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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데굴데굴
  • 헌 옷 추적기
  • 박준용.손고운.조윤상
  • 17,100원 (10%950)
  • 2025-11-28
  • : 1,910



우리가 누리는 권리가 누군가의 고통 위에서 세워진다면, 그것은 더 이상 권리라 말할 수 없다. 우리가 누리는 것들의 시작과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변화는 인지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 p. 260



테무깡, 쉬인깡이 유행하는 시대에 우리는 너무 쉽게 옷을 산다. 사실 지금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패스트 패션 시대를 살아가며 버려지는 옷이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질 낮은 상품을 과잉생산해서 저렴하게 팔고, 빠르게 버려지는데 문제가 없을리가 없다. 심지어 지금은 울트라 패스트 패션 시대란다. 몇 년 전부터 분명 지적되어 온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가속화되었다.


굳이 '패스트 패션'은 환경에 유해합니다. 이르지 않아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모를 수가 없다. 친환경적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저 말이 크게 와닿지가 않는다. 왜? 보이지가 않으니까. 버려진 헌 옷들은 그 순간 나의 눈 앞에서 사라진다. 헌 옷 수거함에 버리면 그걸로 끝이니까. 이 헌 옷들이 차라리 국내에서 대부분 처리되었다면 이야기가 달랐겠지만.


그렇게 막연하게 알고 있던 사실에 <헌 옷 추적기>는 가시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153개의 추적기를 헌 옷에 부착해 4개월간 그 옷들이 어디로 흘러가는 지 쫓는다. 

한국은 세계 중고의류 수출 5위라고 한다. 달리 말하면, 헌 옷을 가장 많이 다른 나라에 떠넘기는 순위로 손에 꼽힌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그렇게나 많이. 수출 된 옷은 재활용되는가? 공식 통계는 100%지만, 정작 옷들은 인도의 불법 소각장과 타이의 쓰레기 산, 볼리비아의 황무지다. 


이 얼마나 기만적인가. 금방 버려질 쓰레기가 될 것이 확실한 옷들을 유흥거리처럼 사고, 다른 나라에 떠넘기면서 탄소배출량을 줄인다고 이야기한다. 어느 정도 줄였다며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다고 한다. <재앙의 지리학>에 나오는 '탄소 식민주의'라는 단어가 정확하다.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으로, 개발도상국이 후진국으로 떠넘기고 외면한다. 그리고는 후진국이나 개도국이 자국 발전에 눈이 멀어 탄소를 배출한다며 조절하라고 꼬집는다. 그들의 환경 오염 문제를 심각하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 바라본다. 인도의 수질과 대기를 오염시킨 것은 오롯이 그들이 자국 발전에 눈이 멀어서 그렇다는 듯이. 


읽는 내내 기분이 처참하다. 쓰레기 산에서 유해물질을 들이마시고, 그 위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의 사진이 나올 때마다. 기업, 물론 책임이 있다. 과잉 생산, 대량 폐기 구조를 만들고 재활용을 한다는 두루뭉술한 말로 빠져나가니까. 그러나 그들이 만들어 낸 구조가 더욱 빠르게 굴러가도록 박차를 가하고 있는 건, 옷을 즐기듯 사고 쉽게 버리고, 쓰레기가 될 것이 자명한 옷들을 대량으로 사서 10분 짜리 컨텐츠로 소비한 뒤 버리고, 그런 컨텐츠를 즐기는 우리 아닌가. 이 처참한 구조에 개인의 책임은 없는가. 


<헌 옷 추적기>는 단지 헌 옷의 행방만 추적하지 않고, 우리 모두가 엮인 구조에 대해 가시적으로 들춰낸다. 외면해온 현실을 기어코 눈 앞에 가져다 놓지만 과장도 분노도 걷어내고 침묵으로 사실을 드러내는, 드물게 정직한 추적기다. 그 담담한 시선 속에서 우리는 그제야 변명 대신 책임을 떠올리게 된다. 환경 오염에 나의 옷장은 얼마나 연루되어 있을까. 



+ 이거 글 쓸수록 약간 사람이 분노에 차오름. 아 진짜 인간들 너무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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