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뺌을 하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그 기저에는 언제나 두려움이라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자신의 잘못이나 타인에 의한 누명이 초래할 결과와 처벌에 대한 두려움은 감히 시비곡절을 따질 엄두가 나지 않게 하고 일단 발뺌부터 앞세우는 그릇된 행동을 선택하도록 한다. 더구나 간이 콩알만 한 사람들은 큰일도 아니면서 일단 발뺌부터 하는 습관이 어린 시절부터 자리 잡게 된다. 그러므로 남에게 책임을 미루면서 발뺌하는 데에만 급급하는 버릇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정교육을 담당했던 부모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이다. 자식을 엄하게 키운다는 명목으로 자칫 체벌이 잦은 경우 아이를 발뺌만 하는 용렬스럽고 비겁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하는 누를 범할 수 있는 것이다.
계엄령 선포와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으면서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거짓말과 발뺌으로 일관하는 자들의 전형을 대통령으로부터 보고 있다. '저런 자를 우리가 대통령으로 뽑았단 말이야?' 하는 자괴감이 치욕을 넘어 부끄러움으로 치닫게 하는 상황이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고 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고 자신이 했던 말은 지켜지는 게 하나도 없다. 시쳇말로 '구라'이거나 허언일 뿐이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쉽게 길러지는 게 아니다. 가정교육을 담당하는 부모의 사랑과 헌신적인 노력이 없다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오직 참과 선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대개 일단 발뺌부터 하고 처벌에서 제외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거짓을 고하여서라도 처벌을 피하고자 하는 욕망은 우리를 항상 시험에 들게 한다.
자신의 비겁함을 잘 알고 있었던 대통령은 남들도 다 그렇겠거니 여겨 노상원으로 하여금 케이블 타이와 망치, 야구 방망이 등과 더불어 절단기까지 구입하도록 지시하였던 게 아닐까.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인사들을 체포하여 고문과 협박을 하면 자신이 원하는 어떤 조작이나 거짓 진술도 다 받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는 법, 세상에는 대통령처럼 비겁하고 용렬한 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모르는 듯하다. 역사가 느리지만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고문과 협박에도 전혀 굴하지 않는 용기 있는 자들이 존재해 왔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는 그의 부모로부터 배우지 못한 듯하다.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던 안중근 의사의 용기는, 자신의 손가락을 끊어 그 피로 태극기에 '대한독립'이라는 글자를 썼던 단지동맹 동지들의 의지는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와 같은 이의 숭고한 사랑 덕분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체포되었을 때,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망치 아니하노니... 내세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다시 세상에 나오라."는 말로 아들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전했던 조 마리아 여사. 대통령은 내세에 다시 태어난다고 할지라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감추고 어떻게든 자신이 쥔 권력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하기 위해 지지자들을 향해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은 비열하다 못해 가엾기까지 하다. 그러나 부끄러움은 오직 국민의 몫으로 남을 뿐이다. 그런 찌질한 자를 대통령으로 모시고 있으니... 지금 이 시각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