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나를 공부하는 중입니다.

H씨는 늘 그랬다. 그러거나 말거나, 졸업을 한 딸이 원하는 게 있거나 말거나, 남(가족 포함)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내가 원하는 걸 먹는다. 내가 최고 존엄이니까. 여기서 ‘존엄‘이란 두 가지 의미에서 그러한데, 돈을 버는 가장이라는 의미 하나,
‘먹는 거라면 내가 최고‘라는 자부심 하나, 이렇게 두 가지다. 먹는 거라면 내가 최고라는 그의 자부심은 타인에 의해 인정된 바 없고, 그냥, 오로지, 절대적으로 그의 주장이다. 그래서 H씨의 이런 독단적인 외식 메뉴 선택과 식당 선정은 이렇게 이해해야 할것이다. "내 지금부터 너희들에게 최고의 것을 먹이려는데 이 아니 좋을 수 있겠는가?" 정도로. 이게 바로 나의 아빠라는 분의 애티튜드다.
씁쓸한 것은, H씨가 이렇게 독단적으로 선정한 식당들이 꽤나 괜찮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런 말을 입 밖에 낸 적은 없다. 스스로의 긍지만으로도 차고 넘치므로 나까지 인정해줄 필요가 없어 보였다( 66 )- P66
그 버섯전골은 완벽했다. 송이에 능이에 느타리에 표고에, 내가 전에 보지 못한 버섯들이 가득했다.
아.... 버섯의 식감은 어쩌면 이렇단 말인가. 조밀한 결이 만들어내는, 이 식감. 만 개의 겹과 만 개의 탄력. 하지만 너무 완강하지는 않아 숨이 막히지 않는이 중용. 이런 식감은 버섯이 아니라면 어디에도 없다. 쫀득하다고 표현하면 경박하다. 버섯에게는 품위라는 게 있으니까. 이런 생각을 그때도 했는지는모르겠다. 하지만 그 후로 이날의 버섯전골 같은 것은 먹어본 적이 없다.- P67
나는 H씨처럼 내가 절대미각을 갖췄다거나 맛에 관한 한 최고 존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너는너, 나는 나. 너의 상식은 너의 상식, 나의 상식은 나의 상식. 우리는 각각의 세계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가계(家戒)에서 태어나, 다른 모어(母語)를 배웠고, 다른 음식을 먹었고, 다른 책을 읽었다.
그런데 같을 리가? 그래서 나의 현실은 너의 현실과다르고, 우리는 서로의 현실을 살 수 없다. 나는 우리 사이의 이 거리, 그 아득함이 좋다. 우리는 각자의 세계, 각자의 메타버스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팽이버섯이 싫다고 하는 순간, 잠시 차원이 왜곡되며 너와 나의 세계가 합쳐진다. 아주 잠깐이지만말이다.-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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