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담이지만 작가가 되는 데 가장 필요한 재능은 착각이다. 문장력이 좋거나 머리가 좋거나 인내심이 있거나 책을좋아하거나 기타 등등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시인이나 소설가가 될 수 있다. 라는 착각이다. 이건 굉장히 슬픈 지점이다. 만약 작가를 만드는 요인이 남다른 언어 감각 같은 실질적인 재능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착각과 자신감이라면, 많은 작가들이 왜 그렇게 덜되어먹은 건지 알 수 있기때문이다. 동시에, 뭔가를 해내는 인간들의 성취 중 많은경우가 단지 자기 확신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은 세상이왜 이렇게 엉망인지 알려주는 것 같다.
"내가 해(가)봐서 아는데~" 천만에! 당신은 아무것도 모른다. 엄밀하게 말하면 해본 만큼만 알고, 더 엄밀하게 말하면 해본(살아본) 만큼 안다고 믿는 것뿐이다. 다른 말로 이를 ‘꼰대‘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일까. 고르기아스의 전언처럼 (경험)해도 모르고, 안다 한들 전달하지 못하는 상태가 인간의 한계일까.
그렇지만 우리는 안다는 가정하에 대화를 나눈다. 그러지 않고야 소통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암묵적 약속이다. 아무것도 진정으로 알 수 없지만 대충은 안다고 (가정)하고 대략적인 합의에 이를 수 있다는 사회적 약속. 쉽게 말해 우리 삶의 근본 전제는 ‘대충‘이다. 이걸 받아들이지 않고 끝까지 파고들면 결과는 대부분 정신병동행이다. 운좋으면 대철학자나 예술가, 과학자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운을 바라진 말자. 언제나 그렇듯 운은 우리편이 아니다.
공쿠르 형제의 일기는 번역되지 않았으나 파리와 프랑스 예술에 대한 책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자료다. 그리고내가 좋아하는 문학 역시 이러한 종류의 것들이다.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알 수 없고 종합할 수 없이 들쑥날쑥하는 일련의 경험과 생각들이 오가는 것. 이론화하거나 미학적으로 다듬을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의 배아가 보이지만 모든 것이 시간이나 생각의 흐름에 휩쓸려 지나가버리고 결국에는 감당할 수 없는 산더미 같은 짐, 일종의 텍스트 더미만 남는 것. 그러나 여기에 일관성이 아주 없진 않다. 전기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은 전기 작가들이 한 사람의 일생에서 의미 부여할 수 있는 서사나 패턴을 찾아내서가 아니라, 그것을 묶을 수 있는 환경으로서 한 사람의 신체가 존재했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무위는 실현되어야 할 어떤 본질이 주어져 있지 않은 상태, 특정한 본성이나 소명이 부과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이것은 무능이나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는 다르다. 일종의 잠재성으로 1)할 수 있는 가능성과 2)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 모두를포함하는 가능성이고 이는 아감벤의 정치철학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삶-의- 형태 Form-of-Life와 연결된다. 쉽게 말해(쉽지 않을지도・・・・・・ 존재를 규정하지 않고 임의적으로열어두는 것이며 종교적이고 목적론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순전한 인간의 삶"이 시작될 수 있는 잠재성이다.
울프와 발저의 산책이 좋은 이유는 그들이 걷는 일에서 의미를 찾지 않았고 우울해하지도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들의 산책은 정체성을 잃고 헤매는 것이었지만 멜랑콜리해지거나 심각해지지 않는다. 그들은 오로지 걸을 때만진정으로 쾌활해진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산책과 글쓰기가 가진 유일한 공통점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젠가 집으로 돌아가거나 결말을 맺어야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상실한 어느 지점에서, 주제와 의도, 인과와 의무를 망각한 지점에서만 진정한 글쓰기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뒤라스와 에드가르 모랭은 공산주의를 선택했다. 미래와 양심은 스탈린주의에 있다고그들은 한때 믿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곧 박살났고 파리의 공산주의 진영은 분열됐다. 많은 사람들이 소련을 비판하길 거부했다. 에드가르 모랭은 이렇게 말했다. "인생에서두 번 저항하기란 어렵다." 한번 나치와 부르주아에 대항해싸운 사람들은 공산주의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찾았다. 그런데 자신을 받아준, 자신의 고향 같은 곳과 싸워야 하는것이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시오니즘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외면했고 이 때문에 장주네는 사르트르를 포기했다. 저항은 특정한 대상이나 시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는 매 순간 우리의 본성에 저항해야 한다. 가장 가까운 대상이나 친구들에게 저항해야 할지도 모르고 믿어왔던 것에 저항해야 할지도 모른다. 차별과 혐오는 예외적인 행위가 아닌 일상적인 상태에 가깝다.
그러므로 저항 역시 그래야 한다. 저항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가져야 할 상태다.
여기서 말하는 아우라는 정확히 뭘 뜻할까. 흔히 ‘후광‘
으로 번역되는 아우라는 작품이 가지고 있는 비견될 수 없는 가치, 완성도, 그로 인한 카리스마, 분위기 또는 가격(?)등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발터 벤야민은 아우라가 작품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아우라는 "공간과시간으로 짜인 특이한 직물로 작품 자체가 아닌 작품과 맞닥뜨리는 장소이며, 바로 ‘지금, 여기‘를 뜻한다. 과거 예술에서는 우리가 그곳으로 가야 했기 때문에 아우라가 발생했다면 현대 예술에서는 "사물을 자신에게 더 가까이 끌어오려고" 하기 때문에 아우라가 상실된다. 그러므로 아우라의 핵심은 ‘의식ritual‘과 ‘거리 distance‘다.
파울 첼란의 시 「하얗고 가벼운 것」의 일부다.
하얀 것,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것,
무게도 없는,
우리가 주고받는 것,
하얗고 가벼운 것.
그것을 떠다니게 하라.
1968년 2월 29일, 네 명의 학생 영화감독과 진행한 공개토론에서 장뤼크 고다르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삶에서 차이를 추구하려 하는 반면 사실 우리는 유사성을추구해야 한다." 2014년 6월 2일 온라인 라이브 방송에서로이 바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여러분은 모든 이가 자유로워지기를 원해야 합니다. 여러분 안에 모든 이가 공동현존하기 때문입니다."
크라카우어가 말한 대의 없는 사유/생활 방식은 내가 예전부터 생각해온 것이다. 소설을 쓰고 예술의 가능성을 고민할 때, 혁명과 혁명 이후의 세계를 탐색할 때 필연적으로발생하는 적대나 충돌, 실패나 백래시, 전 세대 혹은 현세대와의 갈등, 주의와 대의의 필요성과 한계에 대해 고민할수밖에 없었다. 소모적이고 반복적으로 보이는 과정을 극복하거나 다르게 사유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헤겔은 진정한 비극은 옳음과 그름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 옳음과 옳음 사이의 갈등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둘 모두 옳다면 갈등은 왜 발생하는가. 이게 정말 필연적인 과정일까.
크라카우어처럼 내가 매력을 느끼는 것은 언제나 특정 대의가 아니라 대의에 공감할 때조차 대의들 사이의 틈새였다. 대의를 실천하면서도 대의로부터 (거의) 자유롭게생활하고 사유하기, 상충하는 대의를 함께 유지하기, 대의들 사이에 공유되는 공간에 머물기, 믿음 없이 살기, 하지만 어떠한 믿음 속에서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는 이러한
삶의 표본으로 에라스뮈스를 떠올린다. "시대의 논객들 틈에서 논객으로 살지 않은 인물로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대부분의 것을 대단히 놀라운 방식으로 보여주는" 사람으로서. 종교개혁 시기의 가톨릭 인문주의자였던 에라스뮈스
에라스뮈스는 당대를 대표하는 지식인이자 종교인이었지만 애매모호하고 변덕스러운 사람으로 유명했다. 그는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공격받았다. 보수적인 사람들이 봤을 땐 위험한 개혁가이자 비판자였고 진보적인 사람들이봤을 땐 혁명에 진지하지 않은 쾌락주의자였다. 타락한 구교를 혁신하고 제도를 바꾸기를 원했지만 자기 마음속의깊은 열망들이 제도화된다면 이 세상에 의해 타락하리라고 생각했으며 "참여하지 않으면 결국 패배하리라는 것을알면서도, 자신의 대의가 대의로 전락하는 것을 차단했고
"자기 생각들을 유동적인 상태를 유지하게 했다. 개혁자로서 초기에 동지였던 루터는 나중에는 에라스뮈스에게 정나미가 떨어져 "음험한 사내"라고 비난했다. 그럴싸한 말은많이 하지만 도움되는 말은 하나도 안 하는 놈이라나, 실제로 에라스무스는 가톨릭을 격렬히 비판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슬쩍 발을 뺐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분쟁이 일어난다면 나는 평화를 깨기보다는 진실의 일부를 포기하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니까 결국 에라스뮈스가 가장싫어하고 피하고 싶었던 것은 교조적인 태도, 엄숙주의, 억압적인 권위, 폭력이었지 특정 사상이나 종교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그가 원했던 것은 평화나 기쁨이었지 다른 사상이나 종교-이를테면 신교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어정쩡한 태도는 역사의 흐름에 밀려나기 마련이고 새로운 세력에게 버림받을 수밖에 없다. 요한 하위징이는 에라스뮈스 평전에 "그가 중간노선을 취하는 바람에 많은 친구들과 마음에 맞는 영혼들이 그의 곁을 떠나갔다"라고 썼다.
사람들은 "에라스무스의 저 온유한 미소를 견디지 못했다.
(・・・・・・) 그가 주변 환경을 무시하고 자신의 길만 용감하게걸어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 것인가."
그럼 에라스무스와 같은 태도는 무의미한 걸까. "에라스뮈스의 사상은 지금까지 역사를 형성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며 유럽의 운명을 형성하는 데 뚜렷한 영향을 끼친 적도
없었다."20세기 들어 많은 이들이 에라스뮈스를 위대한 인문주의자로 다시 호명한다. 혼돈의 시기에 중도와 관용, 평화를 지킨 사람으로 말이다. 그러나 크라카우어의 관점은조금 다르다. 크라카우어는 에라스뮈스의 위치를 중도라고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결코 타협자가 아니었다. 언제나약자의 편이었고 쉬지 않는 비판자였다. "그가 옹호하는 대의는 바로 역사적 대의들을 끝장내는 것이었다." 단지 그가원했던 대의가 극지를 표류하는 빙산처럼 고정될 수 없는일시적인 장소였을 뿐이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에라스뮈스의 이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이상만이 영원한 회귀성을 갖는다."
더 중요한 건 에라스뮈스와 같은 이들이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믿음이다. 크라카우어는 이를 "에라스뮈스-분위기"라고 부른다. "그의 메시지가 낳은 것은운동이 아니라 분위기, 한밤중의 순간적 불빛같이 막연하고 요정의 약속같이 막연한 분위기였다." 에라스뮈스-분위기는 특정한 목적이나 주장, 대의에서 자유로워도 된다는 아이디어다. 어느 쪽 편을 들지 않아도 괜찮다는 태도이며 단지 지식의 즐거움과 삶의 기쁨에 헌신해도 된다는 해방감이다. 누군가는 이를 방관이나 비겁함이라고 말할지도모르겠다. 그렇게 해서는 세상이 변하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에라스뮈스는 부당한 권력 앞에
한 번도 방관자였던 적이 없으며 종교개혁의 큰 공헌자 중한 사람이었다. 다만 그가 믿었던 대의가 삶이었던 것뿐이다. "그는 할말을 다 했으면 무대를 떠나도 좋다고 생각하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무대보다 더 중요한 건 무대 아래의삶이다. 혁명보다 혁명 이후의 정치, 사건 이후 post-event의 생활이 그에겐 더 중요했다. 에라스뮈스는 가장 이상적인 삶의 조건이 시원한 나무 그늘이 있는 집과 선량한 친구들과의 산책, 정원에서의 식사라고 생각했다. 물론 모순의왕답게 평생 생계를 걱정하며 일정한 주거지 없이 떠돌아다녔고 틈만 나면 친구들을 의심하고 싸웠지만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에라스뮈스 - 분위기에서 용기를 얻고 힘을냈다. 강요와 요구, 대의들 사이에 엿보이는 삶의 지대, 잠깐 존재했다 사라지는 유토피아, 참고로 『유토피아의 저자 토머스 모어는 에라스뮈스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토머스 모어는 에라스뮈스가 죽기 일 년 전 왕에 의해 참수형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