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를 좋아하는 내 시선을 끈 책!
'하나님과 재즈를 비교하다니..참신한걸?' 하며 주문했다.
받아보자마자 제목과 예쁜 표지를 보고서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부담없는 책이려니 지레 짐작하고 읽기 시작한 것이 아침을 맞아버렸다. 처음엔 동화도 있고, 줄간격도 넓어서 부담없이 읽을 꺼리로 생각하고 책을 잡은 것이다.
번역서적이라고 보기가 힘들 정도로 너무나 깔끔하게 잘 된 번역 덕분에 읽기도 편했고, 저자의 너스레, 유머 등으로 낄낄대기도 하고, 그 자리에서 당장 책을 덮고 기도를 해야 할 필요도 있었다. 그렇게 밤을 지새운 후, 나는 그전과는 다른 위치에 내려와 있었다. 너무 스스로 높아져 있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저자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말씀도 전하고 찬양인도도 하는 나는, 누가 보기에도 신실한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보여'지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나는 조건적인 사랑을 베풀고 있는 것이 확실했고, 또 한 명의 십자군 용사였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 부대끼면서 '고상한' 인간류가 되어가고 있었다. 어머니의 개척교회를 8년 여 함께 섬기면서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 목사님과 교회를 이용하는 여러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냄새가 싫었다.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될 수 있으면 사람들보다는 나에게 아무런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나를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음악, 책들과 있는 것이 편했다. 책 속에는 하나님도 있고, 영화를 통해서 말씀하시도 하며, 노래 속에서 정서적으로 편안함을 얻을 수도 있었다.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상처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상처받는 것은 너무나 두렵고, 사람들과 상대하는 것은 너무나 버겁게 느껴졌고, 솔직해지는 것은 뭔가 손해를 보는 기분이었다. 내가 해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아 보였다. 사람들의 비유도 맞춰야 하며, 그런 것들이 또한 어떻게 보일까 등, 넌더리가 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잘못된 부분들을 내가 원하는대로 수정하고 고치기 위해서 설교를 이용하기도 했다. 나의 이러한 뒷걸음질에도 분명,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되고 있었다. 하나님이 하실 영역까지 나는 짐을 지고 있었던 것이다.
받은 하나님의 사랑은 분명 근사한 것이었는데, 나는 되돌려받을 것만을 계산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저자가 말하는 '자기중독성'이란 것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눈을 자기 자신에게로 향했기에 답이 없던 시간들....
이 책은 다시 한 번 나에게 기본으로 돌아가라고 용기를 주었다. 내가 놓치고 지나쳐 왔던 것들을...
'인간은 죄인이다'-이것을 깨닫는 것, '죄책감', '인간은 모두 새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변화하기를 원한다)', '인간은 어차피 혼자이다'는 개념들은 모두 하나님을 만나는 열쇠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았다. 특히 이야기의 4요소(p.45)에서까지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저자의 통찰은 독창적이고 놀라웠다.
또한 슐라이에르마허처럼 예수를 종교로 믿는 것에 진저리가 나서 그 용어를 쓰기를 주저하고 있는 모습은 그럴만했다. 교회에서 외면당하거나 상처를 받고 떠난 수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다른 용어들을 사용해야 하는 이 현실이 안타까웠다.
우리가 만든 예수가 아니라 예수가 만든 우리가 되어야 했다. 피 묻은, 살냄새 나는 복음! 그것은 아기 예수를 마굿간 속에서 발견할 수 있도록 만드신 하나님의 의도였다. 저자가 다녔던 '리드'라는 곳에서 예수를 만난 것처럼, 기독교에 대한 저항, 예수에 대한 이 세상의 저항은 모두 기독교인인 우리의 책임이다.
특별히, '고백부스' 안에서 일어난 일을 읽을 때에는 책을 잠시 덮어야만 했다. 눈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정말 주님께 죄송했다. 이렇게 살라고, 이렇게 움츠러들어서 방어적으로 살라고 나를 부르신 것이 아닌데, 나는 예수님의 의도와는 동떨어진 행동을 했던 그들처럼 나도 무릎을 꿇고 세상과 믿지 못하게 만든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했다. 그 고백은 내가 먼저 할 일이었다. 또한 저자의 새 물건 사는 습관은 나에게도 있어서 남 얘기가 아니었다.
이 책의 좋은 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가 선포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젯밤 280여 페이지의 전도지를 받은 기분이다. 나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린다. 내가 가진 의는 아무도 의롭게 하지 못할 의, "나는 남들과는 달라" 하는 '바리새인의 의' 와 다름이 없음을 깨닫는다. 하나님 앞에 다시 서서 거울을 보겠다.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그 곳에서 다시 얻고, 내 힘으로가 아니라 사랑하게 하시는 힘에 의지하여, 믿을 수밖에 없게 만드시는 그 힘을 의지하여 달려가겠다. 이 낮은 자리에 임하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나를 사랑하셨는가, 얼마나 겸손히 나와 많은 이들에게 아직도 성육신하시는가를 계속 기억하겠다.