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74 | 삶이 본질적으로 서로 상관없는 경험의 집합일 뿐이라면? 어떤 일이 다른 일과 유의미하게 이어져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인터메초 (INTERMEZZO)
1. 간주곡, 막간극
2. 체스에서 흐름을 깨는 예상 밖의 한 수
관계 진짜 미드 그 자체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을 사는 두 형제의 이야기인데 전체적인 라이프 이야기라기 보다는 멜로 쪽에 묵직하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제목처럼 극적인 결단으로 삶을 엄청나게 뒤집지도 않는다. 대신 한 사람이 죽고 난 뒤, 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 이후를 버티는지를 따라가는데, 굉장히 공감갔던 부분 중 하나는 '아버지'의 부재에 있다. 이 형제는 아버지와 엄청나게 친하다고 보기 어렵다. 매일 같이 전화를 하거나 엄청난 정서적 유대감이 있는게 아니라 정말 현대인들이 부모님과 가지는 거리감, 딱 그 정도의 거리를 가지고 있는데도 아버지의 부재는 두 형제의 일상에 미세하게 균열을 낸다.
형 피터와 동생 아이번은 E와 I를 인간화 한 것 처럼 완전히 다른 성향의 사람같지만 사실은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질문. 피터는 어른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어딘가 늘 흔들리고 있고, 아이번은 세상과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자신을 지켜왔다. 둘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오래 버텨왔고, 상실은 그 어색한 침묵을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만든다.
이 관계들이 정말 가능한 걸까,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나 싶은 순간이 여러 번 찾아온다. 형은 과거의 연인과 완전히 정리하지 못한 채, 한참 어린 여자와 또 다른 방식으로 얽혀 있다. 동생은 자신보다 열네 살이나 많은 여성에게 깊이 빠져든다. 진짜 요지경 세상이고 지구촌 참 넓다...
그러나 이 이상한 관계와 모든 충동성이 다분해 보이던 행동들은 들여다보면 어떠한 두려움 위에 서 있었고, 작품의 바깥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 그들의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들은 세심하게 포개지는 문장 속에서 이상하리만큼 서서히 설득력을 얻는다.
왜냐하면 이 소설에는 대충 흘려보내는 장면이 없기 때문에. 사소해 보이는 시선 하나, 망설임 한 박자까지도 치밀하게 직조되어 있다. 그래서 인물들을 쉽게 재단할 수가 없다. 불합리해 보이고, 어쩌면 도덕적이지 못한 것 같기까지 한 선택들의 앞에서 '사람인데,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조금씩 스며든다. 관계의 복잡함과 인간의 입체성. 구원 같기도 한 사랑이 어떤 때는 도피처럼 보이고, 배려는 오해로 쉬이 뒤틀린다. 대화는 이어지지만 마음이 빗나가고 타이밍을 놓친 진심은 사람들의 관계 사이에서 부유한다. 이 사건들이 낯설지 않은 건, 이게 너무나도 사람들에게 흔히 벌어지는 일이라서. 너무나 실제로도 흔해 빠진 드라마라서.
이처럼 불완전한 사람들이 서로의 주변을 서성이며 아주 미세한 방향 전환을 만들어가는 과정, 어쩌면 그것이 이 소설이 말하는 ‘인터메초’가 아닐까 싶다. 삶이 멈춰버린 듯 느껴질 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한 발짝도 떼지 못할 때, 모든 것이 끝났다고 성급히 단정해버리는 순간들. 그 시간은 막다른 길이 아니라, 잠시 삽입된 한 구간일지도 모른다.
피터와 아이번이 인생이라는 체스판 위에서 서툰 수를 두며 헤매듯, 우리 역시 방향을 잃은 채 머뭇거린다. 이 작품은 그 머뭇거림을 실패로 단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멈춰 있는 듯 보이는 그 시간에도 보이지 않는 밀도가 쌓이고 있다고, 정지의 순간 역시 삶의 일부라고 조용히 일러준다. 그리고 이 간주극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은 어쩌면 관계와 사랑 속에서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고.
p.612 | 모두가 서로 사랑했고 좋든 나쁘든 서로가 필요했다.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관계. 얽히고설킨 거미줄. 집에 들어가면 뭘 좀 먹어야 겠다. 어머니한테 전화해서 죄송하다고 말하자. 모든 것을 용서 받자. 너도 알겠지, 살아 있는 것은 모두 죽는다는 걸. 결국 모든 사람이, 그와 아이번조차도. 생각해보면 참 이상하다. 이렇게 찰나에 불과한 삶에서 의미를 만들어낸다니. 왔다가 사라지는 것.
+ 수위 조금 있음. 미드 볼 정도면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수위.
++ 말 그대로 '젊은 세대의 불안과 고뇌를 정교하게 포착하는' 작가라는 말을 증명하는 장편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