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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ll1223님의 서재
  • 동료에게 말 걸기
  • 박동수
  • 16,200원 (10%900)
  • 2025-10-24
  • : 3,491
느린 대화는 동료를 만든다는 사실.
그들도 우리처럼이 아니라 우리도 그들처럼
말의 계보를 추적하는 일은 상대를 더 깊이 이해하게해 준다. 이때 대화란 현재 순간에 일어나는 일로만 축소되지 않는다. 말은 언제나 타자의 것이며, 그것을 자기 방식대로 사용할 때조차 여전히 타자에게 특정한 방식으로 매여있다. 순간의 말 속에 긴 역사와 감정의 연쇄가 들어 있다.
그 연쇄를 따라갈 수 있을 때, 대화 상대자와 더불어 더 나은 대화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P-1
가까운 사이인 두 청년 남성 사이에서도 말은 끊임없이 어긋나고 질문은 공회전한다. 책도 뚜렷한 결론을 내놓진 못한다. 변명 들어주기로 끝난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실패한 말 걸기의 기록은 거듭된 실패를 통해서만 다시 말하는 법을 간신히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기도 한다. 좋은 대화란 서로의 몰이해를 붙들고 끝내 상대를 포기하지 않는 지난한 노력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우진은 다시 살아 보기로 했다고 한다. 대화는 어긋났지만 끝나지는 않았다.- P-1
타인의 인생을 나의 언어로 다시 말하는일은 그 책임과 약속에 내가 얼마나 부응할 수 있는가에 대한 끝없는 시험이다. 그렇게 말의 어긋남과 오해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실패의 자리에 조용히 멈춰 서서 다시 말을 걸수 있는 길을 천천히 찾아 나가는 것이다.- P-1
한번 생각해 보자. 누군가 나에게 고함치고, 여러 사람앞에서 지적하며, 오류의 꼬리표를 붙였을 때 과연 내 생각이 바뀐 적이 있었을까? 아니면 나를 따로 불러 이야기하고, 나와의 관계를 존중하며, 자신도 비슷한 실수를 한 적이있다고 고백할 때 비로소 내 생각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올바른 비판을 위해서라도 지지와 돌봄이라는 기본 조건이 성립되어야 한다. 비판은 공통된 지반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나 가능하다. 서로 다른 행성에 사는 것 같은사람들 사이에서는 먼저 관심사의 공유가 필요하다. 전면적 거부도 완전한 동조도 아닌, 들쑥날쑥한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동료로서 중간 지대에서 타협과 비판의 전선을 함께그려 가야 한다. 그럴 때 지지자인 동시에 비판자가 될 수있다.- P-1
대화란 꼭 그 자리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대화는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좋은 대화가 되기도 한다.- P-1
동료들 덕분에 최근 깨닫게 된 한 가지 답은 이렇다. 우리는 사실보다 먼저 감정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논리와 증거가 아무리 견고하더라도, 그것이 내면 깊은 곳의 감정과공명하지 않으면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려면 이 감정의 지층으로 내려가 보아야 한다. 사실과 논리 이전에, 사람들이 왜 그렇게 느끼는지를 더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P-1
분명한 것은 ‘내가 맞고 너는 틀렸다‘, ‘내가 가르쳐 주겠다‘ 같은 태도로는 상대의 감정이나 존재양식을 바꿀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참과 거짓을 판단할 수 있는 여러 척도가 존재한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우리가 지닌 깊은이야기가 현실을 단순화하는 편리한 거대서사임을 직시할수 있다면 타협과 협상은 언제든 가능하다. 결국 라투르가제시하는 탐구의 길은 대화 상대방에게 잘 말하는 기술을습득하는 일이다.-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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