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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가은 감독은 무수히 많은 좋아하는 것들 중 영화를 가장 좋아해 감독이 되었다. 10여 년간 오직 영화를 생각하고 만드는 일에 전력 질주하다 두 번째 영화를 마친 뒤 번아웃이 왔다. 몸과 마음을 일으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잘 회복되지 않는 마음이 영화를 좋아하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영화 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면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진짜 좋아했고 어떤 삶을 진심으로 원했는지 다시 발견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가지고..
그런데 글을 다 쓰고 나서 윤가은 감독은 영화를 좋아하는 마음에 다다른 자신을 발견했다. 글 속 구석구석 온통 영화 이야기뿐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마음이 가득한 이 감독의 영화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간 나또한 내 일을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해오다 지친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설사 그 좋아하는 대상이 처음과 달라져 있을지라도 작가의 말처럼 어쨌든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눈이 크게 떠지고 세상이 활짝 열리는 놀라운 기적이니까!!

나의 상황과 고민이 가장 비슷했던 [걸어서 걸어서]를 읽고 많은 위안이 되었다.


언제쯤이면 정말 나의 길을 잘 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까. 그래도 마흔쯤 되면 얼추 맞는 길로 들어섰다는 희미한 안도감은 생길 줄 알았는데, 여전히 선택의 갈림길에 설 때마다어떤 길이 진짜 나의 길인지 헷갈린다. 어떻게 걸어야 진짜내 모습대로 걷는 건지 자꾸 오락가락한다. 계속 부연 안개속을 더듬거리며 간신히 나아가는 느낌이다.
어려서부터 눈에 띌 만한 재능이 있었다면 좀 달랐을까. 그랬다면 나도 더는 나를 불안해하지 않고 안정과 평화속에서 삶을 즐기는 여유로운 사람이 되었을까. 궁금하다.
일찍부터 자신만의 재능을 발견하고 꽃피운 이들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인생의 크고 작은 변화 앞에서 나•처럼 깊은 막막함이나 어색함을 느끼지 않는지, 그동안 잘- P-1
해온 건지, 지금은 잘하는 중인지, 앞으론 잘해나갈지를 끝없이 의심하며 괴로워하진 않는지.. …………. 자신만의 재능을 잘알고, 굳게 믿고, 훌륭하게 키워나가는 이들은 과연 자신에대해 어떤 질문들을 던지며 이 아득한 생을 채워나갈지, 나는 정말로 궁금하다.- P-1
지금 생각해보면, 끝없이 반복되는 실패와 실망의 여정 끝에 사지에 몰리듯 도달한 곳이 공부였을지도 모르겠다. 알고 보니 나는 엉덩이힘이 꽤 좋은 편이었다(이제 내 재능은 엉덩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제법 오랜 시간 붙들고 어떻게든 해결해보려는 근성이 내게도 있었다(이미 여러 차례 증명된 바이지만). 다만 투자 대비 효과는 상당히 미미했다(더는 증명할 필요도 없다). 친구들이 3시간 공부하고 받는 점수를 나는 6시간, 때론 9시간은 해야 받을 수 있었으니까. 그래도 하는 만름은 늘었고, 늘다 보니 기댈 곳은 되었으니까. 나도 조금은잘하는 게 생겼다는 사실이 작은 위안을 주기도 했다.- P-1
공부의 전 과정이 늘 부담스럽 고 버거웠다. 그래도 했다. 계속 꾸준히 했다. 그렇게 어렵고 힘든 일인데도 도저히 놓을 수가 없었다. 공부마저 놓으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을까 봐, 그러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돼버릴까 봐 늘 두려웠다.- P-1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여전히 매일 내게 묻는다. 영화가 진짜 나의 길일까. 나는 영화에 정말 재능이 있을까.
영화가 아니라면 또 어떤 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길이 진짜 나의 길이라는 건 또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이모든 질문들에 대한 답을 과연 언젠가는 찾을 수 있을지, 나는 정말로 모르겠다.
다만 이제는 타고난 재능을 갈고닦는 길만이 나를 진정한 행복으로 데려다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진짜 행복의 모습을 잘 몰랐던 것 같다. 길을 끝까지 걸어서 도착해야만 만날 수 있는 게 행복이라고 착각했던 것도같다. 오랜 시간 걸으며 깨달은 유일한 것이 있다면, 행복은- P-1
도착지에 있는 게 아니라 길 위에 있다는 진실이었다. 목표한 곳에 도달하기도 전에, 때론 목표한 곳 없이 떠돌아다녀도 나는 단지 걸을 수 있어 행복했으니까.
돌아보면 내 길을 찾아 부단히 걸어오는 동안, 만족할만한 성취는 이루지 못했어도 행복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피아노 건반을 지그시 눌러 원하는 화음이 흘러나왔을 때,
붓 끝에 묻은 물감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종이에 번져나갔을 때, 춤을 추고 발차기를 하며 흘린 뜨거운 땀으로 온몸이 노곤해졌을 때, 그 모든 순간들에 나는 아주 다양한 맛의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그게 행복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부지런히 꿈을 꾸지도 않았겠지.
그래서 나는 이제 그냥 걷기로 했다. 계속 헷갈리고 오락가락하면서. 쉼 없이 의심하고 흔들리면서, 그렇게 걷고또 걷다 보면 끝내 어딘가에는 도착해 있겠지. 그러다 보면마침내 누군가는 되어 있겠지. 사실 꼭 어딘가에 도착하지않아도, 반드시 누군가가 되지 않아도 좋다. 걷는 동안 행복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멋진 삶일 테니까.
그러니까 그냥 걷자. 오늘도, 내일도, 그냥 걷고 또 걷자. 어쨌든 나는 오래도록 꾸준히 잘 걷는 재능만큼은 끝내주니깐.-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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