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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데굴데굴
  • 이만 원만 빌려줘
  • 안보윤
  • 13,500원 (10%750)
  • 2026-04-03
  • : 2,010



알고 있다.

나는 타인이 될 수 없고, 타인이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듯 나 역시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시각에서 타인을 보고 스스로의 언어로 타인을 규정한다. 그 모든 일에 악의는 없다. 그래서 개인은 죽을 때 까지 외로울 지도 모르며, 타인에게서 나를 찾으려 하고 이해를 갈구하는 순간 빛나는 지옥에 갇히게 된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옥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이백만 원도, 이십만 원도 아닌 고작 '이만 원'이라는 액수에 묶인 생(生)의 기록. 치킨 한 마리 값에 불과한 그 숫자가 누군가에게는 죽음을 유예하거나, 혹은 영영 돌이킬 수 없는 죄책감의 무게, 때로는 한 가족 구성원의 존재 가치를 난도질하는 수치가 된다. 그 조용한 비극 앞에서 우리는 그간 공감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감정들이 얼마나 얄팍하고 값싼 폭력이었는지를 뼈아프게 실감한다.


연작 소설로 이어진 세 편의 이야기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부서진 인물들을 비춘다. 동반 죽음을 위해 떠난 여정에서 마주한 '진짜' 절망의 형상(동주), 동생의 죽음 이후 그래도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오영), 그리고 몸값 이만 원짜리 유괴 피해자라는 낙인 속에서 뒤틀린 모성애를 견뎌야 했던 아이(정우)까지. 작가는 이들을 하나로 묶어 억지스러운 화해를 주선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아픔을 이해했다고 자부하는 순간조차 이 작품은 그것이 기만적인 착각임을 서늘하게 증명해 보인다. 공감은 종종 가장 손쉬운 방식의 오만이 될 뿐이라는 사실이 차게 드러날 뿐이다. 


오히려 안보윤의 문장은 타자의 고독을 나의 언어로 제멋대로 번역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선언과도 같다. 냉정해보이는 거리감은 사실 상대를 온전한 단독자로 대우하겠다는 가장 지극한 존중의 표현이다. 모든 가치가 화폐 단위로 치환되는 삭막한 세상에서, 이해와 공감 · 연대가 정답처럼 강요되는 사회 속에서, 작가는 기어코 '알 수 없음'의 공백을 보존한다. 그 여백을 통해 훼손된 인물들의 존엄과 입체성을 비로소 복원해낸다.


이 소설집은 얇고 가벼운 장수와 달리, 책장을 덮고 나면 어지간한 벽돌책보다도 무겁게 남는다. 대책 없는 응원이나 근거 없는 낙관에 냉소를 느끼는 이들, 혹은 자신을 유폐시킨 '고장 난 전기밥솥' 같은 우리에게 이 책은 비로소 숨 쉴 구멍을 만들어 준다. 억지로 '우리'라는 틀에 묶이지 않아도 좋다고, 타인을 끝내 타인으로 남겨두는 무심함이 오히려 서로를 살릴 수도 있다고. 그저 각자의 지옥에서 묵묵히 서 있으면서, 서로의 지옥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을 통과하면서 새로이 바라보게 된 그 태도야말로, 이 세계를 견디는 가장 덜 폭력적인 방식일지도 모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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