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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데굴데굴
  • 아르고스
  • 이승형
  • 15,120원 (10%840)
  • 2026-08-30
  • : 11,980


흔히 AI 시대의 디스토피아를 말할 때 ‘인간성의 상실’을 경고하고는 한다. 그리고 그 인간성의 자리에 사랑, 공감, 도덕 같은 숭고한 단어들이 쉽게 배치된다. 그러나 『아르고스』는 그 편안하고 안전한 프레임을 단숨에 부순다. 이 소설이 마주하는 인간은 착하거나 숭고하지 않다. 지극히 이기적이고, 타인의 불행을 발판 삼아 재기를 꿈꾸며, 스스로의 몸을 갈아 넣어 자본을 좇는 표독한 인물이다. 재미있게도 이야기는 바로 그 추악하고 생생한 욕망이야말로 규격화될 수 없는 인간의 본질 중 하나임을 증명해 낸다.


경남 김해의 대성동 고분군 바로 옆에 밤낮으로 멈추지 않는 물류센터가 있다. 이곳의 AI 관제 시스템 '아르고스'는 감정도 악의도 없다. 그저 목표 물동량을 달성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잠을 빼앗는 주파수를 쏘아낼 뿐이다. 가족을 위해, 혹은 삶의 재기를 위해 자발적으로 불면을 택한 노동자들은 점차 꿈을 잃고 감정이 마모되어 이 거대한 기계의 부품으로 변해간다.

주인공 재일은 이 비극의 구원자가 아니다. 그는 잠을 잃어가는 노동자들의 피를 뽑아 불면 혈청을 만들어 강남으로 복귀하려는, 끝까지 속물적이고 계산적인 인물이다. 즉 세상을 구하기 위한 정의감이 아니라, 철저한 자기 계산과 생존 본능에 의해 행동 양식이 결정된다. 이런 인간의 이기심이 최첨단 시스템에 균열을 낼 수 있다는 이 설정은 이 작품을 여타 디스토피아물과의 독특한 차별성을 만들어낸다.

폭우로 1500년 전 가야 고분이 무너지며 유골들이 물류센터 컨베이어 벨트 위로 휩쓸려 들어오는 장면은 상당히 크리피하면서도 이 책이 하고자 하는 말을 상당히 직설적인 장면으로 보여준다. 로봇은 인간의 유골을 택배 상자처럼 무게로 측정하여 분류하고, 두개골이 바코드 스캐너를 지날 때마다 에러음이 울린다. ‘삑, 삑, 삑.’ AI에게 인간의 역사와 죽음은 인식 불가능한 오류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의 귀에 이명처럼 울리는 기괴한 에러음은, 어떻게 보면 효율과 수치라는 시스템 안에 결코 가두어질 수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비명으로도 읽힌다.


《아르고스》는 현 시대에 가장 첨예하고 예민한 화두를 거침없이 관통하며 묻는다. 효율이라는 명분 아래 우리는 지금 무엇을 잃어가고 있으며, 스스로를 어떤 기계적 부품으로 만들어가고 있는가. 규격화될 수 없는 욕망과 꿈을 가진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바코드 스캐너의 에러음과 흙탕물 속에서 코를 골며 자는 소리가 오랫동안 귓가를 맴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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