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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ll1223님의 서재
  • 말에 구원받는다는 것
  • 아라이 유키
  • 16,650원 (10%920)
  • 2023-06-30
  • : 907
어떤 책들은 문장이 유려하고 생각이 멋져서 감탄하며 보게 된다. 이런 책들은 읽는 동안 독서의 즐거움을 충분히 느끼게 한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서는 쓸까말까 생각 줄다리기를 아슬하게 하고 있는 나에게 내가 굳이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쪽으로 기울게 만든다. 쓰지 않아도 될 당위성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면서도 어깨는 움츠려든 상태다.
이 책은 장애인들의 말과 그들의 소통을 가까이서 들여다본 문학 연구가의 이야기다. 여러 지점들에서 좋았는데, 가장 좋았던 건 나에게 용기를 한 뼘 가지게 한 점이다. 내 이야기도 어쩌면 쓸모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전의 요코타 씨와 이야기를 나눌 때 저도 모르게 "우리는"
"이나 "이 사회는" 같은 ‘큰 주어‘로 말하면 요코타 씨는 다음과같이 되물었습니다.
그래서 자네는 어떻게 할 건데? 자네는 어떻게 하고 싶어?
중요한 것은 ‘나‘라는 ‘작은 주어‘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렇게 글을 쓰는 일입니다.
글을 계속 쓰는 일입니다.
예전에 경종을 울렸다는 것.
경종을 울린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그 역사를 말로 바꾸어 다시 한 번 이 시대에 울려 퍼지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는 내년에도, 후년에도 그다음 해에도, 7월이 오면 사가미하라 사건에 대해 쓰려고 합니다. 함께 이 문제를 생각하고, 이 문제를 놓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계속해서 고민하고 괴로워하려고 합니다.- P-1
처음 만난 지적 장애인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없었던 점도힘들었다. 지적 장애인과의 의사소통에는 비장애인과의 소통과다른 부분이 있다. 상대가 이해하기 쉽게 사인을 보내고 상대의사인을 읽는 특유의 기법 같은 것이 있어서, 시간을 들여 관계성을 쌓아야 커뮤니케이션 감각이 생긴다는 사실을 지금은 안다.
더 나아가 사람과 사람은 서로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끌어안은 채 같은 시간과 장소를 겪기만 해도의미가 있는 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P-1
내가 하는 일에는 ‘누군가의 인생을 말로 바꾸는‘ 작업이 어쩔 수 없이 따라온다. 몇 년을 해왔어도 이 작업에 익숙해지지못했고 매번 꺼림함이 남아서 고민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이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아야 이 사람의 인생에 대해쓸 수 있을지‘가 고민거리다.
이 ‘쓸 수 있을까‘에는 ‘능력 면에서 가능한가 아닌가‘와 ‘자격이 있는가 없는가‘에 해당하는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만약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인물에 대해 쓴다면, 그 혼돈한 삶의발자취를 ‘내 문장력으로 정리할 수 있을까‘와 ‘나 같은 사람이정리해도 괜찮을까‘라는 물음을 두고 머리를 싸매며 고민한다.
경험상 서너 시간 정도 취재하면 전자의 의문에는 깔끔히 결론이 난다. ‘짧은 취재로는 아주 깊게 조사해내기 힘드니 일단문장만이라도 읽기 쉽게 정리하자‘는 식의 결론이다. 한편 그 사람과 3, 4년간 깊이 사귀게 되면 거꾸로 후자의 물음에는 자신이 생기지만 읽기 쉬운 글로 완성하기가 불가능해진다. 쓰고 싶은 내용이 너무 많아서 정리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다만 나는 이 ‘정리할 수 없다‘는 느낌이 싫지 않다. 오히려 굉- P-1
장히 좋다. 이 감각은 예를 들자면 ‘추억 사진을 정리할 때 느끼는 감각‘에 가깝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찍은 사진을 들춰볼 때한장 한장에 얽힌 에피소드는 얼마든지 풀어낼 수 있지만, 그사람의 인생이나 그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말로 설명하려 하면 좀처럼 술술 나오지 않는 법이다.
‘깔끔하게 말로 정리할 수 없는 것의 귀중함‘에 손쓸 수 없이이끌린 나는 어떻게든 그것을 말로 표현하고 싶다고 소원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이 나에게 있는가 하면......
처음의 물음으로 돌아가기를 되풀이하고 만다.
이러한 말의 문제는 조금 거칠게 표현하면 ‘요약하기‘와 ‘일부를 보여주기‘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요약하기‘는 커다란 세계나 복잡한 현상의 축소판을 만드는일이다. 요약을 할 때는 정확한 미니어처를 만드는 기술 수준이중요하다.
이에 비해 ‘일부를 보여주기‘는 너무 커서 다 표현할 수 없는것의 일부를 보여줌으로써, 미처 다 표현하지 못한 전체를 상상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앞서 든 추억 사진 예처럼 각각의 사진에 얽힌 에피소드를 전달해서 사진 속 인물의 존재감이 얼마나큰지 느끼게 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학자는 두 방법 중 ‘요약‘의 전문가일 것이다. 아니, 그래야 한다. 나 역시 현상을 정확하고 치밀한 언어로 표현하는 훈련을받았다(받기는 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일부를 보여주는‘ 방법으로밖에 표현할 수- P-1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내 안에도 있다. 전하려는 쪽이 가진 말의 기술로는 도무지 그려낼 수가 없어서 받아들이는 쪽의 감수성과 상상력을 무작정 믿고 맡길 수밖에 없다. 그런 기도에 가까운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애당초 ‘요약‘이라는 것은 ‘너 같은 건 나한테 알기 쉬운 존재가 되어라‘라는 오만함과 이웃 관계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그렇지 않은 말의 존재를, 기도와 같은 말의 무게를, 다양한 사람의말의 힘을 빌려 표현해보자...... 는 터무니없는 시도의 결과물이 이 책이지만, 그것이 성공했는지 아닌지야말로 받아들이는분들을 믿고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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