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미리내
  • 가와바타 야스나리
  • 허연
  • 20,700원 (10%1,150)
  • 2019-06-10
  • : 1,346
아직 <설국>을 읽기 전이라 읽을지 말지 망설인 책이었으나 작품 평이 갈린다는 이야기가 떠올라 이번만큼은 배경지식을 먼저 쌓아보기로 했다. 읽기 전만해도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대해 아는 것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는 사실뿐이었다. 하지만 읽다 보니 의외로 작가와 작품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알고 있었음에도 모른다고 여겼던 것은 그 정보들을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연결 짓지 못한 탓이었다.

이제서야 떠올리는 거지만 나는 대학생 때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었다. 책에서 다루는 것만큼 깊이 있지는 않았지만 수박 겉핥기 정도는 되지 않았나 싶다. 책을 읽으며 강의 시간에 배운 것을 차근차근 떠올리니 조각나있던 퍼즐들이 하나 둘씩 맞춰지기 시작했다. 아마 당시에 영화 <이즈의 무희>를 비롯한 그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했던 까닭은 내가 그의 작풍을 소화해내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학생 때의 나는 설국을 그저 일본미美의 징수 정도로만 생각했지 그 안에 숨은 허무를 들여다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포일러를 감안하고 읽은 소감은 ‘미리 알아서 다행이다’였다.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설국>을 읽었다가는 나 또한 작품의 난해함에 골머리를 앓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저자는 시간 순대로 흘러가지 않는 작품의 전개 방식을 언급하며 <설국>을 이해하려면 인과관계 위주의 스토리 흐름보다는 시를 읽듯 한 행 한 행의 이미지로 읽어 나갈 것을 추천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일생은 허무로 시작해 허무로 귀결되는 느낌이었다. 부모님을 비롯한 누나와 조부모님의 죽음을 시작으로 스승의 죽음, 약혼녀와의 갑작스런 파혼, 아끼던 후배의 자살, 마지막으로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은 자살까지. 주위 사람의 죽음으로 점철된 그의 인생관은 허무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을 지경이었고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명예의 전성기를 맞은 노년에 돌연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의 선택은 말 그대로 ‘허무’했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그의 죽음이 허무하다 느끼는 것은 노벨 문학상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나는 그의 사진을 볼 때마다 대나무를 떠올렸다. 하늘을 향해 올곧게 자라나는 대나무처럼 그의 꼿꼿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 영원히 부러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만약 부러질 때가 온다면 부러지기 전에 스스로 부러뜨릴 것만 같은, 그런 단호함 마저 느껴지는 사진이었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이야기를 읽었을 때 먼저 부러졌구나 싶었다. 나는 꼿꼿함이 부러졌다는 그 사실이 허무했던 것 같다.

저자는 자신을 일본 문학 전문가가 아니며 그저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이해하고 싶었을 뿐이라 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이제 막 가와바타의 작품세계로 들어가려는 나에게 좋은 입문서가 되어주었다. 아직 <설국>을 읽지 않은 사람, 읽었지만 알쏭달쏭했던 사람들에게도 이 책이 길잡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