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체 게바라 평전>을 통해 남미 사회주의 혁명의 대명사인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의 공적이고도 사적인 면모를 알게 되었다. 체 게바라는 혁명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된 지 오래다. 체 게바라는 티셔츠나 모자에 이미지가 새겨질 정도로 “푸르고 신선하다”. 얼마 전에는 체 게바라의 머리카락, 사후 채취된 지문, 일부 친필 원고 등이 거액으로 경매된 소식이 전해질 정도로 “죽지 않은” 인물임이 여실히 입증되었다.
이 책은 저자인 헬렌 야페가 영국 런던정경대학교에 제출한 박사논문을 번역한 것이다. 그렇다고 논문답게(?) 딱딱하다거나 무미건조한 자료로 독자의 기를 죽이는 책은 아니다. 쿠바 혁명에 대해 이론적으로 접근했다면 십중팔구는 난해한 책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이 책은 “실천”, 즉 체 게바라가 1959년부터 1965년까지 경제관료로 일하며 쿠바 경제 재건을 위해 어떤 시스템을 마련했는지를 집중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체 게바라가 실무책임자로서 쿠바 경제를 어떻게 운영하고 어떤 시스템을 구축하려 했는지가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바로 이 점이 이 책의 미덕이고 강점이다. 이제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사회주의의 이론이라기보다는 구체적인 “왜, 어떻게”이기 때문이다. 체 게바라는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열강과 동유럽권 사회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사회주의를 끌어안은 채로 제3의 길을 모색한 독창적인 인물이었다. 따라서 체 게바라가 걸은 길은 그만큼 역경이었고 전대미문의 고난이었다. 쿠바의 저생산, 저발전 상황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체 게바라는 소련의 교조주의를 비판했다. 심지어 소련이 뼈를 깎는 강력한 정책 변화를 수행하지 않으면 자본주의로 회귀할 수도 있다고 예견하며 비판하기도 했다. 쿠바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의식과 새로운 사회관계 형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자본주의 메커니즘에 의지하지 않고 독자적인 생산 능력과 노동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국유화와 중앙계획경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경제 발전을 위해 어느 정도 자본주의 메커니즘에 의지하는 “자율재정 시스템”의 도입으로 구체화된다. 쿠바는 개혁주의적인 자본주의를 거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 사회주의 국가들이 도입한 경제 정책을 순순히 따르지 않는 파격적인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러한 조치를 보면서 체 게바라의 시도를 “실패”라는 한 마디로 규정짓는다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 논리라는 것이 저자의 평가이다. 저자는 “게바라의 지도 아래 쿠바 경제는 안정을 되찾고 산업을 다각화했으며 성장을 달성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진리는 회색 지대에 있는 것 같다. 쿠바의 취약한 경제구조,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의 쿠바 억제정책, 역사적으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시도, 이 모든 것을 함께 고려했을 때 진정한 평가가 내려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은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이 책 이전에 이처럼 쿠바 경제사를 내재적으로 분석한 책은 없었다. 또한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각종 자료와 혁명 동지들의 육성을 생생하게 접목시키고 있는 것도 이 책의 미덕으로 꼽을 수 있다. 600쪽이 넘는 방대한 책인데도 그런 대로 잘 읽힌다. 번역자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