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1
꼼쥐님의 서재

날씨가 많이 풀렸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아주 조금 당신을 그리워하였습니다. 눈이 녹고 강의 얼음이 풀리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도 그렇게 풀려가는 것이라고 나는 늘 생각해 왔습니다. 아직은 봄을 말하기에는 좀 이른 시기, 그리움이 깊어지면 내가 바라던 봄도 차츰 무르익겠지요. 미처 지우지 못한 과거의 흔적들이 마치 오랜 습관처럼 혹은 내달리는 버스의 관성처럼 나를 흔들고, 때론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나를 되돌리려 할지라도, 기온이 오르고 때가 되면 거르지 않고 봄이 오는 것처럼 시간은 언제나 나를 지나쳐 저 멀리 앞서간다는 사실을 되새겨야 하겠습니다. 나의 생각이 머무르는 공간이 현재가 아니라 헐레벌떡 뒤를 쫓던 대상이 늘 현재였던 까닭에 나는 지금껏 현재라는 실체를 단 한 번도 확인할 수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자가 내란 수괴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거짓과 위선, 무능과 부패, 무속과 음주로 점철된 자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를 지지한다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개중에는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고 사적 이익을 편취하기 위한 방안으로 그리하는 약삭빠른 자들도 있겠으나 그들의 선전 선동에 휘말려 쥐뿔도 모르면서 그들 편에 서는, 그야말로 허접한 떨거지들이 다수임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극적인 쇼트 폼 콘텐츠를 과잉소비한다는 점입니다. 체포된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극우 세력들에게서 보이는 특징입니다. 옥스퍼드대학 출판부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2024년 '올해의 단어'로 '뇌 썩음(brain rot)'을 선정했다고 합니다. 쇼츠를 과잉소비함으로써 집중력 저하, 문해력 약화 등 지적 퇴화가 심각해지는 현상을 꼬집은 것이라고 합니다. '뇌 썩음'이 민주주의를 뿌리째 흔들 수 있음은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인 것입니다.


나는 요즘 인문학자 김태현이 쓴 <군주론 인생 공부>를 읽고 있습니다.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는 미래나 당위가 아닌, 현재와 현실을 직시하도록 한, 인류의 가치관을 윤리나 의무에서 개인과 현실로 돌린 최초의 인물이었기에 그의 사상은 지금도 여전히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사에 대한 지적 통찰과 해박한 지식이 있었던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그가 쓴 '군주론'을 통해 습득할 자신이 없었던 까닭에 인문학자 김태현의 해설서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통치자의 지능을 평가하는 첫 번째 방법은 그의 주변 사람들을 보는 것이다." ('군주론' 22장 중에서)


대통령이 체포되면서 그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면면도 조금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김태현 저자는 위의 문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로 사람을 보는 눈을 꼽았습니다. 군주는 훌륭한 인재들을 가까이 두고 그들의 조언을 신뢰하고 적절히 활용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군주의 능력은 단지 개인의 지혜나 용기만으로 결정되지 않으며, 군주가 주변 인물들의 역량을 얼마나 잘 파악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군주의 권력 유지와 확장이 좌우된다고 마키아벨리는 강조했습니다."  (P.56)


불행하게도 우리가 목격한 대한민국 대통령은 개인의 지혜나 용기는 물론 주변 인물들의 역량을 파악하고 활용하는 능력 역시 부족했습니다. 자신의 능력이 없으면 주변 인물들의 역량을 파악하는 능력이라도 있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불행이자 우리 모두에게 악연이었습니다. 그러나 날씨가 많이 풀리자 원하지 않았던 대통령도 체포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아주 조금 당신을 그리워하였습니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