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즈믹 호러의 뉴웨이브
박참치 2025/06/05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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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잘린, 손
- 배예람.클레이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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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 2025-05-30
: 1,119
당신의 잘린, 손. 이 제목에 강렬한 이끌림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이 소설집은 두 작가의 서로 연결 된 단편이 두 개 수록 되어있다. 최근에 읽은 괴이 소설이 마땅치 않던 참에 받은 자리에서 숨 한 번 쉬지 않고 결말부까지 내달리게 만드는 흡입력에 감히 감탄한다.
첫 번째 단편 [무악의 손님]은 내가 좋아하는 소설 두 가지를 너무 맛있게 섞인 느낌 이었다. 조예은 작가의 만조를 기다리며, 하나는 김보영 작가의 역병의 바다.
무악의 손님은 제 유년시절 제 몸보다 더 제 몸 같았던 동생을 잃어버린 주인공. 그 아픔을 극복하지 못 하고 성인이 되었는데. 옆자리에는 맞잡은 손이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친구가 있다. 묘하게 결혼을 바라는 눈치지만 마뜩찮다. 맞잡은 손이 너무 억세고 제 손을 감싸는 느낌이 퍽 강압적이라 그런지 모르겠다. 무악이라면 무악의 미음 조차 싫은데 제 의사 하나 제대로 묻지 않고 무악으로 여행지로 잡은 걸 보면 이 남자는 옛날 옛적에 글렀다 싶은데 입으로 싫다는 소리를 잘 못 뱉는 여자 주인공은 그대로 무악에 다시금 이끌려 들어가고 다시금 운명의 해일이 주인공을 덮친다. 해일에 휩쓸려 시체조차 찾지 못 했던 동생의 목소리가 아른 거리는데. 왠지 모르게 여동생의 몸을 찾을 수도 있을 거 같아.
지긋지긋한 운명과 눅눅한 바다. 과거의 아픔을 잊어 버린 채 관광 상품으로 삼은 섬을 보면 어딘가 기이쩍다. 어쩌면 그들의 파멸은 고통의 망각에서 오리라.
다른 단편 바다 위를 떠다니는 손은 어쩌면 조금 뻔한 듯 한 도입부다. 미확인 생명체와 거기에 극심한 탐구심 따위를 느끼는 과학자. 온 몸으로 위험을 직감 하고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관성에 떠밀려 그 입을 쩍벌린 나락의 아가리에 속절 없이 굴러 떨어지는 인간들의 이야기. 성마른 호기심이 개구리를 죽인다는 말이 어울린다. 과학자들의 치기 어린 호기심이 이 군대 하나를 절멸 시킨 거라고 생각 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가는 건 잠수함이 가는 거니까요."
이야기 속의 과학자가 하는 말 중에는 이런 말이 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건 꼭 어차피 빨래는 세탁기가 해주잖아요, 같은 말이다. 빨래를 추려서 세탁기에 넣고 다 된 빨래를 잘 골라 햇볕 아래 말리는 일련의 행위가 얼마나 수고스러운지 해본 적 없는 사람의 발언처럼. 어두운 수면 아래에서 촉각을 세워 당직 서 본 적 없는 인간의 입에서나 가능 한 말이라. 이 무신경하고 어딘가 무례하기 까지 한 발언에 이 이야기의 도입부에서부터 꽤나 재수 없다고 생각 했는데. 이 발언에 야릇한 혐오감과 동시에 처절한 최후를 직감하게 되는 건 어떤 연유일까.
종내에 군인들은 이 과학자들의 학구열과 군인들을 그저 그런 소모품정도로 취급하는 것에 못 이기고 때려 눕히는 지경에까지 이르느는데. 솔직히? 누구는 팔이 떨어져 나가는 와중에 태연작약한 먹물쟁이를 후드려 팼을 때는 희열감까지 느꼈다. 처음에는 관망하던 이야기에서 나는 그 핵잠수함 속 군인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정말 무서운 것은 밖에서 우리를 덮칠 괴생물체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이 비좁은 곳에서 신선한 공기조차 허락 되지 못 해 고여버린 우리라는 것을. 점점 함 내의 광기의 농도가 짙어지고 조만간 대차게 어그러질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했지만 내가 넘기는 페이지처럼 도무지 이야기는 절벽의 끝을 향해 멈추지 못 했다.
올 여름을 적당히 식혀 줄 공포 이야기가 필요 하다면 이 책이 적당할 것이다. 시원한 수박을 삼키면 손에 남는 끈끈한 과즙처럼 내 신경에 그 손들이 끈끈하게 들러붙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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