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태워야 진짜가 된다는
형연 2023/11/18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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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타는 작품
- 윤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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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 - 2023-10-12
: 1,297
제목만큼이나 강렬했던 스토리 구성. 초반에 느꼈던 충격 이후 이어진 주인공의 여정은 마치 평범한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열심히 사는데 뭐가 이렇게 안 풀리는지.. 이제 좀 뭐가 되려나 싶은 순간조차 약올리는 것처럼 쉽지가 않았다. 그리고 포기 못한 꿈에 드디어 기회가 주어진 줄 알았는데 거기엔 눈부시고 반짝이는 지원만큼이나 가혹한 조건도 따라 붙는다. 세상에 공짜는 없지, 라는 자조섞인 한탄의 말을 중얼거리게 되는 이유이기도 했다.
로버트재단 자체가 거대 자본이 쌓아올린 철옹성이고 그들은 진실과 거짓, 진짜와 가짜 따위를 구분하는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본인들이 믿고 싶은 걸 진실로 만들고 진짜로 믿게 만드면 되는거니까. 자본이 있으면 가능한 일이었다. 거기서 머리가 띵해졌다.
작가의 작품활동을 전방위로 도와주는 등의 친절을 베풀다가 결국에 완성된 작품 하나를 소각해버리는 잔인함. 작가의 행복한 순간을 가장 뼈아프게 만드는게 아닌가 싶었다. 다행히 소설 속 주인공인 작가는 소각될 자신의 작품을 구해내지만 기가 막히게도 소각되지 않은 작품은 진짜가 아니고 불타는 작품만이 진짜라는 말을 듣게 되고 거기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면 그 속에 숨겨진 의미를 알 수 없다. 많은 이들이 숨겨진 의미까지 굳이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진실과 거짓을 드러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게 의미가 있을 것 같냐는 의문을 남겼고 그 점에 대해선 좀 더 생각해 보려고 한다.
#북리뷰 #윤고은 #장편소설 #불타는작품 #은행나무
📝 p.47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그 때는 내 인생의 몇 페이지가 전혀 다른 국면으로 넘어갔다고 믿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돌아보니, 내가 서 있는 지점은 오래전에 운 좋게 통과했다고 생각했던 그 예전 페이지였다. 페이지의 교란이 있었던 것처럼 다시 그 불안과 초조 속에 놓인 것이다. 조금 더 무뎌진 채로.
📝 p.80
너무 앞서 생각하는 것은 나의 오래된, 그리거 불편한 버릇이었다. 시작과 동시에 끝을 걱정하던 시기를 지나 언제부터인가는 시작과 동시에 불발을 걱정하는 시기로 접어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불미스러운 단어를 집어넣어도 끌려나오는 사건들이 없는 것처럼, 지금 이 모험이 불발탄이거나 오발탄일 리는 없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 p.292
어떤 사람들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를 고치면서 매일을 살아나간다. 발트만이 그런 인물이었다. 이미 지나온 삶에 대해 뒤늦게 꿈꾸는 것이 무모한 일일까. 이미 흘러온 시간은 바꿀 수 없는 것이므로 영 가망 없는 일일까.
📝 p.294
어떻게 트리밍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전혀 다른 표정을 갖게 된다.
📝 p.312
진실이요? 잘 보관하지 못해 부패해버린다면 다 의미 없는 이야기죠. 때로는 알맹이가 아니라 껍데기가 중요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로버트 재단의 액자 틀이 있으면 그 안에 있는 건 모두 믿고 싶은 얘기가 되지요. 그게 썩지 않는 진실입니다.
📝 p.341
불타는 작품만이 진짜라고. 불타고 있을 때, 그 순간의 화력만이 사람의 영혼을 움직인다고. 그런 의미에서 화염을 피해 밖으로 나온 건 진짜일 수가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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