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음‘ 그 자체를 피하려는 것이다. 현재의 무한함, 광대함, 모호함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억지로생각을 만들어 내어 ‘이러이러하다‘라고 분석하고 이름붙인다. ‘내가 이러이러하다‘, ‘이 관계는 이러이러하다.
‘저 사람은 이러이러하다.
이름 붙이는 순간 그것은 과거, 그것도 전부가 아닌매우 일부 과거를 담고 있는 것이고 지금의 변화를 담아내지 못한다. 현재는 생각이나 말로 규정할 수 없다.
현재의 나도, 그도, 이 관계도 그러하다. 하지만 모호함,
예측 불가능성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꾸 경험을,
나를, 관계를 생각으로 정리하고 통제하려고 한다. 안될 일을 억지로 하려 하니 생각이 많아지고 괴로워진다.- P-1
매순간은 복잡하고 모호하며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능하여 규정할 수 없다. 현재의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경험의 총체이며 시간적 존재이기 때문에 시간과 함께변화한다. 우리는 현재에 살아가며 현재의 경험이 ‘나‘를만들어 간다. 그런데 현재는 잠재력과 복잡성으로 꽉 찬거대한 허공과 같으므로 나 또한 잠재력과 복잡성으로꽉 차 있는 허공이라 할 수 있다. 현재는 이것과 저것 사이에 있으며 아직 무언가가 되지 않은 틈들의 연속이다.
그 틈에서 낡은 것은 죽고 새로운 것이 탄생한다. 삶은오직 현재, 무수한 틈들에 있으며 깨달음이란 다만 그틈을 포착하고 새로 태어나는 일이다. 나는 이러이러한사람, 내 삶은 이러이러하다며 죽은 과거를 끌고 다니는것은 과거를 무한 복제하는 가짜 삶이다. 새로운 경험을차단하기 위해 생각으로 예단하고 분석하는 사람들은익숙한 과거에 안주하고 의존함으로써 현재의 모호함과 복잡성을 회피한다.- P-1
내가 어떠어떠하다고 설명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분석과 해석이므로 생각이나 말로 규정되는 순간, 이미지나간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의 문제들도 마찬가지다. 실시간 일어나는 상호작용이어서 매 순간 변하고 달라지기에 언어로 붙들어 맬 수 없다. 틀 안에 넣는 순간왜곡이며 이내 변하고 달라진다.
관계도 실시간 변하는 상호작용의 연속이며, 내가오직 현재에 살아가듯 관계도 현재에만 살아 있다. 두사람이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에게 귀 기울여 들을 때그들은 지금 진짜로 만나고 있다. 두 사람이 한자리에앉아 있지만 한 사람은 ‘우리의 과거‘를 추억하고 한 사람은 ‘우리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그 둘은 사실상 만남을 회피하는 셈이다. 지금의 만남에 발 담그지 않고 ‘현재‘를 회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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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관계의 문제는 감정의 문제이며 매 순간의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의 문제다. 실시간 경험을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경청하면 피할 것도 없애야 할것도 없다. 듣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왜곡, 갈등, 증상이 일어난다. 경험을 통제하거나 회피하려는 노력이 감정의 문제와 관계의 어려움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듣는다‘는 행위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볼필요가 있다. 듣기란 수동적인 입력 행위가 아니다. 어떤 말이나 소리를 듣고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순간의 반웅과 해석을 포함하는 예측적 행위다. 다 듣기도 전에우리는 생각하고 느끼고 추론하면서 마음의 창을 일부- P-1
닫아 두거나 아예 셔터를 내리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가
‘듣는‘ 것은 상대방의 말이나 바깥의 소리가 아니다.
매번 자기를 듣고 있는 것이다. 듣지 않으려 함은 자기와의 단절, 혹은 경험으로부터의 회피이며 그것이 결국 감정적 어려움, 관계의 어려움으로 드러난다. 요약하면, 실시간 경험과 연결되지 않는 것이 곧 감정의 문제이자 관계의 문제다.
관계와 감정을 이해하려면 우리 경험에 들어 있는 모호한 측면을 전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더 알아내려고과거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흐름에 발 담그는것이다. 있는 그대로 함께하는 것, 지금 여기에 머무는것, 현재로부터 도망가지 않는 것이 좋은 관계를 가능하게 한다.- P-1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상대방을 이끌려 하거나, 안전하고 익숙한 방식으로 의존하고 안주하려 하거나, 자기 틀에 갇혀 변화를 거부하다 보니 상대방을 그대로 보고 듣지 못한다. ‘친한 사이라면, 연인이라면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거나 ‘부부란, 가족이란당연히 이러이러해야 한다‘며 상대방을 통제하고 강요하는 사람은 관계를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관계를 맺을 용기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의무의 교환, 기능의 거래를 통해 진짜 관계를 회피한다.
진짜 관계는 통제 밖에 있다. 풀숲으로 날아가는 새소리를 듣듯 어떤 의도나 생각 없이 오가는 상호작용에그대로 마음을 열 때, 그 직접성과 즉시성에 발을 담글때 관계는 살아 있다. 함께 웃음을 터뜨리고 함께 우는것은 아이들에게는 제일 쉬운 일인데 나이 들수록 쉽지않다. 머릿속에 너무 많은 생각과 걱정이 오가느라 그대로 함께하기 어렵다. 지금 이 순간의 경험, 실시간의 상호작용에는 새로움과 고유함이 있다. 그런 순간에 마음을 열 수 있으려면 자기 삶을 온전히 책임질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어야 한다. 상대방에 대한 예측과 통제를 포기하고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진짜 관계다.- P-1
왜 심리상담이라는 것이 있을까? 왜 사람들은 자신에대한 얘기를, 모르는 사람에게 꺼내려 할까? 전문가가나에 대해 모르는 것을 알려줄까 봐?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그들은 알고 있으니까 그걸 듣고 나를 바꾸려고?
전혀 그렇지 않다. 나보다 나를 잘 아는 "전문가" 같은것은 없다.
삶은 역할, 기능, 과업으로 너무 빨리 지나가고 우리는 가까운 사이에서도 진실을 말하지 못할 때가 많다.
진실을 느낄 시간이 없었거나 허락되지 않아서, 혹은 불편한 진실보다 편리한 친절이 필요해서, 일상을 대충 잘지내기 위해 우리는 뭔가 결정적인 순간들을 건너뛰며표면을 살아갈 때가 많다.
그 뒤로 소화되지 않는 경험과 감정들이 남는다. 거기에 파묻힌 진실들을 발굴해 자신의 일부를 복원하기위해 우리는 상담을 찾는다. 소화되지 않는 것들, 어딘가에 걸려 있는 것들을 소화하고 싶어서다. 여기저기 널려 있는 파편들을 연결해 온전한 전부가 되고 싶어서다.- P-1
좋은 상담자는 공감을 잘하는 자도 아니고 이해를 잘하는 자도 아니고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자도 아니다.
가장 좋은 상담자는 함께 진실의 순간이 되어주는 자다. 그러려면 상담자는 유능함을 발휘하려는 기대나 욕망이 없어야 한다. 상대를 치유로, 깨달음으로 나아가게하겠다는 의도나 잡생각이 없어야 한다. 오직 매 순간,
그 현재에만 있어야 한다. 그 ‘현재‘가 진실이기 때문이다.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가 진실에 연결될 때 거기에 있는 것은 두 사람이 아니다. 상담도, 명상도 무한이 무한을 만나는 일이다.- P-1
과거도 미래도 없이만남과 이별만 있을지라도무구한 생애 첫 하늘날아오르는 오래된 날갯짓멈출 수 없듯물처럼 와서 바람으로 가는 우리는길어야 순간이고짧아야 영원이다*
"I came like Water, and like Wind I go. FitzGerald, E. (2009). Rubaiyat ofOmar Khayyám. Oxford University Press. p. 30.- P-1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실제세상이 아니라 자신의 머릿속, 그 작은 방이라는 얘기다. 인간은 모두 그 좁은 방안에서 갖가지 꿈을 꾸며 그것을 ‘현실‘이라 믿는다. A는 좋은 사람이고 B는 나쁜 사람이라고, C는 멋진 일이었고 D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P-1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바라는 것과 피하고 싶은 것, 아름다운 것과 끔찍한 것, 사랑과 미움을 본다. 욕망의 눈으로, 기억의 눈으로 본다. 감각에서 비롯된 감정 뭉치를 기억이라 하고 그것을 미래로 투영해 욕망의 목록으로 간직한다. 욕망은 언제나 기억의 미래 시제다. 기억이 없다면 욕망은 없다. 감정이 없다면 기억이 없고, 감각이 없다면 감정이 없다. 따라서 욕망은 감각 느낌들에대한 판단이자, 편집과 통제의 시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신 활동은 꿈처럼 어지럽고 현란하다. 그많은 갈래 중의 일부를, 미미한 일부를 의식하고 사고할수 있을 뿐이다.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전부 알아내는법은 없다. 의식의 방은 크기도 구조도 제한적이다. 의식은 한 번에 하나씩 처리할 수 있어서 동시에 많은 것들을 담아낼 수가 없다. 게다가 그 방은 대체로 잠겨 있다. 자신이 잠갔을 수도 있고, 어쩌다 보니 잠겼을 수도있다. 그래서 다른 방의 사정은 모른다. 각자의 경험이전부다. 감각과 감정의 고유함과 특수성은, 우리 자신을특별한 존재처럼 믿게 만든다. 힘들고 고된 경험에 의미- P-1
를 부여하려고, 어떤 방향으로 분명 나아가는 것처럼 생각하고 싶어서 자기 서사를 만들어 낸다. 욕망과 기억,
감정과 감각은 그 과정에서 때때로 변하고 재해석된다.
생각은, 변덕스러운 이들을 시중드는 빈약한 집사에 불과하다.
이렇게 보면 인간은 믿을 것이 못되고 진실과 거짓도 때에 따라 달라지며, 삶은 허무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이것은 모두 ‘의식‘의 관점에서 하는 말이다. ‘무의식‘
의 관점에서는 하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것도 변하지 않는다. 진보도 퇴보도 없다. 무의식에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잊어도 무의식은 잊지 않는다.- P-1
그러니까 어떻게 그런 무의식이 생긴 거죠? 저는 아무 것도 안 했는데...
상담을 하다가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말을 한 분도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그분의 말이 맞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무의식은 있다. 왜 그럴까? 생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본래 있었다. 거대한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컵을떠올려 보자. 컵에는 바닷물이 찰랑찰랑 담겨 있다. 컵이 먼저 있었을까? 바다가 먼저 있었을까? 컵 안의 물이 먼저일까? 바닷물이 먼저일까?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시간 순서를 따져 보자면 아마도 바다가 먼저 있고,
그다음 컵이 있고 나서 컵 안의 물, 이렇게 될 것이다.
여기서 바다를 무의식, 컵은 우리의 몸, 컵 안의 물을 의식에 비유하면 흥미로운 면이 보인다.
컵 안의 물이 컵의 크기나 상태와 무관하지는 않지만,
본질적으로 컵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바다에서 왔다는 것. 그리고 바다는 컵이나 컵의 물보다 훨씬 전에 본래 있었다는 것. 이러한 관점은 우리의 의식(컵의 물)에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 중심적 사고를 무너뜨리게 한다. 마음이나 정신을 순전히 개인의 ‘심리적- P-1
문제‘로 보고 이런저런 검사를 통해 파악하거나 생각과훈련으로 바꾸고 고칠 수 있다고 믿는 오해도 불식시킬수 있다. 현대인의 믿음과 달리 마음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개인을 초월하는 현상이다. 무의식과 의식이 얽히는연결의 장이자 관계와 상호작용이다. 뇌신경과학의 연구법과 기술이 아무리 첨예하게 발달한다 해도 마음의전부를 측정하고 예측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조사하는 것은 컵과 컵의 물 수준일 뿐, 바다의 영역까지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을 받거나명상을 통해 무의식에 들어 있는 내용을 모두 의식화할수 있다거나 명확하게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오해에 가깝다. 그렇다면 바다는, 무의식은 어떻게 파악해야 할까? 직접 알아내는 방법이 있을까? 놀랍게도 ‘없다. 그 이유를 매우 논리적인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는것이 마테 블랑코의 이론이다.- P-1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난다고 할 때에는그의 일부가 나에게 들어와 제3의 무엇이 되는 것이다.
제1인 나도 아니고 제2인 너도 아니고 제3의 무엇이다.
내가 어떤 이를 사랑한다고 할 때에는 그도 아니고나도 아닌 제3의 무엇을 사랑하는 것이어서그때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제3의 무엇은 제4의 무엇으로, 제5의 무엇으로변이하면서 찾아볼 수 없게 되기에종종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우리 안에 있는 대상들은처음에는 분명 바깥에서 온 것이지만,
이내 각자의 내부에서 소화하는 과정을 통해변형되면서 서서히 본래의 출처를 잊는다.- P-1
우리는 결코 삶의 진실 전체를 보지 못한다. 내가 어떤것을 왜 좋아하는지, 왜 싫어하는지조차 정확히 알아낼수가 없다. 무의식의 바다는 의식의 어떤 노력으로도 만질 수 없고 알아낼 수 없으며 바꿀 수 없다. 다만 주어지고 느껴지고 경험될 뿐이다. 감당하기 힘든 사건, 소화가 안 되는 감정을 경험하면서 사람들은 마음의 병을얻기도 한다. 주저앉기는 쉽지만 다시 일어나기는 어렵다. 좌절은 끝이 없고 치유의 길은 너무나 멀다. 무언가의미를 간신히 알아낼 때쯤 또 다른 일들에 휩싸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포기하지 않는다. 삶의 의미를, 존재의 의미를 집요하게 알아내고자 한다. 세상을향해 끝없이 다가간다. 이것은 과연 저주일까. 축복일까?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 것을 보면, 마테 블랑코는 아마도 낭만주의자에 가까운 것 같다.- P-1
"순간의 진실은 오직 될 수 있을 뿐, 알아낼 수는 없다.""
영국의 정신분석가 윌프레드 비온은, 진실은 스스로드러나는 것이지 우리가 생각해서 알아내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살면서 무수한 일들을 겪지만, 그중 무엇에 이끌리게 될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의미 있는 사건은 늘 일부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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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감정을 일으킨 장면들, 생생하게 기억하거나 오래 생각하는 일들, 비온은 이를
‘선택된 사실‘(selected fact)이라 불렀다.‘ 하지만 엄밀한의미에서 이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사실들이 나를 선택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를 사로잡는 순간이 먼저 있고, 그에 대한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감정의 언어를 찾는 과정에서 생각들이 잇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마테 블랑코는 감정의 본질을 "나눌 수 있으면서도나눌 수 없는 것, 다시 말해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으면서도 부분들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 시간적이면서도 무시간적인 것"이라 했다. 뭔가를 표현하려면 생각해야만 하고, 생각은 본래 이것과 저것으로 쪼개는 것이다.
하지만 감정에는 본질적으로 ‘나눌 수 없는 측면이 있어서 결코 명확하게 쪼개지지 않는다. 따라서 생각으로 감- P-1
정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뭔가 누락되거나 보태지는 등필연적으로 왜곡이 발생한다.
모든 정신적 어려움은 경험을 소화하지 못해 일어난다. 무슨 경험인가? 강한 정서적 경험이다. 이러한 경험들은 소화되지 않아서 체한 것처럼 걸려 있다. 가슴이답답하거나 명치가 뻐근하거나 숨 쉬기 힘들게 느껴지기도 한다. 소화되지 않는 감정을 생각으로 쪼개어 억지로 소화하려고 시도할 때, 우리는 순간에서 이탈한다.
생각이라는 칼로 자르고 잘게 다져 손에 쥘 수 있게 만들려고 할수록 나뉘지 않는, 전부의 순간에서 멀어진다.
신경증, 정신증 증상을 갖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생각이 매우 많은데, 어쩌면 소화되지 않는 경험들을 쪼개기위한 필사적인 노력 때문일지 모른다. 나뉘지 않는 것을나누려다 보니 늘 생각에 빠지게 되고 ‘지금, 여기‘에서멀어지게 된다. 두 눈은 허공을 향하고 두 발은 공중에떠서 잠시도 그냥 있기 어렵다. 심리상담은 대개 두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소화되지 않는 경험의 맥락들을 탐구하고 함께 재경험하는 것과 지금 여기, ‘순간의 진실‘로 함께하는 것이다. - P-1
그냥 있음(just being)은 느낄 수는 있어도 알아낼 수는 없다. 알려고 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뭔가 일어남(happening)으로 인식한다. ‘있음‘이 무의식의 영역이라면, ‘일어남‘은 의식의 몫이다. 시간도 공간도 없는 불가분의 ‘있음‘을, 의식은 담아낼 수가 없다. 따라서 실재의일부를 사건으로 포착해 자르고 이어 붙여 의미를 만들어 간다. 시공간을 부여하고 부분들로 나누는 생각의 눈에는 ‘있음‘이 ‘일어남으로 보이는 것이다.
모든 관계는 순간의 연결을 꿈꾼다. 연결은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있다. 연결의 순간에는 시공간이 없다. 나는 그 세계와 하나로 있다.
우리가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향해 수없이 다가가고 만나고 수많은 잡담을 건네는 이유는 연결의 순간을 위해서다. 순간의 진실이 되기 위해서다.- P-1
우리가 기억하는 누군가는 그 누군가가 아니다. 내안에서 경험하고 이해하고 소화하고 대사한 결과물, 즉다른 무엇이다. 당신이 엄마에 대해, 아빠에 대해, 형제- P-1
자매에 대해 ‘어떠어떠하다‘고 할 때, 아무리 구체적으로 정확히 이야기해도 그것은 결국 당신 자신에 대한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미 자아의 일부로 합성된 것을의식하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A라는 사람을 이루고 있는 요소에 대해 말할 수 없다. 내가 인식한 것은 내 정신세계에서 만들어진 고유한 합성물 b다. 관계는 두 사람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두 사람을 아무리 정확하게 분석하고 이해한다고 해도 파악할 수 없다. 두 개의 세계가 얽히어 상호작용하면서 각자의 존재를 만들어 가는 끝없는 생성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