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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데굴데굴
  • 챗위스키봉봉
  • 고민실
  • 15,300원 (10%850)
  • 2026-03-25
  • : 1,350


평범한 일상은 거저 주어지지 않고 애써 일구어야 겨우 마련되는 사치재죠.


— p.221, 「속삭이던 별들은 사라지고」



고민실의 작품은 그렇다. 전작 『홈 가드닝 블루』에서 그랬듯, 톡톡 튀는 설정과 흥미로운 소재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그 아래에 깔린 정서는 의외로 차갑고 쌉쌀하다. 그러니까 이 책 역시 줄거리만 보고 가볍고 귀여운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그 예상은 꽤 빠르게 어긋난다. 겉으로 드러나는 발랄함과 달리, 이야기의 중심은 오히려 무겁고 건조하다.


『챗위스키봉봉』은 동시대의 익숙한 요소들을 끌어온다. 생성형 AI, 웹소설, 안락사, 감시와 고립 같은 장치들은 지금의 일상과 멀지 않은 거리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안의 인물들은 공통적으로 어떠한 상태에 놓여 있다.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이어가야 하는 삶, 사회와 외부의 상황에 밀려 점점 좁아지는 선택지. 익숙한 소재들을 통해 어떤 위로나 공감을 건네기보다는, 오히려 감정의 온도를 한층 낮춘 채 우리를 그 안에 오래 머물게 한다. 온기보다는 서늘함, 이해보다는 어딘가 불편한 납득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러나 인물들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자신이 처한 조건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최소한의 균형을 유지하려 한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듯이. 문제는 그 균형이 지나치게 위태롭다는 데있다.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공간을 포기하고 안전보다 생계를 우선에 두는 선택은 다소 극단적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어느 순간 그들의 선택에 공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그 지점에서 묘한 불편함이 남는다.


표제작 「챗위스키봉봉」은 친구와 대화하고 직장 상사와 데이트를 하면서도, 타인의 마음을 직접 확인하기보다 AI를 통해 해석받고 감정의 방향마저 외부에 위탁하는 인물을 보여준다. 그 태도는 효율적인 선택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관계의 실감을 희미하게 만든다. 겉으로는 예쁘게 포장된 다정함은 남아 있지만,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끝내 확신할 수 없다. 부드러움을 가장한 말들 사이에서 오히려 관계와 연결의 공백이 더 선명해진다.


기억에 남는 단편 중 하나는 「그만한 하루」다. 안락사법이 통과된 사회에서 치매에 걸린 ‘나’가 죽음을 선택하기 위해 안락사에 필요한 도구를 훔치려는 이야기. 사회적 약자가 되는 순간, 한 개인은 동시에 ‘민폐’로 규정되고, 그 상태에서는 죽음이라는 선택조차 철저히 비용의 문제로 환원된다. 결국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편안한 죽음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이 설정이 낯설기보다 익숙하게 느껴진다는 점에서, 이야기는 더 직접적인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이 소설집은 어떤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무엇이 옳은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장면들만을 쌓아 올린다. 그리고 그 안에서 독자가 스스로 생각하도록 남겨둔다. 그래서 이 책은 친절하지 않다. 대신 아릿한 맛만 입 안에 감돌다 사라진다. 마치 예쁘게 만들어진 위스키 초콜릿처럼. 겉으로는 달콤해 보이지만, 외양에 속아 과감히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예상보다 강하게 충격을 주는 쌉쌀한 맛처럼. 이 소설이 남기는 맛은 분명 불편함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외면할 수도 없는 종류의 것이다.



+아빠비엘로 시선을 좀 끌었는데 사람들이 대체로 기대하는 종류의 가벼운 이야기 절대 아니었음



*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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