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흐르는 강물처럼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어떤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무척 잠잠하게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부드럽게 퍼져 나오는 단어들을 듣고 있자니, 잔잔하면서도 힘찬 강물 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 논리와 논리 사이가 유연하면서도 끈끈했지요. 내려가는 강물과 동행하며 걷듯 그분의 강의를 따라가니, 어느새 여러 주제가 제 머리 속에서 깔끔하게 정리되었습니다. ⠀그분은 바로 박영돈 교수님이었습니다. 삼룡동의 도니우스라고 불리던 그분의 강연이었습니다.⠀그
다음 수업도 그러했고, 그 다음 수업 역시 동일했습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도니우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강의를 편안하게 따라가면, 제 두뇌 속에서 신학 지형도가 그려졌습니다. 그렇게 두 학기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나니, 저는 꽤 성장해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수년 전 빠져들었던 교수님의 강의가 생각났습니다. 그때 그 강연처럼, 흐르는 강물 소리에 귀기울이듯 한 단어 한 단어 읽다 보면, 가랑비에 옷 젖듯 성령님에 대한 지식과 지혜가 늘어나는 그런 책이더군요. 구약에서 예수님으로, 예수님에서 오순절로, 오순절에서 온 세상과 새 시대와 하나님 나라로 흐르는 생수 같은 성령님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그런데 책을 덮고 잠시 생각해 보니, 강의와 다른 점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당시 교수님의 강의는 사실 쉼없이 움직이는 물결이었습니다. 화장실에 가거나 다리를 펼 수 있는 수업 쉬는 시간은 물론 있었지요. 그러나 영혼과 마음이 앉아서 쉴 수 있는 마음의 긴 의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달랐습니다. 자연스레 성령론에 대해 풀어가면서도, 중간 중간 지금까지 흘러나온 내용을 정리해 주는 구간이 있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흐름 또한 너무 길지 않고요.⠀이토록 친절한 수사는 저자의 독특한 이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교수로 가르치시던 중간에 목회 현장에 뛰어들기 위해 조기 은퇴를 택했습니다. 그리고 교회 한복판으로 뛰어들었지요. 학자이자 교사이셨던 분이 전임 목회자가 되시며, 더욱 친절한 교육자가 되신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2. 이 책의 매력을 물으신다면

⠀저는 학부 시절 신학을 전공했고, 당시부터 성령론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나름 관련 서적을 많이 찾아 읽었지요. 그런 제게 이 책의 매력을 물으신다면, 저는 이렇게 답하겠습니다.⠀하나, 성경과 조직의 아름다운 만남입니다. 성경 구절이 등장하지 않는 부분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관련 구절만을 늘어놓으며 근거로 내세우지도 않습니다. 주해를 바탕으로 각 주제를 풀어내면서도, 그 주제를 체계적으로 설명해줍니다. 단순히 성경의 몇 구절이 가르치는 바를 나열하는 일을 넘어서서, 단순히 체계적으로 개념을 소개하는 일을 초월하여, 저자는 주해와 체계화를 하나의 양탄자로 엮어냅니다.⠀둘, 은유가 찰떡입니다. 저자에게 강의를 들을 때 정말 좋아했던 표현이 바로 “거룩한 수줍음”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제가 성경에서 읽고 만났던 성령님이 어떤 분인지 바로 이해가 되었지요. 이 책 곳곳에도 성령님을 적절하면서도 은유적으로 설명하는 저자의 수사를 보며 여러 번 감탄했습니다. 그 비유만 모아서 묵상해봐도 맛있을 것 같습니다.⠀셋, 현실과 너무나 가깝습니다. 성령님이 누구신지에 대해 소개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러한 성령님을 믿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게 도와줍니다. 우리의 혀, 몸, 마음이 성령님을 통해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에 대한 저자의 치열한 숙고가 느껴지고, 그 고민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을 심어줍니다.⠀⠀3.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는 말

⠀그런데 솔직히 책을 덮은 뒤 분노와 아쉬움이 몰려왔습니다. “왜 이렇게 책을 짧게 쓰신 거죠? 왜 성령론에서 논의가 끝나버린 거죠?”라고, 제자가 스승에게 감히 여쭙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내 이성을 되찾고, 이 책이 사실은 일곱 가지 핵심 주제를 다루는 시리즈임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성령론에서 이런 감동을 주었다면, 앞으로 구원, 교회, 종말, 예수, 인간, 하나님을 다룰 때는 어떨까, 궁금해졌습니다. 저는 벌써 호기심에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그 끝이 기다려집니다.⠀⠀4. 선물다운 선물

⠀책에서 저자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물로, 성령님을 선물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 곧 “선물의 선물”로 정의합니다. 저는 여기서 하나를 더하고 싶습니다. 이 책은 선물의 선물이신 성령님을 우리에게 아름답게 포장하여 선사하는 “선물의 선물의 선물”이라 하겠습니다. 연말연시 선물로 이 선물,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