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산일정으로 바쁜 가운데 모처럼 본 책.
내용은 대략 인간의 경제 활동에는 종교가 큰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다. 즉, 부의 역사가 흘러가는데 있어 종교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말 되겠다.
얼핏보면 종교가 대체 뭐길래 경제의 원동력이 될 수 있겠는가?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특히나 종교에 부정적인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그럴 수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이런 협력이야말로 경제활동의 시작입니다. 먹을 것이 부족할 때 식량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비릴고 그 대신 옷이나 건축 자재 등 다른 자원을 양보합니다. 그렇게 서로 이득이 되는 쪽으로 협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경제입니다.
서로 주고 받ㅇ려면 무엇보다도 서로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구두로만 약속을 맺으면 의심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법도 없고 법을 감독하는 곳도 없었던 고대에는 계약이나 서약을 어디에서 보증 받았을까요?
인간은 그 역할을 종교에서 찾았습니다."
현대시대는 민법과 상법 등의 법률과 제도, 행정권력이 계약이나 인수도 같은 경제 활동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유지하는 역할을 하지만, 근대 이전으로 갈 수록 법 보다는 주먹이 가까웠던 시기기 때문에 다른 규범 체계가 지금의 법제도 역할을 해 줘야 했다.
그 역할을 해 준게 바로 종교다. '하느님은(가장 보편적인 신이라 이 이름을 썼다.)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보고 알고 계신다.' 는 믿음과 '하느님의 가르침을 거역하면 천벌을 받게 된다.' 라는 생각은 사람들로 하여금 약속을 지키고 양심 있게 행동하게 만드는 힘이 되었다.
최소한, 종교적 신념을 가진 이들과의 거래가 '하느님 따위는 없으니까 난 저 인간 뒤통수를 쳐서 이익을 몽땅 해 쳐 먹는 합리적 행동을 저질러야지' 라는 사람들과의 거래보다는 훨씬 더 믿음직스러웠으므로, 상거래에서는 종교적 믿음이 있는 이들이 좀 더 선호 받곤 했다.
그러다 사회가 점점 복잡 다변화되고, 사람들도 좀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하게 되면서, 종교를 대하는 자세 역시 달라졌다.
과거에는 종교를 어떤 자기 규제의 수단으로 썼다면, 시간이 흘러가면서 사람들은 종교를 자기 정당화의 수단으로 삼기 시작했다. 즉 자신의 이익 추구를 종교의 이름으로 정당화 하기 시작했다.
카톨릭과 정교회의 분열(흔히 성상파괴 논란을 떠올릴 것이다. )이나 카톨릭과 프로테시탄트의 분열(종교개혁이라는 표현이 더 익숙하다.), 그리고 11세기~13세기 레반트 지역에서 벌어진 전쟁(십자군 전쟁이라는 명칭을 더 많이 쓴다.) 같은 사건들이 대표 사례다.
또 하나 종교는 경제공동체를 구성하고 경제협력을 증진시키는데도 기여하였다. 경제적 민족으로 유명한 유대인들에게 종교는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지표였다.
말레이시이나 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시아 나라들과 우즈베크스탄 같은 중앙아시아 나라들이 이슬람 국가가 된 배경에도 상거래 활동을 하는데 있어 같은 무슬림이라는 점이 큰 장점이었다는게 크게 작용하였다.
과학의 발전으로 초월자에 대한 믿음이 많이 줄어들면서, 종교의 힘 역시 약화되는 듯 하다. 하지만, 종교가 맡았던 규범 기준이나 정당성의 근거로서 역할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이성, 법률, 제도, 이데올로기 같은 다른 요소들로 대체 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사실 이성이나 법률과 제도, 이데올로기도 종교와 완전 동떨어진 개념들이 아니다. 단지 종교와 달리 어떤 초월적인 존재를 가정하지 아니할 뿐이다.
그래서 인류의 부의 역사는 총체적으로 종교와 밀접한 영향을 맺고 있으며, 이런 종교라는 관점에서 경제사를 바라 본 게 바로 이 책 '부의 역사'다.
많은 책들이 세속성이 강한 경제라는 영역을 종교와 분리하거나, 혹은 대립되는 개념으로 설정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부의 역사'는 종교와 경제가 밀접한 사이라는걸 이야기하면서, 상당히 신선한 시각을 보여 주었다.
전체적으로 내용은 괜찮다. 분량이 적고, 그래서 깊이가 좀 부족한 부분도 있었지만, 어차피 상당히 전문적인 영역까지 파헤치려 쓴 책이 아닌 만큼, 그 점이 단점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제목이 '부의 역사'고 '세계 경제를 결정하는 5대 머니게임' 이라는 거창한 부제를 달고 나왔는데, 솔직히 좀 오버스러운 면이 있다. '2021년 부의 흐름을 가장 중요한 지식!' 이라는 선전문구도 마찬가지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이런 오버스러움은 좀 용인해줘야 할게, 출판 시장이 참 어려운 상황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는 이렇게 소비자의 욕망을 자극할 수 있는 감각적인 문구들이 필요한데,
경제사를 다룬 책들이라면, 사람들의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마음을 노리는게 제일 효과적일테니 '부의 흐름', '머니 게임' 같은 문구들을 쏟아내는게 효과적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사실, 엄연히 말하면, 시장을 제대로 읽어 오랜 기간 수익을 내고 싶다면, 경제를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보는 연습도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역사나 지리, 심리와 국제 정치 같은 분야를 섭렵하는게 아주 유용하다고 본다.
예전에 '관상'이라는 영화에서도 아마 그런 대사가 나왔던 듯 싶다. 파도를 만드는건 바로 바람이라는 대사 말이다. 경제사도 바로 그런 바람과 같은 존재다.
그런 의미로, '부의 역사'는 경제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시각을 알려 준다는 점에서는 좋은 책이다. 다만, 내용이 좀 적다는 점 때문에 이 책을 보신 분들은 추가로 다른 책들을 통해 좀 더 많은 지식을 쌓으시라 추천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