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과 시제에 의해 빚어지는 넓은 간극에 대해 생각할 때가 더러 있다. 예컨대 사랑하고 있는 사람과 사랑하려는 사람 사이의 간극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간극 같은 것이 그것이다. 양자 사이의 간극은 너무 넓어서 섣부르게 정의하거나 예단하는 것은 물론 '어떠했으면' 하는 가정조차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울 때가 많다. 삶을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대척점에 있는 많은 것들과 그들 사이의 까마득한 간극을 조금씩 깨우쳐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소설가 김애란의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을 읽으면서 문득 떠올랐다 스러진 상념들이 가는 햇살 속 먼지처럼 부유하는 아침. 나는 쉽게 잊히는 기억들을 한 줌 끌어 모아 서평을 빙자한 한 편의 글을 써본다.
"내가 처음 당선 소식을 들은 날, 내 어머니가 전화를 받은 장소가 떠오른다. 노래방, 내 어머니도 가는 곳. 한 번의 농담과 또 한 번의 농담, 그다음 번의 농담으로 삶의 품위를 지키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쁜 소식이 어머니를 짓누를 때, 내 어머니가 놀러 가지 않고 살러 간 곳. 먼 옛날에는 이 세계가 전부 노래방이었겠지. 그러니 언젠가 삶의 어느 질곡에서, 노래방 한구석에서, 우연히 당신과 마주치게 된다면, 그리고 그때 당신이 조금 목말라하는 것 같다면, '진짜와 진짜 비슷한 아이스크림 케이크'는 내가 사겠다." (p.52~p.53)
나는 대개 시인의 산문집을 즐겨 읽는 편이지만 때론 소설가의 산문집이 마음속에 깊이 각인될 때가 있다. 정유정 소설가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이나 소설가 신경숙의 <아름다운 그늘> 등이 그랬다. 그들의 공통점은 늘 소설만 쓰던 작가가 드물게 선보인 산문집이라는 특징이 있다. 소설과 산문집을 번갈아가며 출간하는 작가에게는 없는 매력이 그들에게는 있다. 글로 쓰고 싶었지만 끝내 쓰지 않았던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였다가 마침내 한 권의 책이 되어 시중에 나왔을 때, 그 책을 읽는 독자가 받는 인상은 무척이나 각별하다. 김애란 작가의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도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글을 쓰다 엔터키를 치면 마법처럼 종이 한 장이 더 생긴다. 누군가의 문장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때 우리 마음에는 빈 공간이 생긴다. 옛날 사람들의 문장이 우리 이야기가 되고, 나의 삶이 내 것이 되는 정갈한 자리가. 그 자리에 선배가 적어놓은 말들은 또 얼마나 정답고 재밌는지. 책 앞머리에서 선배는 "이제 나는 서른다섯 살이 됐다. 앞으로 살 인생은 이미 살 인생과 똑같은 것일까" 묻는다." (p.143)
2002년에 등단한 작가가 이후 17년 동안 보고 느낀 여러 '이름'을 기록한 이 책은 '나를 부른 이름'의 1부와 '너와 부른 이름'의 2부를 거쳐 3부 '우릴 부른 이름들'로 끝을 맺는다. 소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1부에서 작가는 자신의 부모님과 고향 등 유년 시절의 추억과 이야기들을 담고 있으며 첫 당선 소식을 듣고 가족에게 전했을 때의 떨림과 아련함을 떠올리기도 한다. 2부에서는 소설가 김애란과 그를 둘러싼 주변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3부에서는 작가가 겪은 구체적인 경험과 느낌들이 되살아난다. 읽었던 책과 즐겨 쓰는 문구와 뉴스에서 들었던 소식들...
"만일 문학에 전통이란 게 있다면 그중 우리가 이어나갈 게 있다면 그건 단순히 소재나 형식이기 전에 사람과 이 세계를 대하는 어떤 태도 혹은 마음이지 않을까. 우리가 죽은 자를 기리려 한다는 건, 잘 묻으려 한다는 건 결국 삶을 귀하게 여긴다는 뜻과 다르지 않으니까. 그래서 내겐 '나는 죽은 사람 편'이라는 저 말이 우리 문학의 아프고 소중한 유산 그리고 전통으로 느껴진다." (p.292~p.293)
나의 기억력은 날이 갈수록 그 기능이 떨어지고 있다. 그것은 곧 내가 불러줄 새로운 이름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의미한다. 며칠 전에는 휴대폰을 차에 두고 내렸다가 마지막으로 둔 곳이 기억나지 않아 휴대폰을 찾는 데 반나절을 소비하기도 했다. 바빠서 정신없이 서두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다들 위로하는 분위기였지만 나는 이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사실 앞에서 그저 망연할 따름이었다. 언젠가 나의 기억력도 수명이 다하여 '삐뽀삐뽀' 비상신호를 울리며 한도 초과를 알릴 테지만, 적어도 그날까지는 '잊기 좋은 이름;들을 다정히 불러주고 싶다. 그 이름들 중에는 어쩌면 내가 잊지 않기 위해 몇 번이고 되뇌는 이름도 분명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