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이 다시 살아나는 읽기‘에 대하여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을 읽으며 나는 몇 번이고 멈춰 서서 그가 말하는 책들을 찾아보았다.
그는 흔히 말하는 문학 비평가이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그가 누군가의 작품을 평가하는 자리에 앉아 있는 느낌은 없었다. 그는 작품을 향유한 사람으로서, 한 작품이 독자를 통해 어떻게 다시 태어나는지를 이야기하려는 듯 보였다.
James Wood는 말한다.
“리뷰는 어떤 작품이 향유할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효율적으로 판단해 주는 일이지만, 비평은 뛰어난 안목과 기예를 가진 이가 특정한 작품을 ‘일단 향유하기 시작하면’ 작품이 어떻게 거듭나는지를 보여주는 일이다.”(p.21)
이 문장을 읽고 나서, 나는 이 책이 무엇을 말하려는 책인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우드의 비평은 작품 위에 서서 내려다보는 말이 아니라, 이미 그 작품 안으로 들어가 머문 사람이 남기는 독서의 흔적에 가깝다. 그는 작품을 요약하거나 판결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무엇을 보았는지, 어디에서 멈추었는지, 어떤 문장이 그의 시선을 붙잡았는지를 차분하게 풀어놓는다.
그래서 이 책은 ‘어떤 작품을 읽어야 하는가’를 알려주기보다, 우리가 작품을 어떻게 읽을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자연스럽게 한 작품의 내부로 초대받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이미 읽었다고 생각했던 작품이 전혀 다른 얼굴로 다시 말을 걸어오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이 책이 독자에게는 새로운 발견의 기회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시에, 만약 내가 작가라면 — 내 작품이 이런 방식으로 읽힌다면 — 그것은 비평이 아니라 하나의 깊은 이해이자, 기꺼이 받아들이고 싶은 인정일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은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라기보다, 한 작품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오래 머물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작품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는지를 조용히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독자는 조금 더 느리게 읽고 싶어지고, 조금 더 오랜 시간 한 문장 곁에 머물고 싶어진다.
어쩌면 비평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작품을 평가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작품을 더 잘 들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