵심판 선고가 24일 오전으로 정해진 가운데 내란을 주도했던 윤석열에 대한 선고 기일은 여전히 오리무중, 안갯속입니다. 지난해 말부터 이어져 온 국민들의 내란 피로감은 그렇게 끝도 없이 연장되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극우 시위자들의 철없는 행동은 점점 도를 넘고 있습니다. 대학생들에 대한 폭력은 물론 이제는 그 대상을 넓혀 정치인들에게로 향하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프랑스에서 보았던 극렬 시위자의 난동을 우리나라에서도 보게 될 줄이야...


현 정부가 집권한 이래 대한민국의 민주화 지수는 크게 추락했습니다. 물론 어느 한 분야도 좋아진 게 없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딱 하나 좋아진 게 있다면 국민들 대부분이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종교를 하나의 산업으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대한민국의 종교는 믿음이나 구원의 차원이 아니라 종교 지도자의 배를 불리는 하나의 산업체로서 기능한다는 사실을 국민 대다수가 깨닫게 되었다는 건 현 정부가 이룩한 커다란 성과라고 하겠습니다. 일요일이면 습관처럼 성당에 나가는 나도 주위 사람들로부터 '별 이상한 사람 다 보겠다'는 듯 차가운 시선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로 어디 가느냐? 물었을 때 교회에 간다고 답하는 경우입니다. 성당이 아닌 교회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그야말로 하느님이 아닌 목사의 부역자로 전락하는 것은 물론 긴급 구제가 필요한 참으로 딱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인식은 교회는 물론 사찰이나 무당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종교를 갖는다는 건 지능이 떨어지는 이의 한심한 작태로밖에 인식되지 않는 듯합니다. 아무리 할 게 없기로서니 목사나 무당의 농간에 놀아나느냐는 비아냥을 수도 없이 들어야 합니다.


한낮 기온이 부쩍 올라 들고 나온 코트가 부담스러운 하루였습니다. 주말을 맞는 사람들의 표정은 제법 밝았고, 헌재 판결이 늦어지면서 생긴 내란의 피로는 그들의 얼굴에 덕지덕지 묻어나는 듯했습니다. 3월도 이제 마지막 한 주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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