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 직장인의 기본템. 누구나 가슴 속에 품고 다닌다는 그것. 그러나 대부분의 이들에게, 사표는 '잇 아이템'이 아니다. 비극적이게도 사표는, '좋아서' 품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싫어서' 품고 다니는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하겠지만, 사표가 아름다워 그것을 지니고, 마음에 품고 다니는 것은 아니니까. 그것은 최후의 보루, 마지막 나를 지켜줄 보호막. 그렇기에 이 아이템을 쉽게 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사표는 나를 위한 보호막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실패의 인정을 상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매일 일상 시간에 나갈 곳이 있다는 것, 직장이 부여하는 사회적 지위를 갖는다는 것, 무엇보다 매달 같은 날에 생활을 영위할 금전적 보상이 마련된다는 것, 그러니까 내 삶의 '정형'을 잡아주는 너무나도 견고한 틀, 그것을 버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파리에서 두 달 살기. 하루 저녁의 약속처럼 가벼운 바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못 이룰 것도 아니다. 그러나 삶의 '정형'이 가진 힘은 대단하여, '못 이룰 것도 아닌' 그 바람은 작가의 마음 속에 20년간 작은 불꽃으로 남이있을 뿐이었다. 작가의 말을 빌리면, 그 불꽃은 "꺼지지 않도록 애지중지 보살피며, 현실이 힘들 때마다 그 작은 불꽃 옆에서 잠깐씩 손을 녹"이는 것이었고, "그 작은 불꽃이 삶을 대단히 바꾸는 일 같은 건 일아니지 않았다."(262쪽) 그러나 작가는 그 불꽃, 그토록 전염성이 강한 '좋아하는 마음'을 소중히 다루는 마음만은 여전히 오랜 시간 지켜왔고, 그것이 20년간 정형의 삶을 버티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20년간 바라왔던 다른 모양의 삶은, 어쩌면 정형의 삶마저 고이 보듬고 충실하게 대면했기에 맞이할 수 있는 또 다른 국면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실은 정형의 삶도 제각각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 모양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무정형 또한 결국 또 하나의 모양이고, 또 다시 바뀔 수 있는 법. 중요한 건 모양 자체가 아니라, 그 모양을 만드는 데에 내가 얼마나 개입하느냐, 바로 그것일 테다. 파리 산문집이지만, 파리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런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살고자 하는 삶의 모양이 어떤 것인지는 각자의 특별한 장소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에게 파리가 그러했듯, 잊고 살았던 가슴 속 꿈과 바람은 각자만의 장소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 장소는 그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가슴 속에 품고 다녀야할 것은 사표와 같은 지루한 마침표가 아니라, 내가 나의 삶을 위해 써내려 갈 진솔한 문장을 이끌 수 있는 나만의 단어, 나만의 문장 하나일런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