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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rn it blue
  • 있잖아 있잖아
  • 시모카와라 유미
  • 11,700원 (10%650)
  • 2021-05-05
  • : 186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모카와라 유미 <<있잖아 있잖아>>


책장을 넘기기 전, 일부러 오래 책표지를 바라본다. 표지의 그림에서 눈을 찡긋 감은 노란 병아리가 생쥐의 귀에 대고 쫑쫑쫑, 삐약삐약, 무슨 말인가를 아주 많이 빠르게 쏟아내고 있다. 병아리가 살짝 당돌해 보이기도 한다. 두 손을 모은 생쥐는 병아리 쪽으로 귀를 쫑긋,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생쥐에게서 기대감이 감돈다. 풀밭 위에 선 병아리와 생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호기심으로 표지를 넘긴다. 아무 것도 쓰여 있지 않은 병아리색의 속지를 빠르게 넘긴다. 앞으로 진행될 이야기가 궁금해서다.

엇! 살짝 당돌해보였던 병아리가 고개를 외로 틀고 무엇인가를 골똘히 바라본다. 겁을 먹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그 그림 아래로 “병아리가 말했어요.”란 문장이 적혀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장은 표지에서 봤던 병아리와 생쥐의 모습이다. “삐약 삐약 있잖아 생쥐가 제일 좋아.” 아~! <<있잖아 있잖아>>의 표지그림은 병아리가 생쥐에게 고백하는 것이었구나. 그러니까 병아리가 골똘히 바라봤던 것은 생쥐였고, 생쥐에게 고백하기 전 병아리는 부끄럼쟁이였으나 고백할 때는 눈을 질끈 감고 “제일 좋아.”라고 빠르고도 기쁘게 노래하듯이 삐약삐약 말하고 있는 것이었구나. 절로 푸릇푸릇한 마음이 피어오른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고백하는 마음의 과정이 단 두 장의 그림으로 명료하게 전달된다. 단순하고, 명료하며 시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그림책 한 장을 더 넘긴다. 고백을 들은 생쥐가 잔뜩 차오른 기쁨으로 펄쩍 뛰며 즐거워하고 있다. 생쥐의 기쁨이 곧 나에게 옮겨온다. 나도 활짝 웃는다. 어쩜, 아구구구, 설레라. 저리 좋을까. 생쥐의 기쁨은 독자의 기쁨. 한 장을 더 넘기니 생쥐가 오리에게 “네가 좋아.”라고 말한다. 이 페이지를 보는 순간, 엇! 하고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나는 생쥐가 병아리에게 “나도 네가 좋아.”라고 말해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시 이어지는 이야기. 오리는 토끼에게 토끼는 닭에게 “있잖아, ……, 제일 좋아.”라고 말한다.(고백한다, 읆조린다.) “네가 좋아.”라는 고백을 들은 동물들(오리, 토끼)는 온 몸으로 기쁨을 활짝 드러낸다. 사랑은 마음을 타고 여기저기로 퍼져나가고 있는 중이다. 좋아하는 마음이 좋아한다고 말했던 당사자에게 돌아갔으면 하는 아쉬움은 최은영선생님이 강의 중에 했던 말이 떠올라 달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받은 사랑의 힘으로 호기심과 함께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받은 사랑을 되돌려 받으려는 것은 어쩌면 성숙하지 못한 어른의 속성. 아이들은 좋으면 그만!인 삶을 살아가는 존재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 엄마로써 심히 공감이 가는 한 장면! 토끼의 고백을 들은 닭은 자신의 아이 병아리에게 “꼬꼬댁 꼬옥 제일 좋아.”라고 말하며 꼭 껴안는다. 병아리는 다시 생쥐에게 가 “네가 좋아”라고 말하겠지만……. 엄마에게서 받은 병아리의 사랑은 그들이 사는 어느 곳으로든 쏙쏙 퍼질 듯하다. 사랑의 바이러스가 원래 그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으니.

네가 좋아, 라는 말 참 좋은 말. 이 참 좋은 말로 온 몸이 만개한 꽃처럼 활짝 피어나는 경이. 새삼 짧은 그램책 한 권으로 하늘만큼, 땅만큼 좋아라고 말할 수 있었던 아주 오래전의 시간, ‘나의 아이였던 시간’을 소환하여 이곳에 가져다놓는다. 나는 병아리에게서, 생쥐에게서, 오리에게서, 토끼에게서 “있잖아, 있잖아, 네가 좋아.”라고 이미 고백을 받았던 터. 나는 이제아이에게 혹은 누구, 누구, 누구에게 “있잖아, 있잖아, 네가 좋아”라고 수줍지만 빠르게 말하고 줄행랑칠 준비를 한다. 이 말을 하고 나는 기뻐질 것이다. 아이의 웃는 모습이 그려진다. 누구, 누구, 누구의 어색한 듯한 웃음과 그들의 몸에 피어나는 기쁨의 꽃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그림책 서평을 해보겠다고 다짐한 것은 그림책과 친해지고 싶어서다. 아이에게 오랫동안 책을 읽어줬지만 정작 그림책이 가진 힘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의무적으로 읽어주는 날이 더 많았다. 아이가 커서 혼자서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어도 책을 읽어주긴 했으나, 애정을 듬뿍 담아 책을 읽어주지는 못했다. 어쩐지 그림책들에 공감할 수 없는 마음이 더 많았다. 그림보다 글자가 많은 줄글을 읽어줄 때는 더 흥이 났었다. 아귀가 맞는 논리적인 글을 더 선호할 수밖에 없는 나이의 사람이이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다소 엉뚱하고, 이야기의 얼개가 맞지 않은(개연성 없는) 그림책을 못 읽어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게 참 웃긴 게 그림책을 졸업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 시기에 아이에게 줄글을 읽어주면서, 이제껏 봤던 그림책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책의 내용이나 그림들이 선명하게 그려지는 그런 아른거림이 아니라, 그림책이 가지고 있는 여유 같은 것. 많지 않은 글자와,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선명한 그림들(혹은 형체들) 그리고 남은 종이의 흰 부분. 이러한 것들이 여유를 동반한 여백으로 아른거리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그림책들을 펼치게 되었고, 그제야 그림과 글들을 천천히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림책을 읽어낼 수 있는 힘을 참 오래 걸려 얻은 듯하다. 그림책을 졸업하지 않아 다행이다 생각하며 다시 또 많이 큰 아이에게 천천히 그림책을 읽어주는 시간. 내 마음의 변화들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 처음 본, 낯선 이의 그림책, 이제 갓 나온 그림책을 한번 읽어보며 그림책이 전해줄 수 있는 힘을 오롯이 느껴보고 싶었다. 그림책을 읽는 마음은 아이의 마음을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마음이며, 그들의 언어를 터득하는 일이며 마음과 언어를 터득해 어른인 우리의 세계에서 더 귀한 덕목으로 살아날 수 있는 가치인 듯하다. 가치였으면 한다. 가치여야 한다.

 

<<이 책은 미디어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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