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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쥐님의 서재
  • 미오기傳
  • 김미옥
  • 16,200원 (10%900)
  • 2024-05-14
  • : 8,596

'신랄하다'는 단어를 아시는지요. 그렇습니다. 일상의 대화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는 아니지만 '분석이나 비평 따위가 매우 매섭고 날카롭다'는 뜻의 한자 단어입니다. 특이하게도 '매울 신(辛)'에 '매울 라(辣)'자가 결합된, 맵다는 의미의 한자가 중첩되어 뜻이 강조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기하지도 않고, 그닥 특별하지도 않은 이 단어를 내가 굳이 꺼내든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맵다'는 단어는 맛을 표현하기도 하고, 눈이나 코가 아린 상태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몹시 차갑고 냉혹하다의 뜻을 가진 '모질다'의 의미로 쓰일 때도 더러 있기 때문입니다. '시집살이가 맵다'와 같은 표현이지요. 나는 '신랄하다'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유년기의 어려운 환경을 이겨낸 사람들만이 갖게 되는 날 선 표현을 떠올리곤 합니다.


"나는 유년기와 아동기를 욕설의 세례로 풍요롭게 자랐다. 물론 내가 학습받은 내용을 전파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초등학교 1학년이 반 친구와 자지러지는 입씨름을 할 때 어른의 욕설을 능숙하게 사용하니 담임 선생님은 내 현란한 비속어에 기함을 했다. "네년을 낳고 네 에미가 먹은 미역국이 아깝고나!" 내 욕설을 듣던 담임 선생님도 그만 전염되어 '그 혀를 뽑아버리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나와 다툰 여자아이들은 다 책상에 엎드려 통곡을 했다. 물론 남자아이들도 온전할 수는 없었다."  (p.50)


유년기의 삶을 등급으로 나눌 수는 없겠지만 단순히 신(辛)하기만 했거나 랄(辣)하기만 했던 유년기를 보낸 사람은 신랄(辛辣)했던 유년기를 보낸 사람을 어쩌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유년기를 보냈거나 남들에 비해 돋보이는 유년기를 보낸 사람들은 신랄한 유년기를 보낸 사람들을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 추측합니다. 뭐 그렇다고 신랄한 유년기를 보낸 사람들을 찬양하거나 그것이 좋다는 의미는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신랄한 유년기를 보낸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독특한 시선이 문제라면 문제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해서, 공동체의 구성원에 대해서 100%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늘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전폭적인 신뢰는 아니지만 적대감이나 날 선 시선을 던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또는 그녀)는 훌륭하게 성장했다고 판단할 수 있겠습니다.


김미옥 작가의 에세이 <미오기傳>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작가의 신랄했던 삶의 단면에 대해 안타까워하거나 그 매웠던 시간을 어린 나이에 어찌 견디며 살아왔을까,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섯 자식과 병든 남편을 떠안았던 엄마에게 어리기만 한 막내딸은 없어도 좋을 잉여 자식이었던 셈입니다. 12살 때부터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입주 과외를 전전하며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서 써야 했던 작가에게 책은 자신의 신산한 삶을 잊게 하는 해방구이자 미래를 기약하는 작은 등불이었습니다. 독서에 몰두했던 작가가 자신의 SNS에 혼자만 알고 있기 아까운 책을 열성적으로 소개하면서 어느 순간 그녀는 북 인플루언서로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나는 타인의 도움으로 살았다. 세상은 집 없이 떠도는 여학생에게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나의 노력보다는 누군가의 온정으로 공부도 끼니도 해결할 수 있었다. 그중 사흘을 굶은 내게 밥상을 차려준 옆방의 모르는 언니를 나는 잊지 못한다."  (p.272)


신랄했던 유년기를 보낸 사람들의 글에는 남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그들만의 독특한 세계관이 담기게 마련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신기하게 바라보곤 합니다. 흔히 보지 못했던 새로운 표현이 등장하고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낮은 틈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웁니다. 그것은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었던 새로운 방식입니다. 전시륜 작가가 쓴 <어느 무명 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이 그렇고 김미옥 작가의 <미오기傳>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작가들의 여린 목소리를 통해 세상에 편입되지 않았던, 하마터면 세상에 편입될 수 없었던 몇몇 생명체의 존재를 뒤늦게 인지하곤 합니다.


"한나 아렌트는 '우리는 무지해서 살아남았다'고 했다. 인간을 믿을 수 없다는 것, 어제 당신을 향해 웃던 친구들, 친절한 이웃들이 갑자기 등을 돌릴 때 세계는 무너지는 것이다. 다시 나의 지인으로 돌아간다. 내가 아는 그는 우리나라의 엘리트층에 속하고 재력도 있다. 쾌활하고 유머 감각이 있으며 열린 사고를 갖고 있어 후배들도 좋아했다. 대체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는가. 코로나로 그의 사업이 힘들다는 얘기는 들었다. 하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 그는 늘 웃고 있었다."  (p.263)


우리가 사는 삶은 날아갈 듯 가볍지도 않고, 연약한 인간으로 하여금 무릎을 굻리게 할 만큼 혹독하거나 가혹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유년기의 삶은 있는 그대로의 날것의 삶을 경험하도록 합니다. 인간의 삶 전체를 따져볼 때 그것은 결코 가벼운 분량이 아닙니다. 내가 이 책 <미오기傳>을 쉽게 읽지 못했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이제는 다 지난 일인데 뭐.' 하면서 넘기기에는 책의 한 장 한 장이 내개 주었던 삶의 무게가 너무나 무겁게 느껴졌는지도 모릅니다.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설이 멀지 않았습니다. 나는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딸기 한 상자를 선물로 받고 인근의 카페에 들러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주었습니다. 딸기에 대한 답례 치고는 너무나 헐한 가격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그는 가장 환한 웃음으로 나를 기쁘게 했습니다. 하늘은 점점 어두워져 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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