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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력의 시대
  • 에릭 홉스봄
  • 13,500원 (10%750)
  • 2008-07-15
  • : 799
폭력의 시대 서평: 폭력의 시대 21세기를 앞으로 어떻게 봐야할 것인가?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성향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사실 나는 그의 이름을 2020년에 처음 알았다. 정확히는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됐다. 그 당시 내가 좋아하던 역사학자는 하워드 진이었는데, 물론 지금도 그를 존경하지만 홉스봄이라는 인물은 영국 공산당 당적을 포기하지 않고 역사학의 길을 갔다는 점이 여러모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 홉스봄의 책을 딱 두권의 책을 읽었다. 한권은 그의 대표 저작인 <극단의 시대>고 다른 한권은 <혁명가>라는 책이었다. 그리고 올해 그의 또 다른 저서 <폭력의 시대>는 1990년대부터 2004년까지 그가 한 강연 내용과 소논문 그리고 기고한 기사를 바탕으로 구성됐다. 따라서 해당 책은 말 그대로 21세기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이 나오던 2000년대 초중반은 소위 미국의 세기로서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미국의 침략전쟁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9.11 테러로 3,000명의 미국인이 그날 뉴욕에서 사망하자, 미국은 크나큰 분노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 분노를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해소하고자 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멈추지 않았다. 2년 뒤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이라크를 침공하여 명분없는 전쟁을 시작했다.

네오콘으로 불리는 소위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미국식 자유주의 이념이 타국에 전파되야 한다 믿었고 그것이 가능하며 실제로 그 나라에 민주주의를 가져다 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고, 홉스봄의 말대로 매우 위험한 생각이며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당장 미국이 침략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민주주의가 실현되었는지를 보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홉스봄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전 지구적으로 많은 문제들이 산재해있음을 주장한다. 예를 들어 인구의 도시집중화 현상으로 인한 농촌 인력 감소가 그러하다. 이는 한국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얘기다. 한국은 과거 농업인구가 많았으나, 현재는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인구 비율 매우 극소수다. 이는 과거 농업 국가였던 동남아시아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는 중이다. 누군가는 농업에 종사해야 하기에 이런 현상은 분명 국가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대책을 강구해야한다.

질병에 대한 얘기나 컴퓨터 기술에 대한 얘기도 흥미롭다. 우선 질병 문제부터 얘기하겠다. 홉스봄이 이 글을 쓰던 당시는 소위 사스(SARS)가 유행하던 시기다. 나 또한 초등학생 시절 해당 질병이 뉴스에서 나와 자주 언급되고 국가적으로 대비했던 과거가 생각이 났다. 사스라는 질병이 의미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단기간에 이동이 가능한 시대에는 전 세계적으로 질병이 퍼지는 속도가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2020년 COVID-19만 보더라도 이것은 우리의 일상과도 연관이 있기에 매우 와닿는 설명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 세계 인구 수억 명이 감염됐고, 700만이 사망했다. 이 중 120만 명은 미국인이다. 아마도 미국은 자신들 역사 250년 동안 전쟁에서 전사한 전사자 수치보다 코로나로 죽은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 세계적 전파 속도는 인간의 예측을 훨씬 뛰어넘었고, 지속된 기간도 그러했다. 격리ㆍ확진ㆍ치료ㆍ마스크ㆍ백신 등 전 세계인 모두가 대략 3년간 지쳤던 걸 생각해보니, 홉스봄의 강연은 은근 소름까지 돋는다.

컴퓨터 기술도 그러하다. 과거에는 인간의 영역이었던 것이 점차 컴퓨터의 영역으로 변화하는 중이다. 복잡한 수학적 계산은 요즘 컴퓨터가 다한다. 과거에는 사람이 하던 계산이었다. 거기다 챗 GPT의 등장과 AI 기술의 발전은 무섭기까지 하다. 물론 해당 기술도 사람이 만들기에 결국 만드는 이의 주관이 들어가게 되는 오류는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과거에 비해 글을 쓰는 이들에게 훨씬 편리하게 자료와 정보를 제공하게 되었고 그 기술의 혜택과 수혜를 인류가 보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비록 홉스봄이 코로나나 AI의 발전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기에 해당 저서는 다소 한계가 있을지는 몰라도, 홉스봄이 기술의 발전 및 여러분야의 문제점들에 관심을 가졌다는 걸 이번에 다시 깨달았다.

홉스봄의 분석에 따르면, 20세기는 가장 끔찍한 전쟁과 파괴가 있으면서 동시에 경제 및 물질적 발전과 기술적 발전이 있던 시대였다. 말 그대로 극단의 시대라 할 수 있다. 1,000만 명 이상의 생명을 뺏어간 제1차 세계대전과 7,000만 명이 희생된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 같이 한 나라에서만 벌어졌는데 수백만 명이 사망하게 되는 수많은 전쟁들. 어찌보면 20세기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그에 반해 21세기는 이런 극단적인 전쟁이 줄어들었으나, 전쟁 자체가 사라진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폭력과 파괴는 여전히 지속되고 전쟁의 양상도 달라지며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2022년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이 드론 투입을 보게 됐다. 물론 여전히 탱크와 장갑차 같은 재래식 지상전력이 투입되고 또 전투에서 중요하게 사용된다는 것도 보여주고 있다.

특히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전투 양상의 극단적인 불균형을 21세기에도 여전히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은 최신식 무장력으로 팔레스타인에서 인종청소를 벌이는 중이지만, 정작 팔레스타인의 저항조직 하마스를 소탕하는 데 철저히 실패하고 있다. 이렇게 보자면 21세기에도 폭력적인 전쟁은 지속되고 있고, 소위 평화는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해당 저작에서 홉스봄이 흥미롭게 언급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소위 침공이라는 것이 반드시 나쁘기만 한걸까? 물론 한 나라가 한 나라를 침공한다는 것은 비판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여기서 홉스봄은 폴포트의 킬링필드를 종결시킨 베트남의 캄푸치아 침공과 우간다 이디 아민 정권을 무너뜨린 탄자니아의 우간다 침공을 예로 든다. 홉스봄은 캄푸치아와 우간다의 경우 내정 불간섭 원칙을 크게 손상하지 않고 단기적인 개입으로 즉각적인 효과를 얻었고, 어느 정도 지속적인 개선 효과도 얻었으며 제국주의의 암시도 없었고 더 넓은 세계 정치에 개입하지도 않았다고 역설한다. 이와 같은 사실을 보았을 때, 전쟁의 성격이 어떠한 것이냐를 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글쓴이는 비폭력 평화주의자가 아니다. 물론 해당 가치가 가지는 아름다움과 의의는 잘 안다. 그러나 모든 문제가 비폭력으로서 해결될 수 있다 생각하지도 않고, 자칫하면 제3세계 약소민족의 해방투쟁을 폭력이라는 단어로 비난하며 서구 제국주의식 논리에 쉽게 빠질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전 세계적 비폭력주의자들이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표면적인 양비론을 보이다가도, 사실상 러시아만 집중적으로 비난하며 우크라이나의 심각한 신나치즘 문제에 흐린 눈을 하는 이중성을 너무나도 잘 안다.

따라서 글쓴이는 홉스봄이 주장한 전쟁과 개입에 대해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어도, 적어도 극단적인 비폭력주의 보다는 훨씬 현실적인 분석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얘기가 나온 김에 북한 문제도 언급하고자 한다. 현재 북한이 개발한 핵무기는 분명 대량인명살상무기다. 물론 끊임없는 군사경쟁은 평화를 가져올 수 없는 것도 분명 사실적인 부분이 있고 일리가 있다. 그러나 미국이라는 존재가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 대적하는 북한이 핵무장 없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는 이 부분에서 북한의 핵무장이 역으로 한반도의 전면전 가능성을 낮췄다고 본다. 핵 없는 나라를 미국이 어떻게 했는지를 현실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홉스봄의 분석 중 가장 흥미로운 분석은 바로 게릴라전과 반게릴라전 그리고 테러에 대한 분석이다. 홉스봄은 게릴라전을 전개하는 쪽이 학살과 테러를 벌인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페루의 마오주의 단체인 ‘빛나는 길‘의 경우 소위 농민과 노동자 그리고 성노동자와 일반 시민으로 의심되는 민간인을 적잖게 학살한 혐의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단체의 지도자 아비마엘 구스만의 경우 해당 건으로 페루에서 재판받고 감옥살이를 하던 중 몇년 전 옥사했다. 그러나 홉스봄에 따르면. 이들의 학살과 테러가 소위 해당 게릴라를 토벌하던 페루의 정부군 토벌대 보다 심했던 것도 아니다.

실제로 수많은 역사를 보면 이와 같은 홉스봄의 문제의식은 사실임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엘살바도르도 파라분도마르티민족해방전선이 테러를 벌였지만, UN 조사에 따르면 내전 기간 학살의 최소 85%는 정부군이 저질렀고, 5%는 파라분도마르티민족해방전선이 저질렀다. 하다못해 1948년 여순학살만 보더라도 학살의 95%는 이승만과 미국이 보낸 우익 토벌대가 했고, 5%만 봉기한 병력이 했다.

홉스봄은 테러를 분석하며, 테러의 위험률을 일부러 과장하는 서구 언론을 비판한다. 이것은 그 당시 진행되던 9.11 및 중동전쟁과 연관이 있다. 사실 테러로 희생되는 사람 보다 미국이 일으킨 전쟁으로 미군에 의해 희생된 사람이 훨씬 더 많다. 당장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만 보더라도 침공 3개월도 안되 아프간인 사망자가 9.11 테러 총 사망자 보다 더 많이 발생했다. 즉, 테러의 공포를 이용해 자신의 전쟁 행위를 합리화하는 미국의 문제를 홉스봄은 해당 저서에서 날카롭게 비판한 것이다.

21세기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우리가 어떻게 준비해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여전히 전쟁은 지속되고 있고 폭력은 끝나지 않았다. 그렇다 해서 모든게 다 비폭력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이 상황에 우리가 길러야 할 것은 국제정세와 현 상황을 파악하는 냉철한 의식이다. 전반적으로 매우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물론 좀 동의안되는 내용도 있었으나, 홉스봄의 분석은 여러모로 와닿았다.

홉스봄이 해당 저서에서 이른바 미국의 색깔혁명에 대해 분석하지 않은 것은 다소 아쉽다. 그래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독서였다. 21세기를 어떻게 준비하고 분석할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여전히 숙제를 남기고 더 많은 생각지점을 남길 것이라 글쓴이는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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