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사람들은 언어를 빼앗긴다. 빼앗긴 언어는 마치 그들이 자발적으로 침묵한 것 처럼 가려지고, 그러는 사이에 존재는 삭제된다. 분명히 이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암전들』은 그런 퀴어들의 목소리를 위로 끌어올린다. 마커로 삭제된 과거의 문장들을 그들의 목소리로 채워넣는다. 암전된 공간에 켜진 작은 플래시가 가장 구석진 곳에 소외된 사람들의 소매 끝자락부터 천천히 비추듯이.
이 이야기는 삭제당한 과거에 현재의 언어를 덧씌우는 대화로 가득하다. 당신의 과거는 나의 현재이기도 하며, '뒤틀고, 거짓말하고, 지어내서 비활성인 것'(147)이더라도 존재를 복원하는 과정. 이 메시지는 마지막에 거울을 보고 싶다는 후안을 위해 거울 틀에 자신의 얼굴을 대어 후안의 얼굴이 되어주는 나를 보여주는 데에서 드러난다.
즉, 우리는 그 대화들의 진위를 따져볼 수 없다. 노인 후안과 청년의 대화에서 드러나는 진상들이 실재하는지 이 책의 마지막까지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뭐가 중요하겠는가, "모호한 것이 모조리 해소될 필요는 없"(275)으니. 우리가 대다수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따지고 들지 않듯이, 그들의 이야기 역시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침묵과 누락, 공백 속을 비집고 나온 작은 목소리의 진실성을 파헤칠 이유란 굳이 없으므로. 그들의 역사를 그저 들어주고, 말하기를 멈추게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삭제된 텍스트는 서서히 다른 문장으로 채워져간다. 모두가 회복될 수 있는 방향으로.
삭제된 텍스트. 기분이 좋다기보다는 심연의 놀라움, 강렬한 흥미가 일었다. 나는 후안에게 그 삭제는 도발이었다고, 하지만 남은 단어들은 어긋난 음조로 울려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 p.68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