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탕자들
한 낮의 시선, 이승우, 2021
이를테면 이방인은 자주 오래 멈춰 서 있는 자이다.
- 한 낮의 시선, p87
‘자주 오래 멈춰 서 있는’ 소설 속 ‘이방인’ ‘나’는 ‘모퉁이’를 돌면 불쑥 마주칠 것 같은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 알 수 없는, 모르는 존재에 대한 공포는,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된다. 불안은 언제든 일어날 것 같은 기약할 수 없는 자기 암시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와 같다. 어느 날 결핵 진단을 받고 요양 간 천내에서 노교수의 방문을 받은 나는 그와 대화를 하던 중 없었던 아버지의 존재를 강하게 인식하게 되고, 그것은 절대 부인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를 테면 아버지는 왕성하게 살아 움직일 수 있는 한낮과도 같으며, 나는 한낮의 시선 아래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천내에서 느꼈던 자연의 안락함에 기대어 요양을 하기가 불가능해졌다. 아버지를 찾아야 한다. 나는 천내를 떠나 휴전선에 가까운 인구 3만의 도시로 가며 나는 말테의 수기 첫 문장을 떠올린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이 도시로 모여든다. 하지만 내게는 도리어 죽기 위해 모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휴전선에 가까운 인구 3만의 도시에 살기 위해서 가는 것일까, 죽기 위해서 가는 것일까.
영화농장의 공동대표이자 기초단체장 후보 기호 2번의 연설이 있던 날, 나는 기호 2번ㅇ에게 “한명제예요. 내가, 한길숙이 아들. 생각나세요? 한길숙?”이라고 외치지만 그는 나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듯하다. 냉담하기까지 하다. 나와 어머니의 이름을 밝히며 아버지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던 나는 좌절한다. 또 나는 경쟁 후보의 덫에 걸려 기호2번의 도덕적 결합을 문제 삼는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어느 날 영화농장 주변을 배회하던 나는 기호2번과 마주치게 되고 기호 2번은 타이밍이 좋지 않을 때 찾아왔다는 말을 나에게 남기고 딸과 아내가 기다리는 집으로 달려간다. 나는 그 자리에서 객혈한다. 그리고 기호2번의 명령을 수행하는 수하들에게 감금당한다. 영화농장, 창문이 다 가려진 어느 외딴 집에. 그곳에서 나는 존재에 부정당한 절망감을 피를 토하듯 웅크려 글로 드러낸다. 게걸스럽게 글을 써 내려간다. 그리고 꿈인지 생시인지 모른 상태에서 아버지의 심장에 칼을 꽂는다. 아버지는 죽었는가. 아니다. 아버지는 전보다 아주 강한 존재로 나의 내부에 살게 된다. 모퉁이를 돌면 부딪칠 것 같은 알 수 없는 존재는 낮에는 햇빛 아래서 밤에는 가로등불이 비추는 빛 아래서 환하디 환한 영화농장에 살고 있는 그분이었다. 나는 그분의 시선에 갇혀 쓰는 자가 된 것이다. 탕자가 된다, 오직 한 사람만의 사랑을 갈구하는.
이승우의 소설에서 그분은 내가 애써 찾는 존재 혈육의 아버지에만 한정되지 않은 듯하다.
‘한낮의 시선’은 전능하다고 익히 알려진 신에 대한 이야기로도 읽힌다. 신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신은 기호 2번처럼 냉담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자신을 드러낸다.
‘한 낮의 시선’에는 허술한 존재들이 ‘나’의 이야기에 가지처럼 매달려 있다. 태양의 아들, 통신사 직원, 탈영병, 김중사, 오르한 파묵의 소설 속 인물. 그들은 모두 ‘누구’ ‘무엇’을 기다린다. 그리고 ‘누구’ ‘무엇’이 그들에게 웬만해서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말한다. 그러면 안 되는가,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올 것이기 때문에 기다리면 안 되는가, 라는 그들의 하염없는 말이 덧없고, 집착 같아서 무서우면서도 일면 수긍이 간다. 그러면 안 되는가. 나와 그들과 우리는 시선에 머물며 시선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인식하기 시작한 것들은 무의식 속에 가라앉아 언제든 나타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없지만 있는 것들의 존재는 거부하면서 기다리는 이들이 기다리는 것은 오직 한 사람의 사랑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그들이 기다리는 이들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