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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rn it blue
  • 5월 18일, 맑음
  • 임광호 외
  • 12,600원 (10%700)
  • 2019-03-15
  • : 1,809

극복해야 할 환각

 

1989년 5월, 4차선 도로를 가득 채운 수많은 사람을 보았다. 그들은 “꽃잎처럼 금난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로 시작하는 민중가요를 부르며 법원 정문 쪽으로 걸어갔다. 시골에서 도시로 전학을 간 지 얼마 안 된 열세 살 아이가 본 그 광경은 낯선 것이었지만, 마음을 잡아채는 무엇이 있었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저 인도에 서서 팔을 휘두르며 노래를 부르는 그들의 모습을 나는 오래 바라보았다. 그들이 왜 거기에 있는지 몰랐다.

당시 법원 앞은 밤낮으로 전경들이 서서 보초를 섰는데 그 광경도 낯설고 이상한 것이었다. 엄숙하고 경직된 분위기의 전경들이었지만 그들 앞을 지나는 누구도 엄숙하거나 경직되지는 않았다. 늘 거기에 있었기 때문에 일상이 되었던 것이리라.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는 늘 전경들 앞을 지나야했는데, 어떤 날은 가방에 있는 간식거리를 그들 중 누군가에게 주기도 했다. 여름 밤에는 법원 광장에 와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들로 붐볐다.

그 후 내가 본 그날의 광경이 1980년 5월 이후 광주에서 해마다 열리는 집회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하여 예술철학 시간에 전태일과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 영화 꽃잎을 알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광주에서 학교를 다닌 덕에 5‧18에 대해 이야기해 줄 사람도, 이야기할 사람도 많았다. 눈치 보지 않고 기꺼이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D시에 살고 있는 지금, 예전만큼 자유롭지 못 하다. 내 스스로 편을 나눠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아니다. 좀 더 솔직해져야한다. 나는 광주의 5‧18에 대해 잘 알지 못 한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알지만, 지역이나 색깔을 덧씌워 말하는 그들에 대적할 만한 앎이 없다. 좀 ~척 할 수는 있겠지만 부끄러운 마음이 먼저 든다. 때문에 나는 5‧18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 그래서 한번쯤은 5‧18에 대해 말하는 연습을 해 볼 시간이 필요했다.

 

1980년 5월 18일 10시 전남대 정문 앞에 모인 학생들을 진압하는 과정 중에 투입된 공수부대는 광주 시내로 들어가 시위대는 물론 거리에 나와 있는 사람 전원을 향해 박달나무로 특수제작된 곤봉으로 구타하고, 총에 꽂힌 대검으로 찔러댔다. 부대원과 마주친 모든 이들은 그 자리에서 죽어도 되는 ‘것=물건’ 이었다. 박정희의 죽음과 함께 길고 긴 겨울 공화국이 끝나리라는 희망을 가졌던 시민들은 신군부의 폭력 앞에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신군부는 시민들을 폭력으로 진압하여 뻗어나가려는 항쟁의 불씨를 깨끗하게 꺼트릴 작정이었다. 날씨 맑았던 5월 18일 일요일이 지나고 광주에도 월요일이 찾아왔다. 공수부대의 만행을 겪은 시민들은 충격과 공포 속에서도 금난로에 모여 들었고, 신군부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다. 공수 부대의 잔혹하고 무차별적인 공격이 되풀이되었다. 시민들은 두려워했으나 두려움을 집어 삼킨 강렬한 생존본능으로 시민군을 조직하여 신군부와 대립하게 된다.

 

“기자로서는 이 같은 행위를 적절히 표현 할 단어를 찾을 수 없었다. 만행, 폭거, 무차별, 공격 등의 단어는 너무 밋밋해서 도저히 성에 차지 않았다.”

- 당시 동아일보 기자 김충근의 말

 

1980년 광주의 5‧18을 요약하는 일은 여기서 멈춰도 될 것 같다. 18일부터 시작된 열흘 간의 항쟁을 여기에 다 담을 필요가 없다. 단순하게 생각하자.

 

“어? 이 사람들은 우리나라 군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요. 저는 그 사람들이 다른 나라 군인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우리나라 군인은 좋은 사람들이라고 배웠고, 그렇게 믿었으니까요.”

 

1980년 5월 당시 열세 살 아이가 본 그날의 풍경이다. 2019년 52살이 된 그는 지금쯤 군인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그에게 5‧18은 39년이 지난 과거가 아닐 듯 하다. 아마도 늘 반복되는 현재가 아닐까? 시민들을 지켜야 할 군인들의 공격, 그 뒤 전두환이 있었다. 이것이 우리가 기억해야 할 단순명료한 5‧18이지 않을까. 전두환은 종신권력을 꿈꾸다 감옥 밖에서 종신형을 살고 있다. 그는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그의 감옥 밖 옥중 생활은 자명한 것이다.

5‧18을 비롯, 권력의 무력에 죽어갔던 아픈 사람들의 변호는 늘 지속되어야 한다. 무고한 시민을 총과 칼로 죽였고, 죄의식도 없이 뻣뻣하게 고개를 들고 세상을 하대하는 대단한 속성은 권력 가진 자들의 이면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자주 망각한다. 우리 민중이 지나온 역사의 진실을 파헤치고 규명하지 않으면 우리는 덧없는 환상 속에 살게 될 것이다. 망각과 무너짐이 일상인 하찮은 사람으로서, 두렵다. 기억하지 않으면 역사는 허상이 된다. 권력자들은 민중의 기억이 허상이 되는 것을 시시때때로 노리고 있다. 지난 역사의 잘잘못을 따져 물어야하는 이유다.

나의 5‧18은 감상적인 데가 있다. 군중이 부르는 노래에 가슴이 뜨거워진 적이 있었던 나는 지금도 거리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민중가요에 걸음을 멈추고 눈시울을 붉힌다. 자동반사다. 그 사람을 자극하는 음악모드가 분명히 있기 마련인데, 나는 굵직하고 웅장한 느낌의 음악에 더 감동하는 듯하다. 5‧18보다 노래를 먼저 알아버려서 분노하지 못 하고 감동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죄의식이 나에게는 늘 있었다. 바란다, 나와 같은 사람들 노래와 문학과, 영화로 역사를 접한 그들이 감동의 시간이 지나면 한 번 더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가 그것에 대해 알고 분노했음 한다. 그 분노가 오래오래 각인되길 바란다. 역사는 승리한 자의 것이라 했다. 승리는 늘 작고 보잘 것 없는 힘없는 사람의 것이어야 한다.

다시 또, 나는 노래가 불러오는 환각을 극복하고, 역사를 바로 볼 필요를 느낀다.

 

영화 꽃잎의 장면,

거리에서 총을 맞고 쓰러져 죽어가는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달아난 소녀는 모르는 이의 무덤 앞에 앉아 있다. 흰자위밖에 보이지 않은 눈으로 몸을 좌우로 흔들며 방언을 뱉어내는 소녀는 미쳤다. 소녀는 무덤 앞에서 어머니와의 접신을 꿈꾸고 있는 듯 하다.

그날의 일을 접한 사람들은 다들 미치지 않고 살 수 없었다고 말한다. 가슴에 불이 솟구친다. 역사적 대의 이전에 개인의 상처인 것들을 모략하여 색깔을 뒤집어씌우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할 수 없다는 감정이 먼저 앞선다.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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