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명이 중요한 게 아니야. 그걸 깨고 나아가야 진짜 네 길인 거지. 한번 쓰러진 나무가 다시 서긴 어려운 법이지만, 너는 물을 끌어올 방법을 알고 있다. / p. 24
이 책에는 말씀의 나라로 승천할 수 있는 아벨과, 그렇지 못한 '가인'이 있다. 可人, 인간인 것 조차 허락받아야 하는 존재. 유림과 해수는 이런 걸 가르쳐주는, 사이비 냄새가 짙은 '하나의말씀'이라는 보육원에서 길러진다.
선함과 자비 따위를 입에 올리면서 사방이 막힌 벽돌집 안에서 누구보다 잔인해지고 교활해지는 어른들의 학대를 벗어난 두 아이의 로드 무비. 그렇게 그들은 破四柱, 주어진 운명을 부수는 여행길에 오른다.
실재와 환상을 오가는 듯한 분위기는 이 말을 하는 것이 종교집단에서 가둬져서 길러진 아이들의 시선임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그 아이들의 세상이 이런 것임을 인지하고 읽을 때 학습된 아이들의 관념이 어떤 폭력 속에서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왜 유림에게 '해수'라는 존재가 필요했는지. 그렇기에 아이들은 망산(邙山)을 넘어 황천과 명도를 걸어야 했다. 폭력에 희생된 무수한 유림과 해수같은 아이들을 애도하고 기억하는 데에서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므로.
길의 끝이 빛일지, 어둠일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아이들은 다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 겨우 벗어난 벽돌집은 너무나도 끔찍한 괴물의 아가리와 다름 없었으니까. 이 때 작가는 아이들의 등을 슬쩍 밀어준다. 아이들이 작은 희망을 가지고 앞으로 가기를 바라면서. 어디선가 이 글을 읽을 길을 잃은 무수한 사람들을 위해서. 섣부른 위로와 성마른 희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곳에서든 구원과 희망은 나 자신의 몫이라고.
+ '인생은 미로고, 미로를 통로로 만드는 건 우리 자신의 선택과 의지다.' 추천사 그대로의 책이었다.
불빛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유림이 걸음을 멈추지 않은 건 이 길이 막다른 골목이 아니라 언젠가는 끝이 보일 터널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계속 걷다 보면 환한 빛을 마주하리라는 작은 희망이 유림의 발걸음을 앞으로 이끌었다. / p. 171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