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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ll1223님의 서재
  •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 줄리언 반스
  • 15,750원 (10%870)
  • 2024-09-02
  • : 23,001
자기 전 잠깐 읽으려고 폈다가 한밤중이 되어서야 책을 덮을 수 있었다. 왜 줄리언 반스, 줄리언 반스 하는지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읽기에 실패했었다.)
타인을 이해하는 것의 불가능성에 대해, 배교자 율리아누스의 이해에 대해, 우리 사회가 동조하는 가치에 의구심을 가지는 태도에 대해, 행복에 근접해지기 위한 스토아철학의 방법(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짓는 것)에 대해, 그리고 인생에 끼어든 우연에 대해 생각해보았고, 대체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깊이 새겼다.
그리고 잊지 마세요. 전기나 역사책은 말할 것도 없고 소설에서도 어떤 인물이 형용사 세 개로 줄어들어 깔끔하게 정리되는 게 보이면 그런 묘사는 늘 불신하세요.- P-1
핀치의 공책에서.

-성공에 대한 자족과 마찬가지로 실패에 대한 자족도 있을 수 있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녀에게는 둘 다 없었다. 또 자신을 성공 대 실패라는 맥락에서 생각한 적도 없었을 것이다.
- P-1
그녀가 우리에게 한 가지 가르쳐준 게 있다면 역사는 길게 보아야 한다는 것, 나아가서 역사는 무기력하게 혼수상태로 누워 우리가 크고 작은 망원경을 들이대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활동적이고 들끓고 가끔 화산처럼 폭발한다는 것이었다. - P-1
 ‘너는 나보다 똑똑하고 나보다 젊고 나는 너를 누이로서 사랑하지만 너도 모든 걸 아는 건 아니구나. 그것 때문에, 웃기는 일이기는 하지만, 누이를 더 사랑하게 됐어요. 이상한 거예요, 인생이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동의했다.- P-1
적-스토아철학적이었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건 어울린다. 그럼 내가 아내 둘보다 그녀를 더 사랑했을까? 이런 식으로 말해보자. 사랑하는 사람을 깊이 또 잘 알고 있다 해도 그 사람에게 놀라게 되는 것이 사랑의 속성이다. 그게 사랑이 살아있다는 표시다. 타성은 사랑을 죽인다. 성적인 사랑만이 아니다. 모든 사랑이 마찬가지다. 내 경험으로는 부부의 사랑에서 ‘놀라움‘은 첫 몇 년 뒤에는 가끔 그저 별난 행동 때문일 뿐이라는 게 드러나기도 한다. 더 나쁜 것은, 그런 행동이 단지 남편만이 아니라 자기가-사실은 삶 자체가 지겨워졌다는 표시라는 점이다. - P-1
-영어에서 ‘사랑‘이라는 말보다 신비화되고, 오용되고, 오해되고, 의미와 의도가 제멋대로이고, 오염되고, 거짓말하는 수많은입에서 나온 침으로 더럽혀진 말이 있을까? 이를 두고 불평하는것보다 진부한 것이 있을까? 이런 오용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말을 대체할 수 없으니 이 말은 동시에 강건하고 단단하고 그 갑옷은 뚫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도 폭풍도 못 건드리고 벼락도비껴간다.- P-1
그분은 내 평생 이야기를나누어 다른 어떤 여자하고도 완전히 달랐어. 대부분의 여자는 ‘우리가 어떻게 만났나‘ 하는 이야기를 해" 그녀는 공중에 따옴표를 찍었다 "그리고 ‘뭐가 잘못됐나‘ 또 ‘어떻게 끝났나‘ 또 ‘내가 그 모든 것에서 뭘 배웠나.‘ 그걸 비난하는 게 아냐. 나도 그러니까 내 인생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지. 우리 모두 그래. 그런데 EF는 그런 식이 아니었어. 결론은 주지만 서사는 주지 않았어. 왜? 뻔하고 일반적인 이유는프라이버시, 신중함 그런 이유겠지. 하지만 나는 어쩌면 이건그보다 큰 걸 수도 있겠다고 판단했어. 인생은, 우리가 아무리 그렇게 되기를 바라더라도, 서사에는 이르지 못한다는 느낌 - 또는 우리가 이해하고 기대하는 서사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느낌."- P-1
스토아 학파의 사상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일이 있고 어떻게 해보 수 없는 일이 있다. 우리는 그 둘을 구별하는 걸 배워야 하며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일은 어쩔 도리가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하고 이것이 우리를 삶에 대한 올바를 철학적 이해로 이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 P-1
 그걸 보고 실패가 성공보다 흥미로울 수 있고, 패자가 승자보다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는 EF의 말이 기억났다. 또 심지어 임종을 맞이할 때도 어쩌면특히 임종을 맞이할 때 우리가 어떻게 심판받을지, 또는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다 해도 어떤 식으로 남을지 알 수 없다고 말한 것도. 모래에 발자국을 남기지만 다음 바람이 쓸어가 버릴지도 모른다. 또는 먼지에 발자국을 남겼는데 우연히도 폼페이에 사는 바람에 수백 년 동안 그 완벽한 형태가 살아남을지도. 린다를 생각할 때면 안나가 수십 년 뒤 개입- P-1
나는 율리아누스를 생각했다. 수백 년의 세월이 그를 해석하고 또 재해석해 온 방식. 여러 색깔의 조명을 받으며 무대를 가로질러 걸어가는 사람처럼. 오, 저 사람은 빨간색이야,
아니야, 주황색에 가까워, 아니야, 검은색에 가까운 인디고야, 아니야, 저 사람은 완전히 검은색이야. 이보다는 덜 극적이고 덜 극단적이지만 이게 어떤 사람의 인생을 보든 벌어지는 일인 것으로 보인다. 그 사람의 부모, 친구, 연인, 적, 자식이 각각 보는 방식. 지나가던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그의 진실을 눈치채기도 하고, 오랜 친구가 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고. 사실 사람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본다. 뭐, 사람으로 살려면 자기역사를 잘못 알아야 한다.- P-1
아마도 내가 엘리자베스 핀치를 ‘알고‘ 또 ‘이해하는‘ 것은 율리아누스 황제를 ‘알고‘ 또 ‘이해하는‘것보다 나을 것이 없을 것이다. - P-1
다시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점심 테이블에서 내 쪽으로몸을 기울이고 있다. 내가 파스타가 아닌 송아지 고기 에스칼로프를 택한 뒤다. "어떤가요?" 그녀가 열띤 표정으로 묻는다. "실망스럽나요?" 마치 다른 모든 것에 관해서도 그렇게 물어보고 있는 것 같다. 인생, 하느님, 날씨, 정부, 죽음, 사랑, 샌드위치, 미완성 걸작의 존재.- P-1
그래서 나도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다. 운이, 우연이 자기뜻대로 하게 놓아두는 것. 나는 지금까지 쓴 것을 서랍에 넣어두고, 어쩌면 그 옆에 EF의 공책들도 놓아둘 것이다. 가끔 내 자식 하나가 내가 죽은 뒤 그걸 발견하는 상상을 한다.
"오 이것 봐, 아빠가 책을 썼네! 읽어보고 싶은 사람?" "그것도 미완성 프로젝트겠지." "우리 같은." 그런 다음 자식들은아버지로서 나의 결함을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내가 타자로친 것을 다시 서랍에 던져 넣고 청소부가 쓰레기통에 버리게할지도 모른다. 아니, 나는 지금 내 자식들을 지나치게 깎아내리고 있다. 셋 가운데 하나는 아빠가 하던 일을 보자 약간감상에 젖고, 약간 호기심을 느낄지도 모른다. 어쩌면 다른자식이 엘리자베스 핀치가 누구인지 궁금해하며, 우리가 연인 사이였는지 궁금해하며, EF의 공책들을 들고 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실망을 주고 너무 많은 결론, 불충분한 서사버려질 것이다. 나의 ‘책‘그게 그런 말을 들을 만하다면은 다른 책상의 다른 서랍에 들어갈지도 모르고, 그다음운명은 어쩌면 아직 태어나지 않은 누군가에게 맡겨질지도모른다.
이건 정당할 것이다. 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고 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없다. 이 일은 지금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없고 따라서 내가 자유와 행복을 얻는 것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P-1
결코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이 절망 앞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읽기뿐이다.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내 바깥의 세상을 바꾸기보다는 내가 변하기 위해서.
김연수 추천의 말 중-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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