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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쥐님의 서재
  • 다이내믹 코리아
  • 정주식 외
  • 18,900원 (10%1,050)
  • 2025-02-03
  • : 2,120

뉴스도 이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알고 싶은 것만 아는 뉴스 맞춤형 시대가 되고 말았다. 플랫폼이 알아서 영상을 추천해 주는 유튜브 알고리즘 덕분(?)이다. 자신의 성향이나 정치이념에 맞지 않는 뉴스나 내가 지지하는 정당에 불리한 뉴스는 애시당초 뉴스 취급도 받지 못한다. 정치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그와 같은 추세를 반영하듯 평소 정치 뉴스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던 많은 국민들에게도 강제적으로 어느 한 편을 선택하도록 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온라인에서 그치지 않고 실생활에서도 극단적인 편 가르기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자신과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과는 업무 외에는 사적인 말조차 건네지 않으려는 모습을 볼 때마다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갈수록 개별화되는 플랫폼 알고리즘 속에서 하나의 사안을 두고 같이 고민하고 토론하는 콘텐츠는 사라져간다는 것, 도파민 ROI 시대에 뉴스의 가치는 평가절하될 수밖에 없다는 것, 이 같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정확히 민주주의의 지향과 반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이 토론자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인정투쟁은 명예와 명성을 추구하는 데 반해 주목경쟁은 사람들의 관심 그 자체를 좇는다는 박권일의 지적과 정치인들이 숙성시킬 시간이 없이 콘텐츠의 전반적인 질을 떨어뜨린다는 정주식의 지적 역시 이 가설을 지지한다."  (P.43)


'통치자나 정치가가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통제하고 국가의 정책과 목적을 실현시티는 일'을 일컬어 우리는 '정치'라고 한다. 그러나 현 정부와 집권 여당은 사회 구성원의 의견을 조율하고 통합하려는 노력은 고사하고 더욱 갈등을 부추기고 반목과 대립을 조장하는 데 힘을 쏟았다. 야당과 시민단체를 향해 반국가 세력이라고 몰아붙이는가 하면 자신들을 향한 극렬 지지자들에게는 권력으로 비호할 수 있는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얻은 효과는 분명했다. 국민들을 이념적 내전 상태로 치닫게 함으로써 피아의 구별을 용이하게 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현 정부와 집권 여당의 목표였는지도 모른다.


"12월 3일 그날 밤의 사건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누군가는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환호했고 누군가는 민주주의의 허약함에 좌절했다. 희망과 좌절을 냉정하게 파악할 때 허약하기 짝이 없는, 그래서 그만큼 소중히 키워가야 할 우리 민주주의의 실체를 마주할 수 있다. 이 토론에 없는 것은 근거 없는 낙관과 희망 없는 비관이다."  (P.397)


2022년 봄 '토론의 즐거움'이라는 이름의 모임으로 치유 모임처럼 만나 2025년 1월까지 140여 회의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는 그들. 정주식 칼럼니스트를 비롯하여 <지금은 없는 시민>의 저자 강남규, <소수의견>을 썼던 박권일, CBS 뉴미디어 <씨리얼>의 신혜림 PD, <글쓰기의 최전선>을 쓴 은유 작가, <한겨레21>의 이재훈 편집장, 장혜영 전 국회의원이 그들이다. 책에 실린 13개의 테마, -'도둑맞은 집중력'과 뉴스의 위기, '죽은 개가 돌아왔어요' 복제견 찬반논란, 양당제를 돕는 중도정치의 역설, 정치인 향한 테러가 끊이지 않는 이유, 인구 문제를 과장함으로써 은폐되는 것들, 카리나는 몇 살부터 연애하면 됩니까?, 진보정치는 왜 망했을까?, 영피프티는 언제까지 젊을까?, 거부권 중독 윤석열 대통령의 심리 상태, 대한민국이 양궁협회처럼 운영된다면..., 사람들이 <흑백요리사>에 열광한 이유,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 계엄국과 응원봉,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는 어쩌면 윤석열 정부의 집권 전반에 대한 커다란 이슈들일 수 있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독자로서 아쉬웠던 점은 참가한 토론자들의 이념 성향이나 지향점이 매우 유사했다는 것이다.


"이 혼란의 끝에는 어떤 세계가 기다리고 잇을까. 우리가 겨울에 본 것은 국가적 아노미 상태에서도 질서를 만들어내는 시민들의 힘이다. 분명한 것은 당연한 미래는 없으며 어떤 세계와 결별할지 어떤 세계와 마주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일곱 논자가 만들고 싶은 미래의 청사진이 담겨 있다. 우리의 여정이 더 나은 공동체를 열어가는 데 작은 실마리를 전할 수 있길 희망한다."  (p.9 '여는 글' 중에서)


토론 문화가 사라진 자리에 폭력과 증오가 싹트고 있다. 대결과 반목이 일상처럼 꿈틀대는 이 시기에 우리가 평화와 공존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구심점은 과연 무엇일까? 폭력과 증오의 정치가 우리 사회를 번영의 세계로 이끌어 줄 리는 없다.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당장 먹기에는 곶감이 달다'는 속담처럼 눈앞의 이익에 눈이 먼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세를 불리는 데만 급급하고 있다. 그들에게 국가의 발전은 안중에도 없다. 언제쯤이면 우리나라에도 토론 문화가 되살아나서 좌와 우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국가와 국민을 위한 방안을 찾는 데 골몰하는 날이 올까. 과연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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