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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주 짧은 소련사
  • 실라 피츠패트릭
  • 16,110원 (10%890)
  • 2023-09-15
  • : 1,752
아주 짧은 소련사 서평: 소련 역사를 개괄적으로 알 수 있는 책

내가 소련사 역사학사 쉴라피츠패트릭을 처음 알게 된 건 아마 코로나 초기였던 2020년이었다. 쉴라피츠패트릭의 책 <러시아 혁명 1917-1938>은 스탈린의 대숙청도 러시아 혁명의 일부라는 관점을 유지했는데, 세간에 알려진 대숙청이 단순히 이오시프 스탈린 개인의 권력욕에 의한 것이 아닌, 소련 대중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 속에서 계급투쟁 과정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는 점이 돋보인 책이었다.

물론 해당 저작은 분명히 스탈린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상당하지만, 서구의 기존 내러티브와는 분명한 차이점을 보였다는 점에서 나름 신선했다. 사실 소련사 연구는 여러 역사연구가 그렇듯, 전통주의와 수정주의 연구가 있다. 예를 들어 전통주의적 연구는 소련의 스탈린의 학살을 매우 강조했다면, 수정주의 연구는 소위 서구 사회에 알려진 스탈린의 학살이 매우 과장되었음을 지적하며, 역사의 또 다른 측면에 접근했다.

수정주의 연구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스탈린의 대숙청을 깊이 연구한 아치 게티라는 인물이 있다. 게티의 저작 <대숙청의 기원(Origin of the Great Purges)>은 스탈린의 대숙청에서 민중들이 부패한 관료들을 고발한 사례나, 고발당할 수밖에 없던 군 인사의 숙청, 그리고 대숙청 시기 처형된 숫자가 서구에 의해 어떻게 과장되었는지를 밝혔다.

이와 같은 수정주의 연구들을 통해 우리는 소련 역사에 대해 보다 객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됐다. 그 수정주의 연구를 한 인물 중에는 호주 출신의 역사학자 쉴라피츠패트릭도 있다. 그녀 또한 스탈린의 대숙청을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라는 관점에서 연구했다. 또한, 서구 사회에 깊게 잡힌 내러티브인 ˝히틀러와 스탈린의 공통된 전체주의론˝을 비판적으로 접근하며 양자의 차이성에 주목했다.

따라서 이 책은 소련사 전문가가 쓴 간략한 개론서라 볼 수도 있다. 책은 1917년 러시아 혁명부터 1991년 소련의 붕괴까지를 다룬다. 내 입장에서는 소련사 관련 책들을 여러 권 읽었기에 다시 한번 복습한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스탈린 시기에 대한 쉴라의 분석은 동의 안 되는 지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쉴라는 현재 우크라이나 정부에서 주장하는 홀로도모르 제노사이드론에 비판적이다. 비록 이 저작에서 깊이 언급되지는 않지만, 해당 부분에 대한 그녀의 입장은 ˝강압적인 집산화가 기근의 원인이 되었지만, 이오시프 스탈린이 의도적으로 우크라이나인을 학살한 것은 아니다.˝이다. 또한, 책 후반부의 소련 붕괴 이후 관련 내용에서 ˝우크라이나 정부가 홀로도모르 신화의 역사적 재해석을 시도˝했다는 표현이 그녀의 입장을 보여준다.

스탈린 시기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내용은 그 중요성에 비해 뭔가 짧게 다뤄지는 느낌이었지만, 가볍게 읽기는 좋았다. 그리고 냉전 초기 소련과 이스라엘 관련 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도 의미가 있다. 소련이 단순히 친이스라엘이 아니라는 것을 쉴라의 책이 보여줬기에 나는 그 의의가 좀 있다고 보는 편이다.

물론 나는 쉴라의 주장에 다 동의하는 건 아니다. 쉴라는 스탈린 시기 집산화를 실패로 간주하고, 이후 흐루쇼프와 브레즈네프 시기 농업 발전이 신속히 이루어졌음을 강조한다. 물론 흐루쇼프와 브레즈네프 시기 소련의 농업 생산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며, 식량 소비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한 것도 사실이다. 1960년 기준으로 소련 인민들은 매일같이 고기식단을 즐길 수 있었는데, 스탈린 시기 최소 1주일에 한번 육류를 섭취할 수 있던 것과는 삶의 질이 달라졌다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집산화의 경우 분명 우크라이나나 카자흐스탄 그리고 남부 러시아에서 안타까운 대참사가 벌어진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단순히 집산화를 실패로만 보기에는 과거 혁명 이전 제정 러시아의 삶을 가만하자면, 단순히 실패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집산화가 단순히 강제적이지만은 않았다는 것은 린 바이올라의 연구에서도 알 수 있다. 린 바이올라에 따르면,

˝비록 중앙에서 시작하고 승인되었지만, 집산화는 상당할 정도로, 농촌의 지역과 지구에 있는 지방 당과 정부 기관의 자유롭고 진취적 기획에 의하여 특별한 정책이 되었다. 집산화와 집단 농장은 스탈린과 중앙 당국에 의해서라기보다 훈련되지도 않았고 권한도 없는 농촌의 관리들과, 자활에 맡겨진 집단 농장의 지도자들의 실험에 의해서, 후진적인 농촌의 현실에 의해서 형성되었다.˝

이와 같은 점을 고려했을 때, 나는 스탈린 시절 집산화가 실패했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분명한 사실은 집산화가 농촌의 삶을 바꿨고, 열악함이 있었음에도 과거 혁명 이전보다 더 나아졌다는 것이다. 또한, 해당 저작에서도 강조하는 흐루쇼프와 브레즈네프 시기의 안정적이고 풍족한 삶은 사실 그 토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후재건의 영향력이다. 따라서 나는 이런 점을 절대 간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쉴라피츠패트릭의 말대로 소련사회는 분명 고르바초프 이전까지 안정적이고 발전적이며 비교적 풍족한 삶을 살았다. 노동자들의 평균 월급은 브레즈네프 시절 300루블 정도였고, 고등교육을 받은 이는 평균 500루블 이상을 받았으며, 서구가 생각하는 노멘클라투라와 일반 인민의 생활 수준이 자본주의 국가처럼 그리 큰 것도 아니었다. 또한, 의료ㆍ교육ㆍ주거가 무상으로 제공됐고, 소비재 생산도 안정적이어서 사는데 부족함이 없었으며 그 가격도 매우 저렴했다. 구매력 지수로만 보면 자본주의 국가보다 훨씬 낫다. 물론 자본주의 국가의 대량생산을 따라가지는 못했지만, 생산수단이 국유화된 사회에서 이룬 업적으로서 내놓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소련의 사회주의 체제는 고르바초프가 집권한 지 6년 만에 무너졌다. 쉴라 또한 강조한 것과 같이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는 매우 어려웠다. 남성의 평균 수명이 짧아졌고 자살률이 급증했다. 러시아의 여성들은 돈을 벌기 위해 러시아나 유럽에서 몸을 팔았고, 이 과정에서 기회주의적인 사람들이 떼돈을 벌어 현재의 올리히가르히가 됐다. 빈부격차와 부정부패가 소련 시대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급증한 것이다. 이것이 보리스 옐친 시대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어떻게 보자면, 러시아에서 푸틴의 등장은 쉴라의 말대로 이런 혼란의 시대가 종식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물론 푸틴은 장기집권을 했고, 과거 소련을 부활시키는 행위를 하지는 않았다. 쉴라가 지적하듯이, 미국과 서구는 소련이 붕괴되었음에도 러시아를 적대했다. 고르바초프와 아버지 부시는 NATO가 더 이상 전진하지 않을 것이라는 조약을 맺었지만, 소련 해체 이후 NATO는 지금까지 꾸준히 동진해 왔다. 그리고 그것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얘기한 것과 같이 러우전쟁 발발의 원인이 되었다.

이렇게 보자면 서구는 소련과 러시아를 너무 모르는 것 같다. 결국 그런 무지가 소련 해체 30년 뒤 서방과 러시아의 전쟁으로 이어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오랜만에 소련사를 개괄적으로 훑어보게 됐다. 솔직히 책 자체는 재밌었다. 개인적으로 일부 동의 안 되는 관점이나 반론할 부분도 있었지만, 소련의 역사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분명히 도움이 되는 책이라 생각한다.

해당 저서의 원서는 2022년에 나왔다. 인류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소련을 세운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지 108년이 지났다. 그 당시 레닌을 비롯한 볼셰비키 사회주의 혁명가들은 더 나은 사회를 원했고, 비록 문제점이 있었음에도 실제로 과거 보다 더 나은 사회를 건설했다. 그러다 1991년 사회주의 국가 소련이 붕괴됐고, 다시 자본주의 국가로 복귀했다.

비록 현재 러시아는 자본주의 국가지만, 아직도 소련 시절 사회주의 유산이 완벽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금도 수많은 러시아인들은 대조국 전쟁 시기 그러니까 히틀러 파시스트 침략에 맞서 소련이 승리를 거둔 역사를 여전히 기리고 있다. 그리고 그런 역사와 정신은 2022년 러우전쟁에서도 연결점이 분명히 있다.

한국 언론은 전혀 보도하지 않았지만, 러우전에 참전한 러시아 병사들 중에는 소련 깃발을 걸고 나선 이들이 있었고, 레닌과 스탈린의 초상화를 붙이고 전투에 임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 제1야당인 러시아 연방 공산당은 우크라이나 공산당ㆍ돈바스 공산당과 더불어 푸틴이 주장한 특수군사작전을 적극 지지했다. 소련의 역사를 알지 못한다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부분은 단순히 러시아 침략자라는 논리로 접근했을 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따라서 소련의 역사와 연결해서 봐야 이해할 수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책은 소련사 개론서다. 소련은 분명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부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긍정적으로 볼만한 요소들도 많이 있었다. 문제는 전자만이 너무 한국인들에게 각인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러시아 사람들 중에는 소련 시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많이 있다. 그 점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한다. 따라서 이 책을 읽고 왜 현재의 러시아 사람들이 소련을 잊을 수 없는지를 알았으면 좋겠다. 소련에 대해 알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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