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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ll1223님의 서재
  • 사는 데 정답이 어딨어
  • 대니얼 클라인
  • 13,500원 (10%750)
  • 2017-03-03
  • : 479
우연히 골라온 책인데
철학자 할아버지의 옛노트를 몰래 읽는 기분이었다.
20대부터 철학을 공부해오며 삶에 흔들리는 자신을 부여잡기 위한 거인들의 문장을 살펴보게 한 책.
과학자였던 내 아버지가 그런 분이었다. 반세기 전, 철학을전공하겠다고 말하자 아버지는 정신적 자위행위" 같은 말을중얼거렸다. 그 당시엔 손으로 하는 자위행위는 정신적 자위행위든 도덕적으로 해로우며, 사람을 타락시키는 것으로 여겼다.
아버지에게 철학은 반사회적인 데다가 쓸모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지도 않았다. 대공황 시대에 태어나 자란 아버지는 ‘유용성‘을 모든 것의 최우선 가치로 생각했다. 쾌락주의자와는완전히 거리가 먼 분이었다. 아버지에게 철학 공부는 순전히시간 낭비를 의미했다.
러셀의 생각은 정반대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철학적 지식이 없다면 스스로 상식으로 인한 편견 속에, 나이나 국적으로 인한 습관적 믿음 속에, 그리고 신중한 이성의 동의나 협조
없이 마음속에 자라난 확신 속에 갇힌 채로 살게 된다. 이런 사람에게 세상은 명확하고 유한하며 뚜렷하다. 일상적인 대상에어떤 의문도 갖지 않으며, 익숙지 않은 가능성은 경멸하고 무시한다. (...) 하지만 철학은 친숙한 대상을 낯선 방식으로 제시함으로써 우리의 경이감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이 모든 세월 동안 각자의 삶에서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우리는 서로에게 상담사가 되어줬다. 좋은 일이 있을 때도 물론그랬다. 철학적 주제를 놓고 우리가 나눴던 길고 격렬한 토론은 내게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더 큰 가르침을 줬다. 하지만 함께 보낸 가장 환상적인 시간을 꼽자면 아무래도 함께 바보처럼낄낄거리며 망가질 때가 아닐까 싶다. 서로를 충분히 믿기 때문에 함께 어리석을 수 있었던 것이다. 덤 앤 더머처럼 말이다.
때로는 배꼽 빠지게 웃어대다가도 잠시 시간이 멈추고 즐거움으로 무아지경이 된 상태에서 ‘영원한 현재 Eternal Now‘(뉴에이지 사상이 제시하는 시간을 지각하는 법에 대한 개념이자, 뒷장에 등장하는 독일의 신학자이자 철학자 파울 틸리히Paul Tillich가 1956년 출판한 설교집 이름이기도 하다. 저자는 틸리히의 가르침을 받은 경험이 있다: 옮긴이)를만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는 순수한 사귐의 즐거움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만큼이나 홀로 있음의 영광도 사랑한다. 세월이 지날수록 그 즐거움은 더더욱 깊어졌다. 혼자 있으면 평화로움과 더불어 살아 있음에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 찰 때가 많다. 여름날 내 작은 집 뒤쪽에 훌쩍 자라난 풀과 야생화들을 눈앞에 두고 홀로 앉아 있노라면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마저도 떠들썩한 잔치처럼 느껴진다.
내 곁을 지날 때면 아내는 가끔 즐거운 미소를 머금고 나를바라본다. 몇 년 전에 아내가 의자에 앉아서 무슨 생각을 그리깊이 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행복하게 진실을 고백했다. 어떤 깊은 생각도, 심지어 어떤 얕은 생각도 전혀 하지 않고있었노라고. 사실은 그랬기 때문에 진실로 즐거울 수 있었던것이다.
고독에 빠져 있다는 건 분명 이기적인 행위다. 그러나 자기본위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혼자 앉아 있는 건 내가 나임을 자축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신에 대해 축하할 일이 있다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살아 있음에 감사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며, 그 축복은 보통 다른 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느껴지지 않는다. 군중 속에서는 그 느낌이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이란 우주에게는 굴 한 마리의 삶보다도 중요하지 않다. ㅡ 데이비드 흄
흡이 말하는 ‘보잘것없는 삶‘ 패러다임에 대해 영화계가 내놓는 또 다른 반응도 있다. 스웨덴 걸작 영화 <화니와 알렉산더Fanny and Alexander)는 개개인의 삶은 우주 그 자체로 치환할 수 있기 때문에 개개인의 삶이 작고 하찮다고 인정함으로써 오히려위안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 모두는 이 작은 세상 안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잉마르 베리만ingmar Bergman이 감독한 이 감동적인 영화는1900 대 초 스웨덴의 부유한 대가족 에크달Blkdahl 집안에서 3년동안 벌어진 일을 묘사한다. 극 중에서 에크달 가족은 몇 가지거대한 상실을 겪는다. 어린 알렉산더를 남겨두고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 에밀리는 목사와 재혼한다. 하지만목사는 폭군 같은 가장이자 잔인한 의붓아버지였다. 결말 부분에서 에밀리와 아이들은 자유를 되찾고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와 만찬을 크게 열어 자축한다. 알렉산더의 삼촌 구스타프는건배를 제안하며 사랑스럽고 유머를 곁들인 ‘작은 세상‘에 대한 긴 송가를 바친다.
"세상은 도적들의 소굴이며, 밤은 서서히 다가오네. 악이 사
슬을 끊고 미친개마냥 온 세상에 날뛰네. 우리는 악에 감염되어 도망치지 못하네. 그러니 행복할 수 있을 때 행복해집시다.
친절하고 자비로우며 다정하고 선해집시다. 우리는 이 작은 세상을 즐겨야 합니다. 그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흡이 말하는 ‘굴과 다를 바 없는 하찮은 삶이 구스타프에게는 ‘이 작은 세상‘이다. 꽤 괜찮은 말 아닌가?
꼭 필요하지 않은 물품을 집에 두고 살면서도 나는 옥스팜에한 푼도 기부해본 적이 없다. 인정한다. 그러니 싱어에 따르면나는 근본적으로 도덕적이지 못한 사람이다. 그래서 당연히 기분 좋다고는 말 못한다. 사실은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끔찍하다. 분명 이에 관해서 생각을 좀 더 해봐야겠다. 아니면 옥스팜에 십일조를 내든지 그냥 행동에 옮길 수도 있다.
나는 도덕적으로 적극적이지 못하지만 싱어는 옳다. 세상이정의롭지 않다고 불평하면서 정작 이를 바꾸기 위해 편안한 의자에서 벗어나지는 않는 이들에게 싱어가 가하는 저격에 전심전력으로 동의한다. 위선이라고 해도 할 수 없다. 사실 가장 기
만적 형태의 위선이라고 해도 좋다. 자신이 위선이라고 부르는대상에게 위선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나는 자신의 도덕적 판단을 목청껏 외쳐대는 것만으로 세상을바꾸기 위한 책무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불평꾼들 편은 절대로들 수 없다. 그들의 제1세계 머리 위에 제3세계의 물 한 양동이를 흠씬 끼얹고 싶다.
인생의 의미는 찾았다싶으면 또다시 바뀐다. ㅡ라인홀트 니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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